도대체 얼마를 보냈기에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3.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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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대북 송금액의 실체/한나라당 “15억 달러 이상” 언론 “5억 달러” 추정


현대의 대북 비밀 지원금 액수가 연일 신문의 머리 기사를 장식하고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현대의 대북 송금액은 2억 달러(2천2백35억원). 하지만 일부 언론은 5억 달러라고 주장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최소 7억 달러는 될 것이라며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과연 현대가 비밀리에 북한에 보낸 돈은 얼마나 될까.


한나라당의 ‘민주당 정권 대북 뒷거래 진상 조사 특위’는 현대전자에서 1억 달러가 북한으로 송금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2000년 5월 현대전자는 구조 조정 차원에서 스코틀랜드 반도체 공장을 1억6천2백만 달러에 매각했다. 당시 정몽헌 회장은 ‘내용을 묻지 말고 1억 달러를 송금하라’고 지시했지만 영국 지사장은 거절했다고 한다. 정회장이 다시 영국 지사의 경리 직원에게 직접 지시한 뒤 1억 달러는 현대전자의 해외 법인을 거쳐 현대건설의 중동 지역 페이퍼컴퍼니로 이체된 뒤 증발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대행은 “이 돈이 북한에 송금되었다는 강력한 증거를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실이 아니다’를 반복하던 현대 관계자도 이 돈만큼은 “사라져 버렸다. 북한으로 간 것 같다”라고 인정했다. 지난 2월7일 현대전자(하이닉스)가 현대건설을 상대로 1억 달러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함으로써 한나라당의 일부 주장은 사실로 밝혀졌다.


확인된 액수는 현대상선 2억 달러뿐


한나라당은 현대건설의 1억5천만 달러 대북 송금 의혹도 제기했었다. 2000년 5월 현대건설이 1억5천만 달러를 홍콩과 싱가포르에 있는 국제은행에 송금했고, 이 돈이 여섯 계좌로 나뉘어 북한으로 흘러갔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현대 전 계열사에서 약 5억5천만 달러를 모아 북한으로 송금했다는 주장(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폭로)과, 현대 계열사인 대한알루미늄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4천8백만 달러가 북한으로 흘러갔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또 한나라당은 현대상선에 대출된 4천억원 전액이 대북 지원용이었다고 보고 있다. 대북 송금 사실이 확인된, 회사 내부 거래로 처리된 나머지 1천7백65억원도 대부분 북한에 건네졌거나 이를 위한 로비 자금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최근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김현철씨 비자금과 관련해 세간의 눈길을 끈 외환은행 퇴계로지점의 ‘세기문화사’계좌와 국정원 동우회 명의의 비밀 계좌에서 3억 달러 가량이 북한으로 흘러들었다는 이야기가 은밀히 나돌고 있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대북 송금액은 다 합하면 15억 달러를 넘는다. 대북 지원금 가운데 현대상선의 2억 달러만 대북 송금 사실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나머지는 현대 관계자들이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데다 구체적인 경로나 증거 등을 제시하지 못해 아직까지는 폭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한나라당이 매섭게 고삐를 죄고 있지만 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의혹에서 진전된 사실은 거의 없다.


‘박지원 특사’ 북한 가서 ‘보증’했느냐도 쟁점


이에 비해 언론은 현대의 대북 송금액을 5억 달러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이 금액에 대해서는 일부 여권 인사들도 수긍한다. <내일신문>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친분이 있는 한 경제계 원로의 말을 인용해 ‘현대상선 2억5천만 달러, 현대건설 1억5천만 달러 등 총 4억 달러가 정상회담에 앞서 지급됐고 나머지 1억 달러가 그 해 6월12일 싱가포르의 북한 계좌로 입금됐다’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2000년 당시 정명예회장의 건강 상태를 염두에 둔다면 세부 항목까지 정확히 나열해가며 합의했다는 재계 인사의 말은 신빙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현대측은 주장한다.


<오마이뉴스>도 국정원 고위 관계자의 증언을 토대로 현대건설 1억5천만 달러, 현대상선 2억 달러, 현대전자 1억5천만 달러 등 총 5억 달러가 현대가 독점 사업권을 갖는 대가로 북한 계좌에 송금되었다고 지적했다. <내일신문>과 항목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총액은 일치한다. 현대건설의 1억5천만 달러는 마카오 지사를 통해 런던 HSBC은행을 거쳐 북한 계좌로 송금되었고, 현대상선의 2억 달러는 외환은행 본점에서 홍콩 지점을 통해 북한측 계좌로 송금되었다. 또 현대전자의 1억5천만 달러는 런던에서 싱가포르를 거쳐 북한으로 송금되었다고 그 경로도 밝혔다. 아울러 <오마이뉴스>는 북한과 현대가 계약하는 자리에 박지원 장관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참석해 계약을 보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보도에는 강한 반박이 뒤따랐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기업의 사업과 관련해 정부의 고위 인사가, 그것도 대통령 특사가 동석 내지 배석했다는 것은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부인했다. 현대측 관계자도 보도된 내용이나 액수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최근 현대의 대북 비밀 지원 의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면서 거론되는 대북 지원금 액수도 늘어나고 있다. 한나라당 이규택 총무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뒷거래로 넘어간 돈은 10억 달러가 넘는다”라고 말했다. 현대 대북 지원설을 최초 폭로한 엄호성 의원도 “10억 달러의 실체는 어느 정도 확인되었고, 20억 달러에 이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측은 구체적인 정황이나 증거 없이 의혹만 부풀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현대아산의 한 임원은 “한나라당은 부서 회식비까지 북한에 넘어갔다고 주장한다”라고 말하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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