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 중국 총서기의 막강 ‘싱크 탱크’
  • 베이징·이기현 통신원 ()
  • 승인 2004.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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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예중·위커핑 교수, 핵심 브레인…공칭투안파 등 3대 지식·청년 세력도 큰 역할
중국 최고 권력 기관은 어디이고, 이들 기관은 어떻게 권력을 행사하는가. 형식상 최고 권력 기관은 13억 인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다. 하지만 대륙을 쥐락펴락하는 핵심 권력은 중국 공산당이며, 그 중에서도 공산당 최고위원회의 소수 지도자이다. 이들의 정책 결정 과정을 확인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언론 통제가 심하다 보니 최고 지도자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움직이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주요 지도자의 이론과 정책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싱크 탱크들도 베일에 가려 있어, 권력 심층부의 실상을 파악하기는 더욱 오리무중이다.

정치권 핵심 측근은 링지화·허이팅 부주임

그런데 최근 그 내용의 일단이 드러나고 있다. 올해 초 미국 ‘전략 및 국제 문제 연구소’(CSIS)가 펴낸 <중국 전략>이 중국 권력의 심장부를 엿볼 수 있는 창(窓)을 제공하고 있다. 계간지 성격을 띤 이 잡지의 창간호와 여름호가 중국 학자들을 동원해 후진타오 체제의 권력 기반 형성 과정과 측면 지원 세력을 분석한 것이다. <중국 전략>이 이 주제를 다룬 배경에는 ‘잠재적인 경쟁자’ 중국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이 계간지에서 후진타오 체제는 장쩌민 전 주석 세력과 긴장 국면을 이루고 있다.

중국 공산당 16대가 출범한 지 1년 반이 지나고 있다. 16대의 최대 특징이라면 단연 후진타오를 비롯한 ‘4세대 지도부’가 등장한 것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전 국가주석 장쩌민이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계속 유지함으로써 중국 정치 분석가들은 대부분 장쩌민의 막후 정치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공산당 일당 독재’라는 중국 정치 체제의 특성상 상이한 정치 집단 사이의 권력 투쟁은 공산당 내부의 계파 투쟁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장쩌민이 공식 행사나 활동을 자제하고는 있지만, 현 지도부에 대한 영향력은 막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력 핵심인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중 3명 이상이 자파 계열이며, 성(省)급 이상 고위 권력층에도 장쩌민 계열 인사가 다수 포진하고 있다. 또 얼마 전에는 자신의 ‘3개 대표론’이 헌법에 삽입되어 마오쩌둥·덩샤오핑과 같은 반열에 올랐다.

장쩌민의 의중을 전달하는 측근 중의 측근은 쩡칭홍 국가 부주석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장쩌민이 상하이 시장이던 시절부터 그의 오른팔 노릇을 해왔으며, 장이 집권하자 당의 조직부장을 맡아 계파를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쩡이 당내에서 장의 지령을 수행하는 실천가라면, 핵심 이론가는 왕후닝 현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이다. 그는 상하이의 명문 푸단 대학 국제정치학과 교수 출신으로, 1989년 톈안먼 사건 때 보수파 편을 들어 당시 상하이 시 당서기였던 장쩌민 눈에 들었다. 장이 집권한 후 그는 주로 장의 정치 이미지를 개선하는 일을 맡으면서, 장을 국제 감각이 있고 대중 친화적인 지도자로 부각하는 데 일조했다.

장의 영향력이 크다고 해서 현 최고 권력 수반인 후진타오 주석이 허수아비 노릇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도 나름으로 권력 굳히기 작업을 하고 있으며, 상당한 수의 참모들을 거느리고 있다. 이 중 핵심 측근으로는 공산당 중앙판공실 부주임 링지화와, 공산당 중앙정책연구실 부주임 허이팅이 꼽힌다. 이들은 장쩌민 계열의 인물들과 권력 투쟁에 열중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후진타오는 학계를 비롯한 정치권 외곽의 싱크 탱크를 장쩌민 견제나 이슈 선점 등 정치 활동에 활용하고 있다. 후의 싱크 탱크로는 우한 대학 헌법학 교수 저우예중, 베이징 대학 중국정부개혁연구중심 주임 위커핑 교수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주로 후의 정치 개혁 작업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중국 전략>은, 이들 세력이 아직은 기반이 약한 것으로 분석했다. 후 체제가 들어선 지 이미 1년여가 흘렀지만, 아직 뚜렷한 자기 색깔을 드러내지 못한 것이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후진타오를 보좌하는 인물로는 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후가 직접 주관한 내부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했던 중국 정치연구가 런즈추의 분석에 따르면, 후의 ‘외곽 지원 세력’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공칭투안(共靑團)파로, 후 진영의 최대 거점인 공산청년단 간부들이다. 이들은 비교적 나이가 적고 학력이 높아 공산당의 인재 풀로 활용되고 있다. 후진타오는 당 중앙 핵심 9인 중 공칭투안의 당서기 출신인 자기만이 공칭투안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들을 자기 지지 세력으로 만들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후진타오가 당 총서기가 되기 전인 2002년까지 공칭투안 시절 함께 일했던 간부 출신 22명 중 21명이 부성(副省)·부(部) 급 이상 직위에 올랐다는 것도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후의 또 다른 ‘세력 풀’은 공산당학교 출신을 비롯한 지식계 인사들이다. 후의 장점 중 하나가 학술·경제계뿐 아니라 체육·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유력 인사들과 교류가 두텁다는 것이다. 학계 쪽으로는, 최근 역사 왜곡 논란으로 물의를 빚는 중국사회과학원도 포함된다. 그는 특히 중앙당교 교장 시절, 이 기관의 성격을 바꾸어놓았다. 원래 중앙당교는 싱크 탱크 기관이라기보다는 중국 공산당 최고급 간부를 양성하는 기관에 가까웠다. 그러나 후는 중앙당교의 교육기관 성격을 강조하고, 민간 연구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정책 연구를 진행하는 기관으로 탈바꿈시켰다.

집권 이후에도 후는 학계 인사들과 교류를 계속했다. 중국 정치 분석가 리웨이는 후진타오 체제 이후 특히 중앙정치국의 집단 학습회의가 정례화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학습회의는 각계 전문가들을 초빙해 중국 공산당 중앙 핵심 지도자들의 소양 교육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학습회 내용을 대중에 공개함으로써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알리는 효과를 가져다 주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과거 중국 공산당 ‘밀실 정치’의 산실로 여겨져온 ‘베이다이허 회의’를 후진타오가 과감히 폐지했다는 점이다. 중국 당 지도부는 매년 여름 휴양지인 베이다이허에 집단 휴가를 떠나 그곳에서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비공식 회의를 열어왔다. 후는 이를 폐지하는 대신 집단 학습을 강화함으로써 정책 결정 과정에서 지식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는 인상을 심어 지식인 사회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장쩌민 세력보다 열세…전면전 피해

후의 싱크 탱크에 주어진 최대 과제는 무엇보다 민심을 후의 편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권력 핵심의 상당 부분을 장쩌민 세력이 장악한 상황에서 후진타오 세력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은 ‘후는 인민의 편’이라는 인식 굳히기이다.

지난해 후진타오는 ‘권력과 간부와 이익이 모두 인민을 위해야 한다’는 이른바 신삼민주의를 제기하고 민생 현장을 자주 방문하는 등 이미지 만들기에 나섰다. 후는 또한 ‘부패와의 전쟁’을 진두 지휘하며 일부 거물급 인사를 처벌했다.

지난 7월 말 장쩌민은 현 지도부에 ‘현실을 말하고 진상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를 계기로 후와 장 사이 권력투쟁설이 또 한 차례 불거졌다. 그러나 후의 세력들이 아직 장의 세력에 견주어 권력 핵심에서 상대적으로 비켜나 있는 상황을 미루어볼 때, 장 세력과의 전면적 대치는 이루어지지 않는 형국이다. 하지만 후진타오 세력은 전인민의 인기를 등에 업고 각계각층에 전방위적으로 퍼지고 있다. 이들이 장쩌민의 영향력을 지우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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