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케리 승부 ‘제3의 변수’
  • 워싱턴·정문호 통신원 ()
  • 승인 2004.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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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재 많은 케리가 승리 장담 못하는 ‘미스터리’
과연 역전극은 가능할까. 미국 대선일이 11월2일로 성큼 다가온 요즘, 미국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가 과연 현역 대통령인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를 누르고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을 것이냐에 쏠려 있다. 지난 8월 하순 부시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재지명된 이후 케리에 비해 9% 포인트 전후의 지지율 격차를 보이며 우세를 유지했다. 그런데 9월30일 첫 텔레비전 토론과 10월8일 두 번째 토론 이후 케리와 부시간 지지율 격차가 급격히 좁혀지고 있다. 케리가 ‘토론 효과’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를 보면 1차 텔레비전 토론 이후 9% 포인트에 달하던 부시와 케리의 격차가 오차 범위에 근접한 2%까지 줄어든 상태이고, AP통신 조사에서는 케리가 약간 우세를 보이기까지 했다. 지난 10월8일 2차 토론 직후 웹사이트 야후가 30분간 이용자들을 상대로 한 실시간 설문에 따르면, 약 7 대 3 비율로 케리가 선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 10월7일 현재 USA 투데이와 CNN, 갤럽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케리는 4년 전 대선 당시 부시가 이겼던 콜로라도 주에서 백중세를 보이고 있다. 또 얼마 전까지도 뒤졌던 위스콘신과 뉴멕시코 주에서도 부시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추세라면 케리가 세 차례에 걸친 텔레비전 토론에서 선전해 펜실베이니아와 오하이오 등 부동표가 많은 경합 주에서도 승리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재 미국 50개 주 대부분은 이미 공화·민주 양당의 지지 구도로 완전히 갈라진 상황이다. 이 때문에 부시·케리 두 후보는 2000년 대선 당시 양당의 치열한 경합지였던 오하이오·펜실베이니아·플로리다·미시간·매사추세츠 주를 포함한 10여 곳에서 서로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총력 유세전을 펼쳐왔다.

케리가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속단은 금물이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은 올해 대선에서 이라크 문제와 테러 문제에 대한 후보의 태도를 가장 큰 선택 요인으로 삼고 있다. 미국 국민 대다수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미국 국민은 또한 9·11 테러를 일으킨 주범이 오사마 빈 라덴이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안다. 나아가 미국 국민 대다수는 국토안보부가 구체적 근거 없이 테러 경보를 울려 불필요한 불안 심리를 유발했으며, 이런 행동이 대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도 꿰뚫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 여부를 가려내기 위해 이라크에 파견했던 정부 조사단 책임자인 찰스 두엘퍼 단장이 ‘이라크는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지 않았다’고 결론짓는 바람에 궁지에 몰려 있다. 최근까지 이라크 최고행정관을 지낸 폴 브레머조차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이 졸속이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경제 쪽으로 눈을 돌리면 부시의 처지는 더욱 딱하다. 2차 토론이 있던 10월8일 발표된 노동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9월 창출된 일자리는 고작 9만6천개였다. 부시가 공언한 대로 경제가 활력을 되찾았다면, 지금쯤 매월 25만개씩 일자리가 생겨야 한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견해다. 설령 25만개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15만개는 창출되어야 한다. 경제 통계 전문 회사인 클리어뷰 이코노믹스의 켄 매릴랜드 연구원은 “1억3천만명이라는 노동력 인구를 감안할 때 일자리 9만6천개 증가는 지극히 저조한 실적이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배럴당 50 달러를 넘어선 고유가 행진도 부시에게는 더할 수 없는 악재다.
“테러와의 전쟁은 부시가 더 잘할 것”

이처럼 이라크 전쟁과 테러, 경제 등 주요 선거 이슈마다 불리한 상황인데도 부시가 오차 범위 안에서 케리와 겨루며 재선을 넘볼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이 점이 이번 대선의 최대 미스터리이자 최고 감상 포인트다.

부시가 지금 처한 상황은 1991년 페르시아 만 전쟁을 치른 그의 부친 조지 H. 부시 대통령의 처지를 연상하게 만든다. 당시 그의 부친은 전쟁에서 승리한 뒤 지지율이 급상승했지만 국내 경제를 회복시키지 못해 재선에 실패했다. 현재의 상황은 당시보다 더 열악하다. 현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이라크 전쟁에서 이기고도 지금껏 이라크 전쟁 ‘부당론’에 휘말려 있으며, 경제는 더욱 엉망이다.

이런 구도라면 케리가 보름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필승을 장담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지난 10월6일 워싱턴 포스트가 등록된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부시는 케리에 비해 3% 포인트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부시가 감히 재선을 넘볼 수 있는 이유를 미국 국민의 안보 불안 심리에서 찾고 있다. 한마디로 과거의 페르시아 만 전쟁과 지금의 이라크 전쟁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은 1991년 전쟁에서 승리한 뒤 미군을 모조리 철수시켰지만 지금은 그 반대다. 미군의 압도적 화력으로 한달 만에 무너진 이라크에 지금도 12만 명에 이르는 미군이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피를 흘리고 있다.

게다가 9·11 테러의 주범으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 또한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또 대량살상무기 확산에 대한 공포도 테러에 대한 두려움 못지 않게 크다. 이같은 요인이 미국 국민들의 안보 불안 심리를 부채질하는 동시에 부시의 ‘생존력’을 지탱해주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상당수 유권자들은 부시가 이라크 전쟁에서 실수를 저지른 ‘과오’는 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테러와의 전쟁에 관한 한 케리보다 더 잘 대처할 것이라고 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테러 대처 능력은 케리보다 부시 쪽이 후한 점수를 얻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이후의 안보 불안 심리에 따른 반사 이득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케리에게 역전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1960년(민주당 존 F. 케네디 후보 승리)과 1980년(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후보 승리), 그리고 2000년(조지 W. 부시 승리) 대선에서 막판까지 지지율에서 뒤지던 후보가 텔레비전 토론을 계기로 대역전극을 벌인 전례가 있다. 현재의 상승세를 유지할 경우 케리가 백악관 주인이 될 가능성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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