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작물’ 편식이 탈 부를라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4.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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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밀·옥수수 의존 너무 심해…생산성 높이려면 생물종 다양성 살려야
지구상에는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고등 식물이 30만~50만 종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중 3만 종 가량이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이며, 경작 가능하거나 채집해 본격적인 먹거리로 삼을 수 있는 작물은 7천여 종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실제로 사람을 먹여 살리는 작물은 겨우 30여 종(전체 식량의 90%)에 그친다. 여기서도 주식 구실을 하는 작물을 추려내면 쌀·밀·옥수수 등 이른바 ‘3대 주식’을 비롯해 10여 종에 불과하다(아래 그림 참조). 인간은 먹는 문제에 관한 한 사실상 지독한 편식을 하고 있다.

이처럼 몇몇 작물에만 의존하는 인간의 편식증이 언젠가는 식량 확보 전선에 중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더 많은 쌀과 밀과 옥수수를 수확하느라고 숲을 없애거나 땅을 개간하는 한편, 경작에 부적당하다고 판단되는 품종을 인위적으로 도태시키면서 식량 자원 보존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좋은 품종만 키우다 대기근 맞을 수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 10월16일 5백 쪽이 넘는 두툼한 보고서 한 권을 발표했다. 제목은 <세계 식량·농업을 위한 식물 유전자원 현황>. 이 보고서는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세계 식량의 날(10월16일)을 맞아 잠재적인 먹거리를 보존하는 사업이 왜 중요한지를 환기하고, 이를 위한 다각적인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 펴낸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간은 큰 실수를 저질러왔다. 지난 100년간 경작 가능한 작물 품종의 4분의 3을 잃어버린 것이다. 보고서는 무엇보다도 인위적인 품종 선택이 미칠 악영향을 경고한다. 인간은 수확량이 많은 품종만을 개량해 널리 보급하고 있는데 이렇게 특정 작물이 한 품종으로 통일될 경우, 뜻하지 않은 재앙을 만날 수 있다. 특정 품종은 특정 병충해에 약하기 때문이다. 1845~1848년 감자 대기근이 유럽을 휩쓸어 아일랜드에서만 아사자를 1백50만 명이나 낸 적이 있는데, 당시 원인도 특정 병충해에 약한 감자 품종이 대량으로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외래 품종이나 개량종이 특정 지역의 토종을 몰아내기도 한다. 보고서는 중국의 예를 소개한다. 1949년 중국에는 밀 품종이 약 1만 종 가까이 있었으나, 1970년대에는 10분의 1인 1천 종으로 줄었다. 1950년대 중국 밀 생산의 81%를 토종이 담당했으나, 1970년대에 이르러 그 비율은 5% 대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경작 방식 변화와 산림 파괴, 개간 등 농업 활동 외에, 도시화와 인구 압력·전쟁이나 내전 등 인간 행위도 유전자 씨를 말리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농업 전문화와 세계화 추세도 식물 자원 보존에 명백히 역행한다는 사실이 지적되었다. 농업 전문화는 특정 품종이나 생산 방식을 채택하고 자본을 쏟아 부으면서 식물 자원(종) 다양성을 위협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식물 자원 다양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많다. 좀더 생산성 있는 품종을 개발하기 위해서라도 저마다 독특한 성질을 가진 품종들이 다양하게 존재해야 하며, 나아가 기아와 빈곤 문제를 덜어내는 데도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악의 기아 상태에 있는 나라들은 기후 조건 또한 열악하다. 이런 나라의 농민에게는 대량 생산을 위해 선택된 품종이 아니라, 혹독한 기후 조건을 잘 이겨낼 수 있는 품종이 더 중요하다.

‘미래를 위한 보장’.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식물 자원 다양성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더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려면 더 많은 식량이 필요한데, 식량 생산성의 열쇠는 결국 생물종 다양성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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