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잡이와 천재의 대통령 만들기
  • 이철희 (정치 평론가) ()
  • 승인 2004.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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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 모리스와 칼 로브의 ‘대권 필승’ 신화
선거 승패를 좌우하는 이는 전략가이다. 1988년 당시 부통령이던 ‘아버지 부시’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주역 리 애트워터, 1992년 클린턴이 ‘멍청아, 문제는 경제야’라는 구호로 대권을 잡도록 만든 제임스 카빌은 성공한 전략가로 평가받았다.

그렇다면 이 시대 최고 전략가는 누구인가. 조지 부시 대통령을 재선시킨 덕에 대통령으로부터 ‘나의 설계사’라고까지 극찬을 받은 칼 로브가 등장하면서 그의 이름이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성공시켰던 딕 모리스를 떠올리는 미국인도 많다. 둘 중 누가 더 센가.

네거티브 캠페인 불사하고 여론조사 중시

모리스는 1947년 칠삭둥이로 태어났다. 로브는 1950년 가장 늦은 달에 출생했다. 모리스의 별명은 ‘무서운 아이’ ‘고용된 총잡이’이다. 반면 로브는 ‘천재 소년’ ‘쓰레기장의 개’이다. 별명에서 극과 극을 달리는 판이한 성격이 느껴지지만, 두 사람은 공통점이 꽤 있다. 모두 타고난 승부사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모두 네거티브 캠페인을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여론이나 집단적 정서의 변화를 감지하는 데 동물적 후각을 갖고 있으며, 때문에 여론조사를 지극히 중시한다. 1977년 무렵 정계에 뛰어들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또 똑같이 이미지와 선거 기술을 중시하는 ‘스핀 닥터(spin doctor)’이기를 거부하고, 정책 조율사를 자처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들 모두 1946년생 동갑내기 인물들과 오래 인연을 맺었다는 것이다. 모리스는 정치 컨설팅이라는 업계에 처음 발을 디딘 순간부터 1946년생 클린턴과 질긴 인연을 맺었다. 이때가 1977년. 이듬해 모리스는 클린턴을 아칸소 주지사로 만들었고, 2년 재임 끝에 낙선한 그를 1982년 재선에 성공하도록 이끌었다.

로브는 죽마고우 애트워터 때문에 ‘아버지 부시’와 일찌감치 인연을 맺었고, 그 인연은 역시 1946년생인 ‘아들 부시’로까지 이어져 만개했다. 로브는 아버지 부시가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의장으로 일할 때 그를 돕다가 아들 부시를 만났다(1973~1974년 무렵). 1980년 아버지 부시의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 캠프에 참여했고, 1993년 아들 부시의 주지사 도전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불패 신화를 자랑하는 모리스가 1996년 클린턴을 재선시킨 전략은 무엇인가. 삼각주의(triangulation) 전략이다. 삼각형 밑변의 양 꼭지점을 좌우로 보고, 위쪽 꼭지점처럼 양쪽의 장점만 취하는 노선이다. 대표적인 예가 ‘균형 예산’ 개념이다. 1990년대 초 미국 사회의 화두는 균형 예산 달성이었다. 모리스는 클린턴 선거 참모들 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균형 예산 공약을 내세우자고 주장했다. 균형 예산 달성이라는 여론의 거대한 물줄기를 거스르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고 그는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코 여론에 대한 백기 항복은 아니었다. 공화당이 주장하는 재정 적자 축소 방안, 즉 복지 예산 축소 대신 다른 방안을 제시했다. 이후 전장은 공화당이 유리한 복지 예산에 대한 찬반 논쟁이 아니라, 어떤 방안이 좋은지에 대한 우열 논쟁으로 바뀌었다.

미국 정치사 100년 이래, 혹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정치 컨설턴트로 꼽히는 로브는 자신의 보스를 두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시키면서 불세출의 전략가로 기록되게 되었다. 로브는 모리스와 달리,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조금씩 약점을 메워 가는 스타일이다. 로브는 20년 동안 노력해 민주당이 지배하던 텍사스 주를 공화당 수중에 떨어지게 만들었다.

2000년 대선이 끝난 뒤 열린 한 포럼에서 로브는 ‘막판 방심’을 혼전 요인으로 꼽은 바 있다. 그 무렵 선거일을 열흘 앞둔 일요일에 부시 후보에게 유세를 쉬도록 했고, 격전이 벌어지던 주에서 마무리 표밭갈이를 소홀히 했다는 고백이었다. 그래서 그는 부시가 백악관에 입성하자마자 선거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전략실을 신설하고, 이번 대선이 있기 1년 전부터는 조찬 기획 미팅을 만들어 조금씩 조금씩 자기 진영의 약점을 보완해갔다. 그의 주문에 따라 부시 대통령은 지난 1기 재임 기간 내내 2000년 대선 때의 격전지를 꾸준히 방문했다.

백악관에 입성한 뒤 로브는 ‘공동 대통령’(Co-president)이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고, 부시 정부의 모든 정책을 ‘정치적 효과’라는 프리즘을 들이대 검증했다. 그는 정치와 정책을 철저하게 결합했다. 이 때문에 다른 참모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일도 있었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고 개입했다.

둘이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로브는 재선 전략의 핵심으로 2003년 후반부터 사상 최대의 ‘풀뿌리 당원 모으기’ 운동을 전개했다. 전국에서 공화당원 3백만명을 추가로 등록시키는 운동에 착수했으며, 선거 막바지에 가가호호를 방문해 ‘부시 재선’을 설득할 자원봉사자와 이들을 지휘할 핵심운동원에 대한 훈련도 시작했다. 이들은 선거 막판 ‘3일 작전’을 통해 지지자들을 투표소로 끌어낸다는 전략을 세웠다. 특히 그는 오하이오 주에 주목하고 역량을 집중 투입했다. 운동원을 70명이나 풀었고, 한 달에 두 번씩 정기 회의를 열어 조직을 관리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번 대선 최대의 분수령이 된 오하이오 주 승리였다.

로브는 9·11 테러 이후 형성된 미국인들의 ‘강한 미국’ 정서에 주목해 테러와의 전쟁과 강력한 리더십이 주제로 떠오르도록 선거 구도를 조성했다. 이를 위해 외곽 단체를 활용해 존 케리 민주당 후보의 베트남전 무훈을 정면 공박하는 광고도 서슴지 않았다. 상대 후보의 말 바꾸기(flip-flop) 전력을 집중 부각했다. 부시의 트레이드 마크인 ‘전시 지도자’ 이미지를 상대가 갖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부시로부터 재선 승리의 설계자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로브의 수법으로 볼 때 부시가 도덕주의를 내건 ‘갈라치기’ 전략으로 승리를 거두었다고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낙태가 합법적이라는 사람의 38%, 동성 결혼 지지자의 22%가 부시에게 표를 던졌다. 부시가 동성 결혼을 금지하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줄기세포 연구 반대, 신앙심에 기초한 사회운동 등을 내걸었던 것은 지지자들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모리스는 토끼다. 빠르다. 후보를 도울 때 당을 가리지 않는다. 클린턴과도 만남과 이별을 반복했다. 그래서 덕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모리스는 최근 힐러리를 비방하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로브는 거북이다. 꾸준하다. 대를 이어 부시 가문에 충성하고 있다. ‘천재 소년’이라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반짝이는 아이디어보다는 집요함으로 승부한다. 둘이 맞붙으면 과연 누가 이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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