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아라파트’를 주목하라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4.11.2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르완 바르구티, 팔레스타인 지도자로 급부상…‘풀뿌리 저항운동’ 통해 민심 얻어
‘마르완 바르구티를 주목하라’. 야세르 아라파트 사후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기수로, 올해 45세인 ‘정치범’이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1987년 이스라엘의 폭압적인 점령 정책에 항의해 팔레스타인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던 1차 인티파다(봉기)를 통해 정치 무대에 등장한 바르구티는 대중적 인기와 특유의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일찌감치 ‘아라파트의 후계자’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급성장한 정치인이다.

하지만 바르구티는 현재 영어의 신세다. 2002년 3월, 이스라엘 보안군에 의해 ‘이스라엘 민간인 살해를 자행한 테러 단체에 연루되어 있으며, 민간인 살해 음모에 가담했다’는 죄목으로 라말라 자택에서 체포된 것이다. 이후 이스라엘 법정에서 5년형을 선고받고 현재까지 복역 중인 바르구티는 줄곧 연행의 불법성 시비(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사법권 관할 지역에서 체포됨)와 고문 등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 유린 의혹을 입증할 만한 증거 불충분 논란 등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측의 입씨름 대상이 되었다.

바르구티가 최근 주목되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장래를 좌우할 내년 1월의 선거 때문이다. 지난 11월11일 최고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가 사망한 직후, 팔레스타인은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60일 이내에 새 지도자를 선거로 선출한다’는 팔레스타인 기본법(일종의 임시 헌법) 조항에 따라 총선과 정부 수반 선거를 내년 1월에 치르기로 확정한 것이다. 이 발표 직후, 팔레스타인은 물론 이스라엘과 미국에서조차 바르구티를 조기 석방해 내년 1월에 있을 선거에 출마하도록 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내년 1월의 팔레스타인 선거가 명실상부한 ‘민주 선거’가 되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 대중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에게도 선거에 나설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중의 대표’ 자처하며 독자 노선

열다섯 살 때부터 아라파트가 이끄는 ‘파타’에 참여한 그의 생애는 투옥과 석방으로 점철되어 있다. 팔레스타인 최고 명문으로 통하는 비르 자이트 대학 출신 엘리트인 그는 헤브루어와 영어도 유창하다. 1990년대 초반에는 이스라엘 평화단체들과 손잡고 오슬로 평화협정을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한 경험도 있어, 협상력도 갖추고 있다는 평이다.하지만 바르구티가 국제적으로 눈길을 모으는 이유는 그의 ‘투쟁 경력’이 화려하거나 자질이 우수해서만은 아니다. 바르구티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정치 자산은 독립 원칙과 체제 내부 민주화 등을 둘러싸고 수많은 파벌이 각축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정치판에서 ‘아라파트의 정통성’을 이어 가는 동시에 그 한계까지 극복할 수 있는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먼저 팔레스타인인에게 거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아라파트의 충실한 계승자이다. 감옥에 갇히기 전인 2001년 그는 이스라엘 언론인과의 인터뷰에서 ‘장차 아라파트에 대항해 대권에 도전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무슨 미친 소리냐’고 펄쩍 뛰면서 아라파트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확인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아라파트가 독선적으로 정부를 이끌고, 자치 정부와 부패 문제가 연루되는 모습에 대해서는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바르구티는 팔레스타인 안에서 성장한 인물로는 드물게,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최대 계파인 파타의 사무국장에 오를 정도로 권력 핵심에 접근해 있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 스스로는 항상 정치인이나 권력자가 아닌 ‘민중의 대표’를 자처하며 독자 노선을 걸었다.
바르구티는 파타 그룹 내의 원로파, 이른바 ‘올드 가드’들이 지닌 한계로부터도 자유롭다. 올드 가드란 아라파트와 함께 파타를 창설한 이래, 아라파트의 주변을 지키며 수십 년간 생사고락을 함께한 ‘혁명 동지’들을 가리킨다. 전 총리 마흐무드 압바스나, 현재 임시 정부 총리를 맡고 있는 아흐메드 쿠라이가 대표적이다. 이 중 아라파트 사후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 직을 임시 승계한 마흐무드 압바스(아부 마젠)는 서방 언론에 의해 ‘차기 지도자’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부패 문제에 연루되어 있거나(아흐메드 쿠라이), 이스라엘과의 협상에서 지나치게 저자세를 보여(마흐무드 압바스가 대표적) 팔레스타인 민중의 신임을 잃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들에 견주어 바르구티는 같은 세대 정치인인 모하메드 달란(전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보안대장)과 함께 파타 내부의 소장파, 즉 ‘영 가드’를 대표한다. 올드 가드와 달리 이들은 팔레스타인에서 나고 자랐다. 또 청소년기에 파타 그룹에 합류했으며, 1·2차 인티파다를 통해 정치인으로 성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파타 그룹의 올드 가드들은 또 다른 아킬레스건이 있다. 1970~1980년대를 통과하며 세를 불려온 이슬람 지하드나 하마스의 정치 공세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다. 이슬람 지하드나 하마스는 ‘오슬로 협정’ 실현을 위한 협상을 중시하는 파타와 달리 강경 무장 투쟁을 주장하며, 파타가 세속적인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데 대해 이슬람 원리주의를 내세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바르구티의 존재가 빛난다. 풀뿌리 저항 운동을 하면서 성장한 덕분에 아라파트의 그늘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나 있어 파타 반대파로부터의 예봉을 피할 수 있고, 팔레스타인 대중의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이스라엘과의 협상에 힘 있게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르구티의 강점은 부메랑이기도 하다. 생전의 아라파트가 그랬듯이, 이스라엘로부터 숱한 암살 위협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아리엘 샤론 같은 강경파가 보기에 바르구티처럼 능력과 대중적 기반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선거를 통해 정통성까지 확보할 공산이 높은 인물은 ‘경계 대상’이다. 바르구티는 2001년 8월 한 차례 암살 위기를 모면했다. 그가 팔레스타인 관할 구역인 라말라의 자택에서 체포된 것은 그에 대한 암살 기도가 실패로 끝난 뒤 10개월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조기 석방’ 여론에 이스라엘은 냉담

현재 거쉬 샬롬(<시사저널> 제787호 관련 기사 참조) 등 이스라엘 내 평화단체들은 그를 석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에 ‘미래의 지도자들’이라는 제목의 광고를 내, 이츠하크 라빈이나 이츠하크 샤미르, 메나헴 베긴 등 이스라엘의 역대 지도자들이 독립 과정에서는 한결같이 ‘정치범’ 또는 ‘테러범’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바르구티 조기 석방을 주장했다.

바르구티를 석방하라는 여론은 미국에서도 일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부채 담당 특사로 활동해온 제임스 베이커는 지난 11월11일, 즉 아라파트가 사망한 바로 그날 미국 CNN의 레리 킹과 가진 인터뷰에서, 내년에 있을 팔레스타인 선거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협상의 진정한 전기로 삼기 위해서는 바르구티를 조기 석방하는 등 적극적인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강경파인 아리엘 샤론 정권은 팔레스타인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민주 정부 구성’만 되뇌며, 이같은 조기 석방 여론에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팔레스타인이 꿈꾸는 ‘민주’와 샤론이 바라는 ‘민주’는 정의와 평화에 대한 양측의 시각차만큼이나 크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