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발탄 자꾸 날려도 “MD만은 못 버려”
  • 워싱턴·정문호 통신원 ()
  • 승인 2004.12.2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미사일 요격 실험 또 실패…9천억원 소모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천문학적인 예산을 퍼부으며 무리하게 추진하던 탄도미사일 요격 실험이 최근 또다시 실패로 끝났다. 북한과 이란 등 이른바 ‘불량국’의 탄도 미사일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4년 전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본격화한 미사일 요격 실험은 지금까지 여덟 차례 실시되어 다섯 번만 합격 판정을 받았다.

미국 국방부는 그간의 성공적인 실험을 토대로 실전 배치 준비 차원에서 지난 2002년 12월 야심에 찬 요격 실험에 나섰다가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그 후 시행 착오를 거쳐 2년 만인 지난 12월15일 또다시 실험에 돌입했는데, 이번에는 요격 미사일이 격납고에서 발사조차 되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 단 한번의 실험에 무려 8천5백만 달러가 들었다.

당초 이번 실험은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콰잘레인 환호초의 미군기지에서 발사된 요격 미사일이 알래스카 미군기지에서 발진한 탄도 미사일을 격추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요격 미사일이 발사되기 23초 전 미사일에 장착된 안전감응기가 원인 모를 이상을 발견해 발사 시스템 자체를 자동으로 폐쇄시켰다. 자연히 지하 격납고에서 발사를 기다리고 있던 요격 미사일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예정대로라면 알래스카에서 미사일이 발사되어 정확히 16분 뒤, 태평양에서 쏘아올린 요격 미사일에 160km 상공에서 격추되었어야 했다.

이번 실험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2004년 연말을 목표로 미국 국방부가 강행해온 미사일 방어(MD) 구축 사업 연기가 불가피해졌다. 하지만 미국 국방부 미사일방어국의 리처드 레너 대변인은 이번 실험이 미사일 요격 체제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극구 강변하고 있다.

잇단 실험 실패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는 미사일 방어 체제를 완성하는 데 열을 올려왔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12월 실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제한적이나마 요격 능력을 갖춘 미사일을 2004년 9월까지 배치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알래스카의 포트 그릴리 기지에 요격 미사일 6기를 배치했고, 캘리포니아의 반덴버그 공군 기지 발사대에도 지난 12월 초 요격 미사일을 배치한 상태다. 국방부는 또 올해 안에 포트 그릴리와 반덴버그에 각각 10기와 2기의 요격 미사일을 추가로 배치할 계획이다.

현재 미국 국방부가 실험중인 요격 미사일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추진 로켓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로 적의 탄도 미사일을 파괴하도록 설계된 요격 운반체다. 일단 우주에 진입하면 요격 운반체는 추진 로켓에서 분리되어 목표물을 향해 돌진하게 된다. 국방부가 지금까지 실시한 실험 중 실패한 것들은 한결같이 추진 로켓 아니면 요격 운반체 작동에 문제가 있었다.

이를테면 2002년 12월 실험은 어이없게도 요격 운반체가 추진 로켓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았다. 그 후 국방부는 2004년 봄 실험을 강행하려 했지만, 기술자들이 요격 미사일에 장착된 회로판에서 이상을 발견해 포기했다. 지난해 8월에는 추진 로켓의 비행 작동용 컴퓨터에서 이상이 발견되어 연기되었다. 그 후 2004년 12월 초부터 국방부는 다섯 번이나 실험을 계획했으나 번번이 기상 악화를 이유로 연기하다가 12월15일 실험을 강행해 보기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특히 이번 실험은 요격 미사일의 추진 로켓을 실전 배치용 로켓으로 장착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현재 요격 미사일 사업에는 주계약자인 보잉 사?엔지니어 5백명이 투입되었고, 레이더와 감지기 등 핵심 전자부품은 레이시온 사가 만들고 있지만, 완벽한 요격 미사일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기술 개발은 아직도 요원한 것 같다.
“요격 미사일 최종 타깃은 중국”

부시 행정부의 미사일 방어 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5년간 요격 미사일 개발을 위해 투입될 예산은 최소 5백억 달러 이상이다. 이를 위해 미국 의회는 이미 2004년 예산에 46억 달러를 배정했고, 추가 예비비로 2억 달러를 승인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사일 방어망 계획의 전면적인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49명의 퇴역 장성들은 미사일 요격 체제 구축 계획에 쓸 돈으로 방비망이 허술한 국경이나 항구, 나아가 핵무기 저장고에 대한 경비 강화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이같은 비판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점증하는 미사일 위협, 특히 북한의 탄도 미사일에 맞서기 위해 미사일 방어망이 필요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정보 당국은 북한이 보유한 대포동 2호(2단계 추진체) 미사일의 사정거리가 하와이와 알래스카에 이를 수 있으며, 3단계 추진 로켓을 장착할 경우 1만3,500km까지 비행해 미국 본토를 직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이같은 ‘북한 위협론’이 과장되어 있다는 반응이다. 우선은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탄두 장착 미사일을 발사할 기술적인 능력을 갖고 있느냐는 데 대해 회의론이 많다. 북한과 대비되는 이란의 경우도 아직은 미국을 위협할 만한 장거리 탄도 미사일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조지프 시린시온 선임 연구원은 “장거리 탄도 미사일 개발에는 북한과 이란 같은 나라가 넘어서기 어려운 기술적 난관이 너무 많다. 아직은 이들 나라가 필요한 기술적 돌파구를 열지 못했다”라고 단정했다.

부시 행정부 관리들이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해야 한다면서 내세우는 또 다른 논거가 ‘탄도 미사일 기술이 북한과 이란을 포함해 전세계 30개국으로 퍼진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것이지만, 이 역시 근거가 희박하다. 단거리 미사일이라면 몰라도 대륙을 넘나드는 장거리 탄도 미사일 기술 능력은 극소수 선진국만이 보유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북한이나 이란처럼 빈곤한 국가들이 미국을 겨냥해 탄도 미사일 개발에 나선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부시 행정부가 미사일 방어망 구축에 따른 논리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요격 미사일을 개발하려고 나서는 데에는 북한과 이란보다는 실은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장거리 핵탄두 미사일을 20기나 갖춘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