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동포 젊은이들의 용감한 '커밍아웃'
  • 오사카·안해룡 (아시아 프레스) ()
  • 승인 2005.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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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동포 그룹 ‘새흰’ ‘유리나’, 국적 당당히 밝히고 연예 활동
나는 재일 무희들’ ‘한·일 우호의 가교’ ‘한국어와 일본어 구사가 가능한 탤런트를 지향’…. 일본 오사카의 총련계 조선학교에 다니는 여중생 7명으로 이루어진 댄스 그룹 ‘새흰’이 데뷔한 데 주목한 일본 매스컴의 평가다. 자신들이 재일동포 3~4세라는 출생의 비밀을 숨기지 않고, 본명으로 당당하게 일본 연예계에서 활약하겠다고 도전장을 냈기 때문이다.

일대기가 영화화해 한창 주목되고 있는 역도산의 예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연예계에서는 ‘재일 동포’라는 존재를 밝히고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는 것은 아직도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욘사마로 대표되는 한류 열풍이 일본 열도를 강타하고 있지만, 일본 사회의 보이지 않는, 또 인식하기 힘든, 뿌리 깊은 차별의 벽은 여전하다.

고애향(16·히가시오사카 조선중급학교), 박유나(15·기타오사카 조선중급학교) 등 새흰 구성원 7명은 이같은 금기에 당당하게 도전장을 내민 재일 동포 새싹들이다. 재일 민족 교육의 상징인 치마 저고리를 입고 학교에 다니는 이들은 모두 3학년이며, 학교 무용부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다. 새흰은 새롭다의 ‘새’와 희다의 ‘흰’을 결합한 조어로 ‘새로운 빛’이라는 뜻.

새흰은 지난해 10월27일 오사카의 메일파크홀에서 열린 ‘아리오 이안 라이브 콘서트’를 통해 데뷔했다. 한국 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가를 부른 가수 이 안이 일본 NHK가 <대장금>을 방영하는 것을 계기로 마련한 무대에 올랐을 때 ‘찬조’ 출연한 것이다. 순백 의상을 입고 발랄한 율동과 함께 사랑의 노래 <유비키리>를 관객에게 선사했다.

유비키리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하는 약속’을 뜻하는 일본어다. 사랑으로 설레는 마음을 표현한 이 노래는 일본어를 기본으로 하고 한국어와 영어를 섞었다. 한국과 일본을 넘어서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를 노래는 물론 춤에도 담았다.

새흰 멤버들은 지난해 4월 일본 오사카의 다마쓰쿠리에서 문을 연 한 음악 학원에서 레슨을 받고 있는 학생 40여명 가운데, 엄격한 오디션을 거쳐 선발되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민족 교육’을 받은 덕분에 일본어와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고, 학교 무용부 활동을 통해 재능을 연마해왔다. “한국어와 일본어로 자연스럽게 노래를 부르고 연기도 할 수 있는 이중언어 연예인이 되어,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활동하고 싶다.” 새흰 멤버인 고애향의 다부진 포부이다.

고양의 이같은 포부가 현실화할 수 있었던 데에는 최근 일본에 휘몰아친 한류를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인들이 한국이나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또는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바탕이 형성된 것이다. NHK에 개설된 한국어 강좌 교재가 시중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는 것도 좋은 반증이다.

“일본에서 한국어와 일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는 재일 한국인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예술적인 재능을 찾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새흰의 데뷔를 이끌었으며, 일본에서 유일하게 일본어와 한국어가 동시에 가능한 연예인을 전문 육성하는 KJ 뮤지컬스쿨 김지석 대표(43)의 말이다. 그는 문화를 통해 한국과 일본이 진정하게 상호 교류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설명한다. 김대표는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어와 일본어로 동시 공연하는 ‘이중언어 연극’을 공연하면서, 재일 동포의 존재를 무기로 삼아 치열한 문화 실험을 계속해왔다.

‘재일’이라는 이중성·경계성이 최대 무기

도쿄에서 가수 활동을 하다가 KJ 뮤지컬스쿨의 당당한 ‘재일 동포 선언’에 공감하고 한 배를 탄 김복년씨(27)도 ‘커밍 아웃’을 한 대표적인 재일 동포 연예인이다. 그녀는 원래 FM도쿄와 록레코드가 주최한 ‘가자 가자 아시아’라는 오디션에서 선발되어 가수로 활동했다. 하지만 지금은 ‘유리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리나는 얼이라는 뜻의 옛말 ‘유리’와 낳다의 ‘나’를 합쳐 만든 조어로 ‘얼을 낳는다’라는 뜻이다.

처음 재일 동포 그룹이었던 유리나는 일부 멤버를 일본인으로 교체해 한·일 혼성으로 개편했지만, 중심은 여전히 조선학교 출신인 재일 동포 김복년과 조행세(24)이다. “조선학교에서 배운 것과 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사회에 나와 배운 것을 가지고 재일 동포의 정체성을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다”라고 김복년은 말한다.

일본의 한류 붐은 한국과 일본 두 문화 사이에 낀 독특한 존재로서의 ‘재일’을 주목하게 했다. 재일 동포 소녀 그룹 새흰과 역시 재일 동포 여성 그룹 유리나는, 재일이라는 이중성과 경계성을 무기로 일본과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세계에 도전하는 프론티어다. 이들은 “더 이상 아픔과 상처만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고통과 고민을 넘어 새로운 메시지를 만들고 싶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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