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서 벗어나 내게로 돌아가리”
  • 강산에 구술·탁현민 정리 ()
  • 승인 2003.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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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강산에의 ‘아시아 음악 여행’ 단상
아시아여 외쳐라. 오는 6월28일, 경기도 고양에서 가수 강산에가 아주 특별한 콘서트를 연다. 지난 4월부터 3개월 동안 ‘아시아 음악 여행’을 떠났던 그가 현지에서 만난 대표적인 뮤지션을 초청해 여는 이번 콘서트에는 중국·일본·필리핀과 인도네시아의 뮤지션 네 팀이 참가한다(인도네시아의 스랑크는 강산에의 ‘음악적 아우’인 윤도현이 만나고 왔다).
녹록치 않은 음악 경력을 가지고 있는 이 뮤지션들은 강산에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음악을 하는 자세, 음악에 대한 접근법 모두 그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강산에는 그들에게 받은 음악적 감동을 <시사저널> 독자에게 전해왔다(이 글은 강산에의 메모와 구술을 바탕으로 다음기획 탁현민씨가 정리했다).

지난 석 달 동안 아시아 뮤직 기행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일본·필리핀과 인도를 여행했다. 아시아 음악의 현재 위치와 가능성, 세계 음악 시장에서 아시아 음악이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는 여정이었다. 사실 오랜만에 새 음반을 내고 홀가분함에 젖어 있던 내게 이번 여행이 주는 의미는 각별했다. 음악 생활도 세상의 여느 일과 같아 새로운 자극이 없으면 스스로에게 빠져들기 쉽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빠져드는 순간 그 음악은 세상과의 끈을 놓치게 된다. 스스로에게 구속된 음악은 한없이 가벼워지고 느슨해지고 정처 없어지게 마련이다.

중국을 출발해 일본·필리핀·인도를 거치면서 나는 계속해서 내 안의 고민들과 이국의 뮤지션이 갖는 고민을 비교했다. 솔직히 말해, 이번 아시아 음악 여행은 아시아 음악의 현실과 가능성을 알아 본다는 커다란 목표(?)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앞서 말한 고민들의 답을 찾으려는 목적이 더 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에서 만난 아시아 음악인들은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무대 위의 열정을 고스란히 일상에 투영해서 살고 있는 가수와, 고된 삶 때문에 음악을 포기했던 여성 로커, 전통의 뿌리에서 대중의 요구를 읽어내는 뮤지션 등 음악을 하는 방법이나 표현해 내는 방식이 국적만큼이나 다양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음계를 만들어내는 인도의 길거리 음악인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일본의 뮤지션도 관객과의 관계를 결코 부르고 듣는 수직적인 것으로 설정하지 않았다. 특히 연주할 때 지나치게 세심하리 만큼 듣는 사람에 대해 고민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한국의 뮤지션에게서는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는 점을 보았다.

이들은 음악을 상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의사 소통 수단으로 이해하고 있었으며, 관객을 통해 자신을 확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음악을 듣고 부르는 행위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를 하나로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음악에 대한 이런 진지한 자세는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경험은 나 역시 무대 위에서 느낀 적이 있었다. 흔히들 ‘관객과 하나가 된다’고 하는데, 이는 관객이 노래를 함께 부르는 정도가 아니라 서로에게 완전히 빠져들어 연주자와 관객이 일체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그런 일체감이야말로 모든 음악인들로 하여금 음악인으로 살게 해주는 동력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여행에서 돌아온 지 한 달이 지나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여행 중이다. 이제껏 그들과의 대화와 그들의 음악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지금보다 더 오랫동안 여행을 하게 될 것 같다. 6월28일 내가 만나 함께 음악을 고민했던 이들과 공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생소한 아시아 음악이지만 이번을 시작으로 꾸준히 기회가 만들어지면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음악 세계에 대한 이해가 넓어질 것이고, 언젠가 뮤지션과 관객이 일체감을 맛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시아 음악의 매력을 확인할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오랜 여행이 자기의 위치를 확인해주어 결과적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 음악은 그 좌표를 찾아가는 나침반 구실을 해 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음악은 삶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하고, 뮤지션의 삶은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에게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깨달음이며 또 내가 만난 사람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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