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보니 다 코미디 됩디다”
  • 고재열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3.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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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근 도둑 이야기>로 제2 전성기 맞은 연극 연출가 이상우씨
'이상우가 대학로 돈을 다 쓸어 모으고 있다.’ 지난해 이상우씨(52)가 연출한 <거기>와 최근 막을 올린 <늘근 도둑 이야기>가 연이어 매진 행렬을 기록하면서 요즘 대학로에는 ‘이상우발 코미디 풍’이 거세다.

1980년대 <칠수와 만수>로 각광받은 이후 연출가로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씨의 영광은 기나긴 슬럼프와 함께 찾아왔다. 그는 “군대 간 아들에게서 편지가 왔다. 내용인즉슨, 아버지 연극은 어느 시점에선가 멈춰 있는 것 같다. 공부 좀 하시라는 것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그를 구원해준 것은 아일랜드 출신 희곡작가 코너 맥퍼슨이 쓴 <거기>라는 작품이었다. “새로웠다. 이런 것도 연극이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기교도, 정교한 드라마도 없었지만 끌렸다. 지금껏 나는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서 머리를 썼는데 그는 마음을 쓰고 있었다.”

다시 발동이 걸린 이씨는 폭주족처럼 질주했다. 1989년 초연한 자신의 스테디 셀러 <늘근 도둑 이야기>를 다시 무대에 올렸다. 이 작품은 전과 18범과 12범인 두 노인이 도둑질을 하다 잡혀서 조사받는 장면을 그린 상황극인데, 특별한 스토리 없이 두 주인공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30대 이상 관객은 두번 세번 공연을 보는 등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웃을 일이 없다가 오랜만에 웃게 되어 그런지 더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대기업 사장인 선배가 공연을 보고 ‘나 이렇게 웃어본 적 처음이야’라며 단원 전체에게 술을 샀다. 낮에 그룹 회장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는데 공연을 보고 말끔히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웃음은 기성세대에게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10대와 20대 관객, 이른바 ‘개그 콘서트 세대’의 반응은 그리 뜨겁지 못했다. 이씨는 “내가 웃기는 방식이 이제 나이 든 방식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스스로를 바보로 만들어서 상대방을 웃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의 연극과 <개그 콘서트>를 구분하는 지점은 바로 작품이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굳건히 두 발을 딛고 있는 그의 연극은 통쾌하지만 쓸쓸한 여운을 남긴다. 그는 사회를 비판하는 연극을 하고 싶어했던 자신이 코미디의 대가가 된 것이 ‘시대의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하다 보니까 모두 코미디가 되었다. 불합리한 권위를 부정하는 길은 그들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뿐이었다.

이번 공연은 또 명계남씨가 대통령 선거 이후 문화계에 복귀하는 첫 작품이어서 관심을 모았다. 이씨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출연 약속을 지켜줘서 고마웠다. 이번 공연에는 명계남식 ‘더늠’이 많이 들어갔다. 그는 ‘조선(일보)’이라는 말이 나오면 불같이 화를 내고 ‘인제 같은 놈’이라는 욕에 이성을 잃는다. 그의 ‘오버’가 재미있다”라고 말했다. 올해 이씨가 설정한 과제는 제대로 된 연극상을 제정하는 것이다. 영화계에는 계속 상이 느는데 연극에서는 오히려 상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작품으로는 지식인 사회를 일갈하는 코미디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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