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토불이 공포영화 흥행몰이 '후끈'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3.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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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영화도 신토불이여!
뭐시원한 것 없을까? 무더운 여름에 극장을 찾는 관객은 두 갈래 길 앞에 선다. 호쾌한 액션으로 더위를 잊을까, 으스스한 공포물로 땀을 식힐까. 올 여름 관객들은 공포물을 택했다.

지난 7월 말 종영한 <장화 홍련>(연출 김지운)이 전국에서 끌어들인 관객은 무려 3백15만명. <살인의 추억> <동갑내기 과외하기>에 이어 상반기 한국 영화 가운데 흥행 3위를 기록했다. 당연히 한국 공포 영화의 흥행 신기록도 겸했다. 뒤이어 개봉한 <여우계단>(연출 윤재연)은 개봉 2주 만에 관객 1백30만명을 돌파해 흥행 바통을 성공적으로 이어받았다.

게다가 <여우계단>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맞붙어서도 밀리지 않았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연 액션 대작 <터미네이터 3>과 정면 대결을 벌여 첫 주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한 것이다. 지난주 개봉한 <4인용 식탁>(연출 이수연)도 성적이 나쁘지 않다. 사흘 동안 관객 수는 33만명. 이번 주에는 유지태 주연의 <거울 속으로>(연출 김성호)가 공개된다.

여름 흥행전에 가세하지는 못하지만, 9월 말 개봉될 박기형 감독의 <아카시아>에 쏠리는 기대도 만만치 않다. 감성 미스터리물을 표방한 이 작품은 <여고괴담> 1편을 연출했던 박기형 감독의 세 번째 공포물이다.

바야흐로 한국 공포 영화 전성 시대다. 계절 상품인 탓에 1년을 주기로 띄엄띄엄 만들어질 수밖에 없어 올해 거둔 성과는 더욱 돋보인다. 1998년 <여고괴담>이 한국 공포 영화의 가능성을 환기한 이래 몇 년 동안 충무로가 치른 수업료는 만만치 않았다. 할리우드 ‘슬래셔 무비’(피가 튀는 잔혹극)에서 힌트를 얻어 덩달아 ‘난도질 영화’가 봇물을 이루기도 했다. 이어서 고전적인 비극의 구조를 취한 완성도 높은 작품도 선보였으나 모두 시장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특히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쓴 잔을 마신 영화로는 <여고괴담 2> <소름>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수업료는 헛되지 않았다. 한번 공포물에 맛을 들인 이들은 공포물의 매력을 재발견하고 그 안에 푹 빠져들었다. 올해 공포 영화의 가장 큰 성과로 볼 수 있는 <장화 홍련>은 <여고괴담>을 처음 기획했던 프로듀서의 아이디어였다. 영화사 씨네2000에서 시리즈를 2편까지 기획한 프로듀서 오기민씨는 영화사를 따로 차린 뒤 ‘장화 홍련 프로젝트’를 들고 감독을 물색했다.


오씨가 염두에 두었던 첫 후보는 <조용한 가족>으로 코믹 잔혹극이라는 장르를 선보였던 김지운 감독. 김감독 또한 단편 <커밍 아웃> <메모리즈> 등을 만들면서 장편 공포물 구상을 가다듬고 있던 차였다. ‘우리의 고전을 재해석한 고딕풍의 비극적 공포물.’ 오씨의 제안을 들은 김지운 감독은 자신이 준비하던 프로젝트를 제쳐둔 채 <장화 홍련>에 뛰어들었다. 그는 <장화 홍련>을 통해 공포물이 아름답고 슬프면서 동시에 무서울 수도 있다는 것을 환기해 주었다.

김지운 감독에 따르면, 공포물이나 스릴러는 만드는 이에게도 쾌감을 준다. 모두들 없다고 믿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므로 만드는 사람 스스로 영화적 판타지나 상상력을 극대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간에 대한 고찰이나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 극단적으로 고조된 연기 양식, 중요한 소리에 대한 세밀한 디자인과 색감, 내러티브 구성 등에서 감독의 몫이 그만큼 커진다. 거장들의 작품 목록에서 공포물이나 미스터리물이 빠지지 않는 것은 그런 장르의 매력 때문일 것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여고괴담> 시리즈는 이미 자체 관성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고괴담> 3편에 해당하는 <여우계단>이 평단의 시들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관객으로부터 열띤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학교 안’의 ‘무서운 이야기’라는 기본 설정에 충실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제작사 씨네2000의 이춘연 대표는 <여고괴담>을 적어도 10편까지는 만들 것이라고 장담한다. 학교라는 억압적인 공간이 존재하는 한, 그 안에서 겪어야 할 일상의 공포 또한 마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화 홍련>과 <여우계단>이 제1 라운드에서 선전한 데 이어 제2 라운드는 <4인용 식탁>과 <거울 속으로>가 이끌어 가게 된다. 오싹한 공포를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두 편 모두 앞의 두 작품에 비해 덜 무섭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제작진 또한 비명을 자아내는 공포물이라기보다는 짜임새 있는 추리물로 보아 달라고 주문한다. 두 편 모두 내로라 하는 스타들을 기용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4인용 식탁>은 전지현과 박신양이, <거울 속으로>에는 유지태가 대표 선수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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