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무대 '디바들의 전쟁'
  • 고재열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3.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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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홍혜경 내한 순회 독창회 열어…조수미·신영옥도 잇달아 국내 공연
올가을 클래식 무대에 ‘별들의 전쟁’이 펼쳐진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홍혜경(46) 조수미(43) 신영옥(44)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콘서트를 열 예정이기 때문이다.

맨 먼저 막을 올리는 디바는 셋 가운데 맏언니 격인 홍혜경이다. 홍혜경은 9월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을 시작으로 21일에는 대구에서, 24일은 울산에서, 그리고 27일에는 부산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뒤이어 9월25일부터는 조수미가 전국 순회 독창회를 갖는다. 순회 독창회는 10월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신영옥은 올 가을 가장 활발하게 국내 활동을 펼친다. 9월28일부터 10월4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가 올리는 <리골레토>에 여주인공 ‘질다’ 역으로 출연하는 그녀는, 10월15일에는 세계 3대 테너의 한 사람인 호세 카레라스와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듀엣 무대를 갖고, 11월에는 전국 순회 독창회를 열 예정이다.

팽팽한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이들 세 사람에 대한 평가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엇갈린다. 국내에서는 활동이 많은 조수미와 신영옥이 더 인기가 많지만, 미주 지역에서는 메트로폴리탄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홍혜경이 더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유럽 무대에서는 조수미의 인기가 압도적이다.

그러나 셋의 우열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같은 음역에 속하지만 음색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흔히 꾀꼬리 소리로 비유되는 조수미의 음색은 가볍고 기교가 많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이다.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로 비유되는 신영옥의 음색은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 청아한 음색을 가지고 있다. 홍혜경은 리릭 소프라노로 풍부하고 우아한 음색을 자랑한다.

선화예고 선후배인 신영옥과 조수미는 음악적 행보에서 닮은 점이 많다. 두 사람은 국내 활동과 해외 활동에 ‘이원화 정책’을 펴고 있다. 해외에서는 정통 클래식 활동만 하는 데 반해, 클래식 음악팬이 적은 국내에서는 저변을 확장하기 위해서 크로스오버 음반을 활발하게 내고 있다.

드라마 주제가를 부를 정도로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조수미와, 외국 민요를 담은 크로스오버 음반을 비롯해 크리스마스 캐럴 음반까지 내는 신영옥에 비해, 홍혜경은 클래식 외길을 고집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크로스오버 음반을 내지 않은 그녀는 국내에서나 국외에서나 정통 클래식 음악만을 고집하고 있다.

음악에 대한 접근법도 조금 차이가 있다. 오페라 무대에서 조수미와 신영옥이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반면 홍혜경은 다소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편이다. 조수미와 신영옥이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특유의 화려한 기교로 승부를 건다면, 홍혜경은 철저한 캐릭터 분석을 바탕으로 한 카리스마로 승부한다.
홍혜경의 공연 때마다 늘 따라다니는 말이 있다. 바로 ‘몇년 만의 공연’이라는 수식어다. 이번 공연도 2년 만의 국내 공연, 8년 만의 지방 공연이다. 가족에게 충실한 음악가로 이름난 그녀는 가정 생활과 음악을 병행하기 위해 메트로폴리탄 무대에서만 활동하다 보니 국내에서는 대형 콘서트를 가진 적도 없고, 공연도 너무 드문드문해서 팬이 적은 편이다. 1999년 성대에 이상이 생겨 전국 순회 독창회를 공연 직전에 취소하는 바람에 많은 팬이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홍혜경은 클래식 전공자나 동료 성악가들로부터 여전히 최고의 소프라노로 인정받고 있다.

예원학교에 다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어드 음악학교에서 수학한 홍혜경은 1982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1984년 제임스 레바인이 지휘하는 오페라 <티토 왕의 자비>에 세르빌리아 역으로 출연하면서 메트로폴리탄 무대에 데뷔한 그녀는, 이후 19년 동안 정상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데뷔하던 해에 ‘미국을 대표하는 4인의 젊은 성악가’로 선정되어 카라얀의 특별 초청으로 ‘잘츠부르크 음악 페스티벌’에 참가한 홍헤경은, 1986년 워싱턴 <오페라 가이드>지로부터 ‘올해의 예술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1 ~1992 시즌에,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 기념 오페라 축제에서는 다섯 작품 중에서 네 작품에 출연해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1998년 뉴욕 체임버 오케스트라 데뷔 리사이틀에서는 전회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클래식 전문가들이 말하는 홍혜경의 강점은 뚝심과 절제력이다. 욕심 부리지 않고 오직 메트로폴리탄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조금씩 자기의 영역을 확장한 그녀의 음악적 행보는 클래식 전공자들의 전범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자신의 목소리를 정확히 파악해 음역과 음색에 맞는 역만을 선택하고, 목소리와 맞지 않으면 아무리 큰 역이라도 과감히 포기하는 모습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외국 평론가들이 홍혜경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동양계 소프라노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는 데 일조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그녀는 <투란도트>의 류, <라보엠>의 미미, <리골레토>의 질다, <카르멘>의 미카엘라, <줄리어스 시저>의 클레오파트라,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마술피리>의 파미나 역을 소화하며 역할이 제한적이었던 동양계 소프라노의 외연을 확장했다. 제2 변성기를 겪은 이후에는 음색이 좀더 무거운 바그너 오페라에까지 도전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극장의 터주 대감으로 있으면서 이 극장을 찾는 거장들과 함께 공연해 빛을 발했던 홍씨는 데뷔한 지 10년이 지나고서야 유럽 무대에 진출했다. 유럽 무대에 진출하자 카리스마로 무대를 휘어잡은 그녀는 곧 스칼라 극장이나 베로나 야외 오페라 무대의 주연으로 떠올랐다. 올해 베로나 야외 오페라 무대에서 조반나 카솔라(투란도트 역), 호세 쿠라(칼라프 역) 등과 함께 <투란도트>에 출연한 그녀는 내년도 베로나 야외 오페라 무대의 시즌 개막작인 <라 트라비아타>에 출연 제의를 받은 상태다.
국내 가곡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홍혜경은 얼마 전 EMI에서 <코리안 송즈>라는 가곡 음반을 전세계 동시 발매했다. 이 앨범에는 <그리움> <가고파> <동심초> <나의 백두산아> <그리운 금강산> 등이 실려 있다. 파리 앙상블 오케스트라와 함께 작업하며 그녀는 직접 곡을 번역해 주고 녹음할 때마다 매 곡을 설명해가며 정성을 들였다.

특히 <그리운 금강산>은 홍씨가 가장 사랑하는 가곡이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만찬장에서 이 노래를 부른 그녀는 2002년 가장 주목되는 클래식 아티스트로 선정되어 백악관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에 참석했을 때도 이 노래를 불렀다. 내한한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부른 노래도 <그리운 금강산>이었다. 이번 독창회에서 그녀는 자신이 개척한 오페라 레퍼토리와 이번 음반에 실은 가곡들을 들려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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