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만날까 황후를 뵈러 갈까
  • 고재열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3.11.0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 가을 놓치면 아까울 뮤지컬 무대
지난 11월1일, 광주 월드컵경기장 내 빅탑시어터. 태풍 매미로 된서리를 맞은 <캣츠>가 재공연에 나섰다. 권토중래에 나선 <캣츠> 공연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두 달여 공백이 있었는데도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는 더욱 무르익어 있었다. 객석을 꽉 채운 관객들은 기립 박수로 환호했다.

광주 공연(11월9일까지)을 마친 <캣츠>는 대구 공연(11월15일부터 23일까지. 엑스코)을 거쳐 오는 12월2일 서울(잠실종합운동장 내 빅탑시어터)에 입성한다. 공연계 관계자들은 올 겨울 뮤지컬 무대가 <캣츠>, <명성황후> (11월14일부터 12월7일까지. 국립극장 대극장), <킹앤아이>(11월15일부터 12월14일까지. LG아트센터) 3파전 양상으로 진행되리라고 예상한다. 내년 1월 시작하는 <맘마미아>가 가세하면 뮤지컬 대전에는 더욱 불이 붙을 전망이다.

지난 겨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되었던 <캣츠>는 드물게 지방 투어팀이 서울 공연팀보다 더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당시 예술의전당 공연팀은 고양이답지 않은 둔한 움직임과 형편없는 노래 실력으로 뮤지컬 마니아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그러나 제작사 설앤컴퍼니의 설도윤 대표가 호주에서 직접 오디션을 거쳐 뽑은 이번 투어팀은 ‘품종 개량’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투어팀은 수원 공연과 부산 공연을 거치면서 무르익은 팀워크로 원숙한 공연을 펼치고 있다. 특히 런 텀 터거 역 대니얼 스콧과 그리자벨라 역 조디 길리스는 개성 있는 연기와 탁월한 가창력으로 관객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듀트로노미 역 임한성씨와 제미마 역 노지현씨 역시 세계적인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열연하고 있다.
지방 투어를 거치며 한국 뮤지컬 관객의 취향을 파악한 <캣츠> 공연팀은 박력 있는 연기와 힘 있는 노래, 화려한 무대 매너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빅탑시어터라는 새로운 형식의 텐트 극장은 예술의전당의 고색창연한 오페라극장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었던 묘미를 느끼게 해준다.

제작사들 라이벌 경쟁도 볼거리

<캣츠>와 맞붙을 토종 뮤지컬의 자존심 <명성황후> 앙코르 공연 역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번 공연은 런던 웨스트엔드 공연과 미주 순회 공연을 거치며 수정에 수정을 거친 마스터피스 공연으로 원숙한 무대를 선보인다. <명성황후>는 이번 공연을 끝으로 10주년이 되는 2005년까지 공연 계획이 없으므로 올 가을 놓쳐서는 안될 공연 중 하나이다.
마스터피스 버전으로 대대적인 성형 수술을 거친 <명성황후>는 젊은 관객을 불러모으는 데 성공했다. 제작사인 에이콤 인터내셔날이 실시한 관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이하 관객이 전체의 56.8%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번 앙코르 공연에는 명성황후 역 이태원과 함께 중요한 주역이었던 이건명이 빠져서 아쉬움을 남긴다.

<캣츠> <명성황후>와 함께 겨울 뮤지컬 무대에서 3파전을 벌일 또 하나의 작품은 율 브린너가 출연한 영화 때문에 잘 알려진 <킹앤아이>이다. 제작비 25억원이 투입된 대형 뮤지컬 <킹앤아이>에는 국립극단 출신 탤런트 김석훈씨가 왕으로, 올해 가장 주목되고 있는 배우인 김선경씨가 애나로 출연한다. 여기에 <오페라의 유령>의 두 주역인 류정한·이혜경 씨까지 출연하면서 <킹앤아이>는 호화 캐스팅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브로드웨이에서 <미스 사이공>과 함께 아시아계 배우들의 등용문이 되고 있는 <킹앤아이>는 1951년 초연된 이래 여러 차례 리바이벌된 뮤지컬이다. 이 공연으로 1996년에 최주희가 토니상 여우조연상 후보에, 2001년에 이태원이 올리비에상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다. 화려한 무대와 의상으로 보는 즐거움이 큰 <킹앤아이>는 뮤지컬 무대로 가장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겨울 뮤지컬 무대의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무대 밖에서 벌이는 대형 제작사들의 샅바 싸움이다. <킹앤아이>와 <캣츠>는 각각 제미로와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제작하는 뮤지컬로, 두 기업은 엔터테인먼트업계의 대표적인 라이벌로 꼽힌다. 뮤지컬계에서 불패 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제미로와 새로 진출한 CJ엔터테인먼트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두 뮤지컬이 어떤 흥행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CJ엔터테인먼트의 뮤지컬계 진출은 영화판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삼성이 대규모 영상사업단을 발족하고 영화판에 뛰어들었다가 비싼 수업료만 치르고 나간 뒤 CJ엔터테인먼트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 영화판에 진출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공연계에서도 마찬가지로 CJ엔터테인먼트는 SJ엔터테인먼트 등 삼성맨들이 터를 닦고 2선으로 후퇴한 뒤 전선에 뛰어들었다.

대작 뮤지컬 외에 뮤지컬 마니아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스테디 셀러 뮤지컬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1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브로드웨이로 진출하고 그 해 토니상을 석권한 <유린타운>(11월30일까지. 우림청담시어터)은 국내에서도 호평받고 있다. 설경구·방은진·황정민·장현성 같은 스타를 배출하며 2천회 공연 위업을 달성한 <지하철 1호선>(학전 그린소극장)도 아직 보지 않았다면 챙겨 보아야 할 작품이다. 토착화에 성공해 ‘한국형 뮤지컬’로 자리 잡은 <록키 호러쇼>(11월21일부터 12월31일. 폴리미디어시어터) <그리스> (11월16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승홀) <넌센스 잼보리> (12월19일부터. 연강홀)도 선택했을 때 후회할 가능성이 낮은 작품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