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정보, 이 시대의 바벨탑
  • ()
  • 승인 2000.11.2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합(Oh, so closed)’ → ‘부시 당선(IT’S BUSH)’ → ‘부시 맞나?(IS IT BUSH?)’ → ‘접전 중(Contested)’. 미국의 한 신문이 11월7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 결과를 놓고 그 다음날 네 차례나 바꾼 1면 머리 기사 제목이다. 외국 언론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런 상황에 비판을 가했다. 영국의 <미러>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패러디해 ‘포레스트 첨프스’(chumps:얼간이들)라는 제목으로 ‘이 선거는 초콜릿 상자와 같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라며 영화 속 대사를 바꾸어 실었다. 러시아의 한 웹사이트에서는 ‘최종 보도에 따르면 푸틴이 앞서고 있다’며 익살을 부리기도 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당연히 언론의 ‘오버’에 의한 오보(誤報) 때문일 것이다. 언론들은 자신들의 선거 예측 시스템을 믿고 출구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성급하게 추측 보도를 했다. 더구나 98% 정도 개표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나머지 표가 7 대 3 비율로 고어에게 몰릴 경우 결과가 뒤집힐 수 있는데도 ‘부시 승리’를 무리하게 보도했다. 심지어 개표가 진행될수록 표차가 극적으로 좁아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오버’에 의한 선거전 오보로 망신살 뻗친 미국 언론

그런데 이런 웃지 못할 일이 ‘미디어의 왕국’이나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는 미국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에 ‘그런 나라도 어쩔 수 없구나’ 하고 위로만 받을 수 없다는 데에 우리의 아픔이 있다. 최고 수준이라는 나라마저 그 지경이니 다른 나라들은 어떠할 것인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양날의 칼’인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다룬 책으로 최근에 번역된 이냐시오 라모네의 <커뮤니케이션의 횡포>와 데이비드 솅크의 <데이터 스모그>에 자꾸 눈이 간다.

이 두 저자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계속 늘어가는 정보더미 속에서 어떻게 정보를 처리하고 관리해야 할지를 문제 삼았다. 정보 자체가 상품이 된 시대, 정보 자체와는 더 많이 ‘접속’하지만 정보와의 실제적인 ‘접촉’은 감소하는 시대, 정보가 신호가 아닌 잡음으로 기능하기 쉬운 시대, 정보 삭제나 결핍이 아니라 과잉과 왜곡이 문제되는 시대, 그래서 데이터 자체가 스모그처럼 우리의 시계(視界)를 흐려놓는 시대가 바로 현재하는 것이다.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라는 올림픽 정신처럼, 지금 우리의 정보들은 ‘더 많이, 더 빨리, 더 진짜처럼’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듯싶다. 하루 8시간씩 1분에 천자를 읽더라도 단 하루 동안 배포된 정보들을 읽으려면 한 달 반이 소요된단다. 이제 정보는 너무 적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탈이다. 그리고 최근 30년 동안 컴퓨터의 정보 처리 속도는 2년마다 두배로 증가했단다. 그래도 우리는 끊임없이 ‘업그레이드’ 강박에 시달린다. 또한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보이기 위해 미국 언론은 페인트박스(Paintbox)라는 그래픽 색조의 도움으로 <타임>에 O.J. 심슨의 얼굴을 더욱 검게 조작해 실었다. 그가 흑인임을 악의적으로 강조하려 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이미지니까.

가히 21세기의 바벨탑은 ‘정보’가 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정보를 신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더욱 더 분열되고 마비되며, 무감각해져야 한다. 조각 난 정보, 넘쳐나는 정보, 왜곡된 정보 속에서 ‘정보의 바다’가 아닌 ‘정보의 홍수’를 경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럴수록 ‘보는 것’이 아닌 ‘이해하는 것’, ‘모으는 것’보다는 ‘해석하는 것’, ‘빠른 것’보다 ‘정확한 것’에 강조점을 두어야 한다. 정보가 위험해질수록 정보 자체가 아니라 ‘정보에 대한 정보’, 우리를 찾아오는 정보가 아니라 우리가 찾아가는 정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빠른 동작이라도 느린 화면으로 다시 돌려 보아야 더 잘 볼 수 있지 않은가. 또한 컴퓨터나 휴대폰은 ‘잠시 꺼두어도 좋다’. 그래야 대화나 사색이 가능하니까. 물론 그런 광고 문구를 만들면서 그에 대한 저항조차 역이용하는 것이 우리나라 최대의 이동통신 회사라는 사실이 아이러니컬하기는 하지만. (penovel@hitel.net)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