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가 이명원씨가 상아탑을 떠난 까닭은?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0.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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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집 <타는 혀> 펴낸 이명원씨 “비판 거부하는 대학의 보수성 견딜 수 없었다”
은 문학 평론가 이명원씨(30)는 최근 <타는 혀>(새움)라는 비평집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 책은 한국문학사 연구 및 비평의 대가인 김윤식 교수를 비롯해 김 현·백낙청·임 화 등 한국 현대 문학 비평의 ‘거목’들을 비판적으로 접근한 논문을 한 데 묶은 것이다. 책 출간을 자축할 틈도 없이 그는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자신이 1999년 초 발표했던 김윤식 교수에 관한 비판 글이 뒤늦게 언론에 보도되었고, 이 와중에 다니던 서울시립대 국문과 대학원에 자퇴서를 제출한 것이다.


표절·서울대 패권주의 등 ‘뇌관’ 건드린 셈

이씨에 따르면, 사태의 발단은 그가 김윤식 교수와 관련한 글을 발표했던 1999년 2월로 거슬러올라간다. 이씨는 ‘김윤식 비평에 나타난 현해탄 콤플렉스 비판’(<전농어문연구> 제11집)이라는 논문을 통해 ‘김윤식 교수가 임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나 실은 임화와 마찬가지로 현해탄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김교수의 <한국근대소설사연구>가 일본의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의 저작 가운데 상당 부분을 ‘적절한 주석 없이 인용했다’고 지적했다.

두 달 전 월간 <말>(10월 호)이 이 문제를 활자화하기 전까지 이씨의 논문은 2년 가까이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김교수는 월간 <말>과의 인터뷰를 통해 ‘(부적절한 인용 처리는) 명백한 실수이며 잘못된 일’이라며 ‘젊은 학인 이명원의, 나를 비판하는 패기를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논란이 이쯤 마무리되는가 싶었지만 이씨가 <말> 11월호에 대학원 자퇴 이유서를 기고하면서 사태는 심상치 않게 전개되었다. 이씨는 문제의 글이 쓰인 시점부터 최근 보도 후 한 달여 동안 교수들과 주고받았던 대화를 공개하면서 대학 사회의 보수성을 개탄했다. 이씨에 따르면, 교수들은 이씨가 바깥에서 ‘저격수’로 지목되고 있다며 여러 차례 이씨의 글쓰기에 대해 못마땅한 기색을 보였다. 그는 “비판 내용과 수준이 아니라 비판 행위 자체를 문제 삼는 것에 절망했다. 이처럼 보수적인 풍토에서는 더 학업을 계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서울시립대에서는 국문과 재학생 및 동문과 총학생회를 주축으로 지난 10월28일 대책회의를 가졌다. 이씨는 이미 학교를 떠난 몸이라는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지만 논란은 그와 상관없이 불붙고 있다. 권성우 교수(동덕여대·국문학)는 “이명원씨의 주장이 맞다면 교수들의 반응은 실망스럽다. 이씨와 같은 비판적 지성을 포용했을 때 다른 대학과 달리 열린 지성의 전통을 세우게 되었을 것이다”라는 의견을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밝혀 놓았다.

논란은 서울대 국문과와 서울시립대 국문과의 홈페이지, 출판사 창작과비평의 홈페이지와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 등 사이버 공간에서 더욱 격렬하다. 결과적으로 이씨가 자퇴한 것이 존경받는 원로 교수에 대한 비판 글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씨가 공부하던 서울시립대 국문과 교수진이 모두 서울대 국문과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표절 시비와 함께 서울대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이 한 데 엉킨 채 전개되고 있다. 여기에 문단과 언론이 알고도 침묵했다는 ‘침묵의 카르텔’론까지 보태졌다.

이명원씨의 문제 의식과 그가 맞닥뜨린 벽의 두께에 공감하는 의견이 적지 않은 반면, 논의가 너무 단순하게 흘러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김윤식 교수가 국문학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만큼 그의 실수보다는 30년 동안 일군 업적을 보아야 한다는 주문이다. 표절 혐의가 김교수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에서 말미암았다는 옹호론도 눈에 띈다.

처음 김윤식론을 쓸 때 이처럼 큰 회오리를 불러일으킬지 짐작하지 못했다는 이씨는,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비판적 글쓰기의 운명과 책임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는 그만두었지만 학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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