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 시대 풍속화 쌍벽 단원·혜원의 걸작선
  • 성우제 기자 ()
  • 승인 2000.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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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 정조 서거 200주년 특별전…두 거봉 비교 감상 기회
조선 회화의 양대 거봉 단원 김홍도(1745~1806)와 혜원 신윤복(1758께~1820께)의 대표작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간송미술관(02-762-0442)이 제59회 정기전으로 내놓은 <단원 혜원 특별전>(10월15~29일)은, 같은 시대를 살면서 그 시기를 조선 시대 문예 부흥기로 만든 두 화성(畵聖)의 진면목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전시회이다.

‘전통 회화의 보고(寶庫)’라 불리는 간송미술관이 두 거봉의 작품을 나란히 전시하는 까닭은, 올해가 정조 서거 200주년을 맞은 해이기 때문이다. 문예에 정통한 군주로서 조선 고유의 색이 두드러지는 진경(眞景) 문화의 화려한 대미를 장식하게 했던 정조의 서거 200주년을 당대 대표 화가의 작품으로 기념하는 것이다. 간송미술관 최완수 연구실장은 “겸재 정 선이 진경 문화를 창시하고 절정에 올려 놓았다면, 단원과 혜원은 그 시대를 찬란하게 마무리했다”라고 말했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백수십 점으로 구성된 <단원 혜원 특별전>은, 무엇보다 대표작들을 통해 두 화가의 상반된 인생과 예술 세계를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 두 화가가 조선 풍속화의 쌍벽을 이룬다고 하지만, 그들의 삶과 작품 세계는 상반된 특성을 드러내 보인다.

단원은 세습 화원 출신이 아니면서도 특출한 재능으로 나이 29세에 정조에게 발탁된 화가이다. 단원을 만날 무렵 22세 왕세손이었던 정조는 재위 기간(1777~1800) 내내 단원을 특별하게 후원했다. 정조로부터 초특급 대우를 받은 단원은 정조의 안목에 따라 국가의 중요한 그림을 모두 그려냈으며, 화원 화가이면서도 늘 사대부를 자처했다.
단원이 제도권 안에서 활약한 최고의 화가였다면, 혜원은 제도권 바깥의 일인자였다. 혜원 역시 화원 화가였으나, 단원과 달리 세습 화원 집안 출신이었다. 혜원의 아버지 일재 신한평(1735~1809)은 화원 화가로 초상·풍속·화조 부문에서 빼어난 기량을 발휘하고 있었다. 친척이 가까운 곳에서 벼슬하는 것을 피한다는 ‘상피(相避)’ 때문에 화원 화가이면서도 도화원에 나가지 못한 혜원은 수군(水軍) 같은 곳에 배속되어 지도를 그리며 외방을 떠돌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조의 눈 밖에 났다’는 점은 그에게 특별한 자유를 안겨주었다. 혜원은 지도를 그리는 일보다 풍속 인물, 그 중에서도 서울의 세련된 상류 사회를 그리는 데 주력했다.

때는 화려한 문화의 말기적 증세, 곧 퇴폐적인 분위기가 만연한 시절이었다. 혜원은 서울 명문 대가 자제들의 난만하고 현란한 생활상을 화폭에 올려 풍속화의 걸작인 <혜원전신첩>(국보 135호) 같은 명품을 남겼다.

이번 특별전이 갖는 의미는 당대에 쌍벽을 이루었던 두 화가의 작품을 한눈에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정조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은 단원은 진경 시대의 정신을 체화해 그 양식의 대미를 다채롭고 세련되게 장식한 반면, 정조의 눈 밖에 났던 혜원은 한 발짝만 더 나가면 곧바로 쇠퇴로 이어질 한량과 기생 들이 연출하는 질펀한 풍속도에서 장기를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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