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미디어_시티 서울 2000> 개막
  • 성우제 기자 ()
  • 승인 2000.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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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미술 경향 선보여
서울을 세계 유수의 대도시와 구별하게 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어디를 가든 번쩍이는 전광판이다. 1990년대에 등장한 전광판은 안 그래도 복잡한 서울 도심을 더 깊은 ‘시각적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일부에서 천덕꾸러기로 여겨져온 그 전광판이 ‘미술 캔버스’로 거듭났다. 9월2일~10월31일 서울에서 열리는 <미디어_시티 서울 2000>(<미디어…>)의 다섯 가지 전시 가운데 하나인 <시티 비전>을 통해서이다.

서울시가 주최하는 <미디어…>는 서울시립박물관·서울시립미술관·서울600년기념관이 몰려 있는 경희궁 공원을 중심으로, 전광판과 지하철(56쪽 참조)까지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국제 미술 이벤트이다. 비엔날레 형식으로 열리는 <미디어…>에는 한국 작가 52명, 외국 작가 80명이 참가해 ‘미디어’를 매체로 하는 작품을 내놓았다.

1회 대회인 올해의 주제는 ‘도시:0과 1사이’. 모든 정보를 0과 1로 처리하는 디지털 세계에서 서울이 ‘넷 시티(net city)’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미디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이른바 ‘세계적 스타’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것이다. 본전시인 <미디어 아트 2000>에는 비디오 아트 창시자인 백남준씨를 비롯해 미디어 아트의 거장으로 꼽히는 빌 비올라·게리 힐·브루스 나우먼 등 미국 작가와 매튜 크롤리(영국)·로즈마리 트로켈(독일)이 참가했다. 한국에서는 박현기·김영진·이 불·박찬경 씨 등이 출품했다.

미국 뉴욕근대미술관 큐레이터 바버라 런던과 영국 런던 포토그래퍼스갤러리 큐레이터 제레미 밀러가 함께 만든 본전시 <미디어 아트 2000>은, 미디어 아트의 어제와 오늘을 파악하게 하는 전시회이다. <미디어…>의 송미숙 총감독(성신여대 교수)이 이번 대회의 ‘중심’이라고 소개한 백남준씨의 신작 <시장>은 본전시에 나와 있다.
본전시장인 서울시립박물관 입구에 설치된 <시장>은 한국 시장 특유의 활기를 잘 드러낸다. 온갖 잡동사니 사이에 설치된 비디오 모니터 15개는 무수한 영상 이미지를 끊임없이 흘려보낸다. 그 가운데서도 시장 좌판에서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골라, 골라”를 외치는 젊은 상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송미숙 총감독은 “백선생은 서울에서 가장 활기찬 모습으로 시장을 꼽았고, 그 활기를 통해 서울의 미래를 내다보려 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설치 작품이 주를 이룬 대규모 미술 행사로는 보기 드물게 본전시는 차분하게 정리된 모습을 보여준다. 빌 비올라의 작품 <인사>는 45초간 녹화한 이미지를 10분으로 늘려 만남과 인사와 대화를 연속 동작으로 처리하고, 박현기씨는 나무 사이에 돌과 모니터를 끼워 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첨단 매체를 활용하는 첨단 미술이 속도전을 펼치는 현재와 미래가 아니라 느릿느릿한 과거 쪽으로 눈을 돌린 것이 이채롭다.

<미디어…>는 미술이 지닌 엄숙주의·권위주의를 떨쳐버리고, 미술이 일반인과 매우 가깝고 친숙한 예술 장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애썼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대중 음악처럼 미술이 전광판을 통해 보이는가 하면, 시민의 일상 공간인 지하철에서도 작품을 대할 수 있다. 본전시에 나온 작품들도 관객에게 ‘겁먹지 말고’ 적극 다가오라고 권유한다.

<디지털 엘리스>(큐레이터 박신의)와 <미디어 엔터테인먼트>(큐레이터 장창익)는 아예 미술 전시장을 어린이와 청소년의 ‘놀이터’로 만들어놓았다. ‘인터렉티브 댄스장’이 있는가 하면, 어린이 공간인 <디지털 앨리스>에는 직접 만지며 놀아야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들이 나와 있다.

<미디어…>는 미술에서 새로운 매체로 각광받는 미디어를 소재로 삼아 그 특징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수준 높은 전시회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국제 이벤트이면서도 구미 작가에 치중(특히 미국)해 제3 세계 작품이 거의 없다는 점, 시민에게 시각적인 폭력을 자행하는 도심 전광판을 ‘지나치게 긍정’한 점이 흠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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