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북 아트> 전을 통해 본 ‘책의 복원’ ‘책의 반란’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3.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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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한쪽의 장식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고급 양장본 책들이 졸부의 상징으로 취급받는 이유는, 아마도 책을 장식용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혐의에서 비롯했을 터이다. 전통적으로 책은 우리에게 ‘마음의 양식’이지, 책 자체가 예술이거나 더군다나 액세서리 따위로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또한 ‘모르고 하는 소리’에 속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책은 신성한 대상이자 아름다운 장식물이었다. 중세 유럽의 수도원에서는 십자가나 성배와 함께 필사본 책들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20세기 초 탐미주의는 책 장식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 북 아트>전(2004년 2월1일까지)은 ‘책의 반란’이자, 동시에 ‘책의 복권’에 해당할 법한 행사다.
전시장에는 문화재급 고서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다. 조선 시대의 도덕 교본 <오륜행실도>에서는 단원 김홍도가 그린 밑그림을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춘원 이광수의 <이순신전>을 펼치면 현대 한국 화단의 거목 청전 이상범이 직접 그린 삽화가 보인다. 김동인의 <감자>(1935년), 서정주의 <화사집>(1941년),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1946년) 같은 근대 문학의 귀한 사료들도 있다. 특히 1926년에 발간된 김소월의 <진달내꽃> 초판본은 현재 국내에 단 두 권만 남아 있는 희귀본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이들 사료 가치가 있는 희귀본들이 아니다. 책 자체가 예술인, ‘북 아트’라고 불러야 마땅할 책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전시장 입구에서 우선 눈길을 끄는 책은 <모던 아트>이다. 펼친 크기가 가로 1m 세로 70cm에 무게만 32kg이나 나가는 이 책에는 서양 근·현대화 2백65점이 실제와 거의 비슷하게 인쇄되어 있다. 이탈리아의 한 수제책 전문 출판사에서 2천부 한정본으로 제작한 것으로, 국내 판매가는 8백80만원에 이른다.

2002년 프랑크푸르트 북 페어에 나와 화제를 모았던, 무하마드 알리의 초대형 회고집 또한 50cm×50cm 크기에 34kg짜리 초대형 책이다. 이런 책들과 아라키·레오나르도 다빈치·마릴린 몬로 등을 다룬 초대형 책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품 대접을 받고 있다.

전시장 한쪽에서는 국내의 ‘북 아트’ 역사 또한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에서 간행된 책들이 이른바 ‘북 아트’ 혹은 ‘아트 북’의 세례를 받기 시작한 지도 20년이 넘었다. 서기흔·정병규·안상수·금누리·이나미 등은 단조로웠던 책의 모양이나 표지 도안을 과감하게 바꾸기 시작했다. 그들에 의해 책은 단순하게 문자만을 담아두는 부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최근에 출간된 <김영하와 이우일의 영화 이야기>나 10여 년 전부터 안상수·금누리 씨가 실험하고 있는 부정기 간행물 <보고서/보고서>에 이르면, 전통적인 책의 정의에 대한 혼란이 일 수밖에 없다. <김영하와…>는 만화가 전경(前景)이 되고 문자가 배경이 된, 책의 역할 변화를 상징하는 책이다. <보고서/보고서>에서는 문자가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역시 주인공은 아니다. 일부러 읽기 어렵게 배치되어 있는 문자는 시각적 이미지를 구성하는 재료, 다시 말해 일종의 다른 형식으로 된 그림일 뿐이다.

‘문자 세대’가 느끼는 긴장과 안타까움

이런 책들의 향연을 둘러보면 책은 문자의 묶음이라는 생각이 솔직히 더 이상 들지 않는다. 책은 읽을 뿐 아니라 보는 것이며, 적극적으로는 장식품이기도 하다. 그것도 당당하게. 그러고 보니 전시회의 주제가 어렴풋하게 정리된다. ‘책의 개념을 바꿔라!’

그런데, 전시장을 둘러보는 ‘문자 세대’의 유민들이 저도 모르게 서늘한 긴장감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책들이 호사스러워서만은 아닐 것이다. 문학 평론가 이남호 교수(고려대)는 전시회에 앞서 가진 강연에서 이런 감상 소감을 털어놓았다.

“책의 변화는 화려하고 감각적인 전자 시대에 살아 남기 위한 자기 갱신의 의미가 있다. 변화한 덕분에 책은 그 위엄과 권능과 문화적 주도권은 잃었을지라도 우리 곁에 넉넉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새로운 개념의 책과 문자 속에서는, 이전의 책과 문자 속에 담겨 있던 소중한 가치들이 소외된다. 문자는 정보 전달의 수단일 뿐, 이성적 사유와 인식의 도구는 더 이상 아니다. 이러한 문자와 책의 사라짐을 보면서 나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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