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88세 현역’ 장우석 화백 전시회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9.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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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전 장우성 화백 신작 전시회 <月田老師米壽畵宴>
나이 예순만 넘으면 자의든 타의든 은퇴를 생각하게 하는 한국 사회에서, 미수(米壽)는 은퇴를 했어도 몇번은 했을 나이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미술계는 행복하다. 어느 분야에서도 찾을 수 없는 ‘88세 현역’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화단의 최고 원로인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선생이 바로 그 현역이다. 32년 선전(鮮展)에 입선해 미술가로 데뷔한 월전은 이후 국전 추천 작가·국전 심사위원·서울대 미대 교수를 두루 역임한 근대 한국화의 살아 있는 역사이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교육자로 활동해 온 그가 미수가 된 오늘까지 한시도 붓을 놓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월전의 문하생들이 마련한 <서울대학교 미대동문송축 월전노사미수화연(月田老師米壽畵宴)>(6월4~18일·학고재·02-739-4937)에, 월전은 최근 3년간 제작한 30여 점을 내놓았다. 간결한 필의와 담백한 색채 감각을 추구하는 그의 작품은, 그동안 전통 문인화의 격조를 현대적으로 변용해 한국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이번 전시회에도 평생 화업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들이 나와 있다.

“문인화란 그리는 이의 주관과 정서를 드러내는 선비 그림이다. 요즘에는 먹으로만 그리면 문인화라고들 하는데, 선비 정신이 배어 있지 않으면 문인화가 아니다.” 월전의 신작은 그리는 이의 ‘주관’과 ‘정서’를 전통적인 방법, 곧 그림과 화제(畵題)를 통해 드러냈다.

월전의 작품은 ‘고답적’이라는 문인화에 대한 일반적 통념과는 거리가 멀다. 이 시대의 문인화, 즉 세기말을 통과하는 한국 사회에 대한 지식인의 현실 인식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황소 개구리>라는 작품에는 한문으로 된 화제와 더불어 개구리가 뱀을 잡아먹는 모습이 들어 있다. 평화롭고 깨끗한 우리나라 물에 어느날 황소개구리라는 도적놈이 뛰어들어 물고기와 개구리, 심지어 뱀까지 잡아먹는 상황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것이라고 월전은 말했다. 지금 한국 사회가 처한 상황과 너무나 비슷해, 그것을 황소개구리에 빗대어 표현했다는 얘기이다.

“위고 아래고 모두 썩어 질퍽질퍽하는 현실에 대해 사회인으로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적극 참여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그림으로 나의 생각을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늘을 향해 목을 빼고 우는 학을 그린 <학>, 산 정상이 터져버린 <폭발하는 화산> 같은 작품 또한 이 시대에 대한 노화가의 인식과 소망을 드러낸 것이다. 작품으로 표현한 그의 현실 비판은 통렬하고 날카롭다. 월전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현역으로 활동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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