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정화열 지음 <몸의 정치>
  • 김홍우 (서울대 교수·정치학) ()
  • 승인 1999.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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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는 동서양 ‘몸 철학’
정화열 교수는 지난 30여 년간 미국의 주류 정치학(행태주의 정치학)을 비판하면서, 정치학의 새로운 인식 체계를 개척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담당해온 재미 한국인 정치학자이다. 그는 특히 최근에 이르러 생태 문제와 여성 문제, 그리고 서양 중심적인 오리엔탈리즘 비판 등을 아우르는 이른바 ‘몸의 정치(Body Politics)’론을 전개하면서 학계로부터 주목되어 왔다.

박현모씨(서울대 정치학과 박사 과정 수료)가 번역한 〈몸의 정치〉는 정화열 교수가 89∼97년에 쓴 논문들 중 극히 일부만을 정선해 편집한 것이라고는 하나, 가히 ‘정화열 정치학’의 압축판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기에 족하다.

〈몸의 정치〉는 모두 6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현상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은, 현상학의 연장선상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고 있는 정교수의 입장을 잘 보여준다. 정교수에 따르면, 현상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최초 만남은 리오타르의 두 작품, 즉 〈현상학〉(54년)과 〈포스트모던의 조건〉(79년)에서 이루어졌다. 리오타르는 특히 두 번째 저작에서 탈근대적 지식에 대해 ‘약술’했다. “그것은 통약 불가능한 것을 인내하게 하는 우리의 힘을 키우고, 차이에 대한 감수성을 세련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교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차이의 모험’이라고 주장했다.하버마스 비판 눈길 끌어

제2장 ‘대화의 변증법’은 이 책에서 가장 긴 장으로서, 정교수는 구미적 합리성의 관점에서 ‘비 구미 세계를 해독해온’ 이른바 ‘자민족 중심자’들의 편견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자민족 중심주의는 몽테스키외로부터 루소·헤겔·마르크스, 그리고 비트포겔과 하버마스 등 현대 서양의 최고 지성들에게서’ 거의 예외 없이 발견된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하버마스에 대한 비판이다. ‘하버마스는 이성이 의사소통적 행위로 규정되려면 기본적으로 몸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하버마스는 ‘생활 세계의 식민지화’를 다루면서도 ‘구미에 의한 비 구미 지역의 식민지화’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교수는 메를로 퐁티에 이르면 서양과 동양의 나란한 관계 속에서 진리가 발견된다는 이른바 ‘횡적 일반 명제/횡단성(lateral universals /transversals)’이 제기된다고 본다. 그는 메를로 퐁티가 이와 같은 횡적 명제를 다음과 같이 천명했음도 상기시킨다. ‘인간 정신의 총화는 각각의 문화가 타 문화와 나란한 관계를 가질 때 존재하는 것이며, 하나의 문화는 타 문화 속에서 울리는 자신의 메아리를 들으며 스스로 깨어’난다. 정교수는 횡적 일반 명제의 적실성을 제3장 ‘혁명의 변증법’에서 모택동·메를로 퐁티를 비교 검토함으로써 재확인하고 ‘진리의 중심은 모든 곳에 존재하지만, 진리의 주변은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를로 퐁티의 견해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끝으로, 제4장 ‘자연과 인간’ 제5장 ‘진리의 세계적 접근으로서의 횡단적 연계성의 도(道)’ 제6장 ‘현상학과 몸의 정치’ 등을 포함하여 전권에 흐르는 정교수의 ‘몸 철학’의 요지를 정리해 보자.

그동안 구미에서의 몸은 주로 데카르트의 신체 배제적 논리중심주의와 인식론으로 말미암아 백안시되어 왔다. 그러나 니체에 오면 ‘인간에게 몸 아닌 것은 없게’ 된다. 심지어 비트겐슈타인마저 ‘인간의 몸은 인간의 영혼에 대한 최선의 그림’이라고 토로하기에 이른다. 하이데거는 ‘손길과 사유의 길’은 동시적인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유라는 것은 캐비넷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손재주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부연한다. 특히 정교수는 동양의 전통 속에서 몸짓에 대한 뛰어난 예로서 ‘서예’를 든다. 서예는 말하자면 ‘무성의 예술이고, 신체글’이라는 것이다.

정화열 교수의 〈몸의 정치〉는 최근 우리 학계에서도 일고 있는 ‘몸 철학’, 예컨대 김형효 김용옥 이승환 이영자 등과도 잘 연계될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과 함의를 주는 노작이라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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