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양승희씨, <김창조 가야금 산조> 복원·연주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9.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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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을 대표하는 장르 가운데 하나인 산조(散調)의 뿌리가 광복 이후 처음으로 연주된다. 산조 음악이 이 땅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890년대. 가야금 명인 김창조(1856~1919)가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 잦은모리의 틀을 갖춘 가야금 산조를 작곡함으로써 한국 전통 음악에 한 획을 그었다. 김창조는 가야금 산조 외에도 거문고·저대 산조를 작곡·연주했을 뿐만 아니라, 당대 음악인들이 해금·단소·피리·아쟁 산조를 만들어 연주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양승희씨, 월북한 김창조씨 악보 90년에 ‘전수’

판소리가 소리로써 민중의 한과 설움을 절절이 풀어낸 것이라면, 가야금 산조는 그 가락과 정서를 가야금에 그대로 얹어 표현한 음악이다. 산조는 독창적인 음악 형식을 갖추지 못한 채 춤을 반주하는 정도에 머물렀던 민간 기악 음악을 연주 음악으로 끌어올린, 서양 음악의 소나타에 비견되는 획기적인 형식이다.

한국에서 <김창조 가야금 산조>의 대가 끊어진 것은 김창조의 후계자 안기옥(1894~1974)이 월북했기 때문이다. 개성과 즉흥성을 중시하는 산조는 개개 연주자들이 ‘류’를 만들어 연주했을 뿐, 그 원형과 뿌리는 자취를 감추었다.

<김창조 가야금 산조>를 원형 그대로 복원·연주하는 이는 준인간문화재 양승희씨(51)이다. 양씨는 김창조의 손녀인 죽파 김난초(1911~1989)의 후계자이다. 월북한 안기옥이 평양음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악보와 녹음으로 남겨놓았던 <김창조 가야금 산조>가 55년 평양에서 공부했던 중국 옌볜의 연주가 김 진을 통해 전해졌고, 그것이 90년 양씨에게 전달되었다. 악보가 아니라 구음(口音)을 사용해 구전심수(口傳心受)되는 우리 음악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악보를 보고 연주하면서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할아버지 음악을 들으며 자랐던 죽파 선생의 산조가 그 안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죽파 선생의 잠재 의식에 할아버지의 가락이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양승희씨는 <김창조 가야금 산조>가 긴장과 이완이 분명하고 장구와 절묘하게 화합하는 등 완벽한 짜임새를 갖추었노라고 말했다.

논문 <김창조와 가야금 산조>를 발표하면서 그동안 의견이 분분했던 ‘산조 효시설’을 명확하게 정리한 양씨는, 논문에 이어 연주로 산조의 원형을 펼쳐 보인다. 6월7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리는 <양승희 가야금 독주회>(문의 02-518-7343)에서는, <김창조 가야금 산조>(연주시간 40분)와 <죽파류 가야금 산조>(55분)가 함께 연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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