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9.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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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중의 고전’ ‘우리 민족의 가장 위대한 고전’. 일연(一然) 스님이 고려 충렬왕 11년(1285년)에 지은 <삼국유사>는 조선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곧 이같은 대접을 받아왔다. 중고생·대학생의 필독서 목록에도 <삼국유사>는 어김없이 맨 앞자리에 놓여 있다. 그러나 고전의 최고봉이라는 명성답지 않게 <삼국유사>는 일반 독자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삼국유사>가 일반 독자에게 명성만큼이나 친숙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편하게 읽을 번역본이 없었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에 나온 번역본 10여 종은 일반 독자보다 연구자들에게 더 가까웠다. 번역 자체가 전반적으로 딱딱한 데다, 옛날이야기를 들려준다기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전달한다는 쪽에 더 큰 비중을 두었던 탓이다.
리상호씨, 물렁물렁한 구어체로 번역

얼마 전 출판된 또 한 권의 <삼국유사>는, 그동안의 번역본과 여러 면에서 다르다. 책 제목부터 길다.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까치). 북한 학자 리상호(북한 과학원 고전연구실 소속)가 50년대에 번역해 60년에 출판한 책에다, 한국 사진가 강운구씨가 찍은 현장 사진을 덧붙여 새롭게 펴낸 책이다. 북한의 번역과 한국의 사진이 <삼국유사>를 통해 만난 셈이다.

그 만남은 일반 독자에게 작지 않은 즐거움을 준다. 우선, 새로운 <삼국유사>는 쉽게 잘 읽힌다. 전반적으로 딱딱한 논설투인 우리쪽 번역에 비해 북한 번역은 물렁물렁한 구어체로 이루어져 있다. 남북한 언어가 이질화하기 전인 50년대에 번역된 까닭에 북한 번역본이라고 하지만 생소함은 별로 찾을 수 없다. 거기에다 전문 교열자인 조운찬씨(민족문화추진회 교정위원)가 또 한번 걸러내어 읽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삼국유사>는 잘 알려진 대로 단군 신화, 고구려·신라·백제의 건국 신화에서부터 승려들의 기이한 일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연은 민중 사이에 구전되어 오던 설화를 수십 년간 수집한 뒤, 만년에 경북 군위의 인각사에 칩거해 <삼국유사>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화와 전설 같은 이야기들로 가득한 ‘환상적 리얼리즘’의 고전인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삼국유사>가 전하는 환상적이고 황당하기까지 한 신화·전설·설화 들의 무대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점이다. 옛날 그 이야기들을 만들어낸 현장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천년이 지난 지금 이 땅에 그 현장이 그대로 있다는 점을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는 알려주고 있다.강운구씨 사진, 신화의 분위기 생생히 전달

87년 경주의 남산을 사진으로 읽은 <경주 남산>(열화당)을 펴냈던 강운구씨는, 지난 4년 동안 <삼국유사>의 현장을 찾아다녔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30년 넘게 활동해온 그는 “그같은 작업을 할 나이가 되기도 했지만, 그 작업 자체가 즐거웠다. 즐기면서 일을 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사진 90여 장으로 <삼국유사>의 현장을 기록한 그의 사진은, 현장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때로는 신화를 사진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신라 시조 혁거세왕의 알이 놓여 있던 나정(蘿井)은, 해질 무렵 멀리서 그 지점을 지켜본 사진으로 표현되어 있다. ‘2천년 전에는 어떠했을까 하는 느낌으로’ 신화와 설화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린 것이다.

현장을 일일이 다 다녀야 하는 사진의 특수성 때문에 강운구씨가 사진으로 새롭게 얻어낸 사실도 적지 않다. ‘죽령 동쪽 백리쯤 되는 곳에 우뚝하게 높은 산이 있다. … 사방에는 석가여래를 조각하고 모두 붉은 비단으로 씌운 큰 돌 하나가 돌연히 하늘로부터 그 산 꼭대기에 떨어졌다.’ 이 구절을 보고 문경 사불산 꼭대기에 오르니 과연 ‘하늘로부터 떨어진’ 바위가 서 있었다(위 사진 참조). “기연가미연가 하고 찾아가 보면 현장이 이처럼 딱 하고 나타났다. 그때마다 전율이 일었다.”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는 ‘사진으로 읽을 수 있는 삼국유사’이기도 하다. 사진만으로도 고대의 분위기를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멀고 어렵게만 보였던 <삼국유사>가 일반 독자들 곁에 쉽고 새롭게 가까이 다가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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