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성서 이야기’ 봇물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9.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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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약 소재 소설 줄이어… ‘기댈 곳’ 찾는 현대인 위로
세기 말의 불안 심리를 반영하는 것일까. 지난해 말부터 성서를 소재로 한 ‘문화 생산물’이 줄을 잇고 있다. 모세의 출애굽을 다룬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가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동시 개봉되었으며, 예술의전당에서는 <다윗의 도시와 성서의 세계>(98년 12월29일~99년 3월28일)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성서가 가장 활발하게 ‘유통’되는 곳은 출판 분야이다. 지난해에 나온 <성서 이야기>(전5권·이누카이 미치코 지음·한길사 펴냄)의 뒤를 이어, 최근 <모세>(전3권·제랄드 메사디에·바다출판사), <성서>(전5권 월터 웽거린·황금가지), <성서 기행>(전5권·이누카이 미치코·한길사) 들이 잇달아 출판되었다.

그동안 성서를 소재로 한 책들은 종교계 출판사를 통해 주로 나왔을 뿐, 신도가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책은 흔치 않았다. 최근 붐을 이루는 성서에 관한 책들은, 일반인을 주 독자층으로 삼고 있을 뿐 아니라 3~5권에 이르는 대형 출판물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성서 쉽게 이해하도록 안내

성서는 인류 최고·최대의 베스트 셀러로 꼽히지만, 일반인들이 원전을 읽기는 쉽지 않다. 수천년 동안 전개되는 시대 배경도 그러하려니와, 수많은 등장 인물과 그들이 엮는 이야기들, 그리고 도처에 깔려 있는 비유와 상징을 명쾌하게 읽어내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목사인 월터 웽거린의 <성서>는 그같은 성서 읽기의 어려움을 해소해 주는 장편 소설이다. 작가가 ‘이 소설은 성서를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라고 밝혔듯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 예수의 부활과 승천에 이르기까지, 소설 <성서>는 신·구약 전체를 하나의 줄거리로 엮었다. <창세기> 전반부와 <사도행전> 후반부만 빠져 있을 뿐이다.

소설 <성서>의 가장 큰 미덕은, 일반 독자들이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게 살아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게 한다.

‘(예수의) 어머니와 예수는 매우 닮았지. 그들은 둘 다 넓은 앞이마를 가졌고, 이마에 V자 모양의 머리털 끝선이 나 있는 것까지 똑같아.’ 예수는 제자들과 막달라 마리아 등의 눈을 통해 이렇게 보여지고, 장난기 어린 행동도 서슴없이 한다. ‘예수는 시몬에게 다가가 수염 깎은 허연 뺨을 잡아당겼다. 꼬집히고 보니 이 덩지 큰 사나이의 긴장도 풀렸다.’ 소설 <성서>의 줄거리는 성서 주인공들에 대한 이같은 묘사를 통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쉽게 읽힌다.

일본 작가 이누카이 미치코가 쓴 <성서 이야기>도 신·구약의 내용을 이야기식으로 풀어 놓은 성서 입문서이다. <성서 이야기> 역시 원전을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했으나, 이 책에서 돋보이는 점은 성서의 역사적·지리적 배경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이다.

<성서 이야기> 전5권 가운데 구약 편으로 나온 1·2권은 구약 시대 메소포타미아의 역사와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사, 다윗·솔로몬 같은 성서 주인공들의 삶을 시대적·문화적 배경과 함께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이를테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사실은 인류 최초의 문명권 가운데 하나인 수메르 문화권 출신이라든가, 솔로몬 왕이 구리 정제 기술을 개발했다든가 하는 점들을 기술했다.

이누카이 미치코는 ‘압도하는 힘과 생명감으로 가득한 구약을 읽으면, 마치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를 들여다보는 느낌에 사로잡힌다’라고 성서 독후감을 밝혔다. 그가 쓴 <성서 기행>은 그 ‘힘과 생명감의 현장’을 찾아 떠난 답사기이다. <성서 기행>에서 작가는 성서의 뒤에 숨은 무대 장치, 곧 고대 국가들의 교역사·정치사뿐 아니라 고대 비문과 고문서 자료들을 찾아내 성서가 쓰인 배경을 풍성하게 밝혀놓았다.인간에 대한 ‘신의 약속’ 재확인

프랑스 작가 제랄드 메사디에의 <모세>는, 가장 위대한 성서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모세의 일생을 출애굽을 중심으로 펼쳐놓은 소설이다. <모세>는 구약의 <모세 5경>에 전반적으로 충실하면서, 거기에 역사 확인 작업과 작가의 상상력이 덧붙어 흥미 진진하게 전개된다.

예를 들면, 작가는 모세를 이집트 공주와 히브리 노예 사이에 태어난 인물로 설정한다. 이같은 설정은 그 시대에 대한 작가의 독창적인 해석에서 연유한다. 모세가 중앙 권력으로부터 견제를 받은 점, 히브리인들이 그의 말을 믿고 대모험을 감행한 점들을 설득력 있게 해석하고 있는 셈이다.

<모세> <성서> <성서 이야기>를 묶는 하나의 주제는, 원전과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신의 ‘약속’이다. 전세계적으로 종교에 대한 관심이 드높아지고, 그같은 관심이 성서 소설 등을 통해 표출되는 것은, ‘약속’의 의미가 그만큼 새삼스러운 탓이다.

“요즘 세기말이라는 말이 너무 남발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서나 고대에 대한 새로운 관심도 결국 세기말적 상황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세기의 말에 그랬듯이,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이성·질서·규범과 같은 공리보다는 회귀할 곳, 기댈 곳을 찾는 성향들이 나타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장편 소설 <성서> 출판 기획자 가운데 한 사람인 문화 평론가 김성기씨의 말이다.

출판계에서 나타나는 성서 붐은 폭발적인 양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원전이 그랬듯이, 성서를 소재로 한 소설들은 요즘 한국 서점가에서 스테디 셀러로 하나씩 자리를 굳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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