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임지현 지음 <민주주의는 반역이다>
  • 윤해동 (서원대 강사·한국사) ()
  • 승인 1999.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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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이 책에서 민족주의에 대한 정의가 충족적인 것에서 공공적인 것 혹은 시민적인 것으로 이동해야 하며, ‘건설을 기약하는 반역의 이데올로기’로 재창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사적으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민족주의는 ‘괴물’이다. 민족주의를 둘러싼 논의는 가장 논쟁적이기로 악명 높다. 그래서일까. 한국 사회에서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민족주의 논의가 없었다는 사실 자체를 우리는 의식하지 못했다. 신화화한 민족주의를 ‘신화’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지적 책임의 방기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민족주의에 대한 치밀하고 박력 있는 분석서 한 권을 가지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민족주의에 대한 치밀하고 박력 있는 분석서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의 지은이는 ‘마르크시즘과 민족주의’ 그리고 폴란드를 중심으로 한 동유럽의 역사를 전공하고 있다. 따라서 책의 구성도 한국 민족주의에 관한 직접적인 분석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4부 11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먼저 민족주의를 어떻게 분석할 것인지 시각을 제시했다. 민족주의를 고정된 이념틀을 갖춘 이데올로기로서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 변화에 따라 스스로를 교정해 가는 운동으로 고찰하기를 권고한다. 지은이는 전근대 한국 사학계의 논의가 민족을 ‘초역사적인 자연적 실재’라고 부당하게 전제함으로써 민족주의가 보수주의로 선회했다고 비판하고, 역사적 원근법에 철저한 민중 중심의 민족주의 이해로 회귀할 것을 촉구한다.2부에서는 민족주의가 ‘마르크스주의와 접목할 때 드러나는 갈등과 긴장의 양상’을 논문 4편으로 정리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유물사관의 민족 개념에 충실함으로써 민족 문제에 관한 발생론적 설명을 가능케 했으나, 다양한 역학적 설명에 대해서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3부에서는 동유럽의 민족주의를 운동의 입장에서 파악하는 글 3편을 실었다. 폴란드의 민족운동이 비합리적인 반동적 운동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총체 속에서 상호 작용하고 있음을 밝혔다.

마지막 4부에는 거대 담론의 허위 의식과 한국 진보 진영의 보수성을 비판하고 ‘폭로’하는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위와 같은 작업을 통해 지은이는 각질화한 민족주의 이해의 두꺼운 껍질을 부수고자 한다. 민족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이해 방식, 즉 5천년을 내려온 단일한 혈통과 공통의 초상, 언어의 통일성과 민족적 연대 의식에 대한 ‘신화’가 사실상 신성 불가침의 터부로 작용해 왔다고 비판한다. 민족에 대한 이런 신화적 인식은 규범적 인식을 낳았고, 이는 다시 신화적 이해를 사실로 규정하는 악순환을 낳았다고 규정한다.

지은이의 민족주의 이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두 가지 특징을 평자 나름으로 정리해 본다면, 민족주의를 ‘운동’ 측면에서 보고자 한다는 점과 전체적으로 거대 담론의 허위 의식이나 그에 ‘물든’(?) 한국 진보의 보수성에 대한 문화적 전복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는 한국 학계에 대한 아주 중요한 비판이자 기여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장 허약한 부분은 민족주의의 국가성 또는 억압성에 대한 부분인 듯하다. 이른바 지구화와 국가의 탈중심성이 운위되는 시점에서 제3세계 민족주의(운동)의 국가 중심주의적 성격에 대한 논의가 빠진 채 민족주의의 ‘신화 벗기기’가 가능할 것인가?

또 하나, 거대 담론의 허위 의식과 한국 진보의 ‘보수성’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지만 그 비판이 언표만큼이나 통렬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라는 이 책의 표제는 ‘건설을 기약하는 반역’ 또는 ‘공민적 민족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지만, 지은이가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주장한 ‘엄밀한 의미에서 탈민족주의 지향’과는 얼핏 쉽게 조화되지 않는다. 민족주의(운동)에 발목을 잡힌 발전주의 근대화가 우리의 거대 담론의 실상이라면 이제 과감하게 그 옷을 벗어버려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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