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화계, 공진위 선임 놓고 양분 위기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1999.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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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원회 인선 놓고 개혁파·영화인협회 ‘전투’ 갈수록 치열
영화계가 들끓고 있다. 새로 출범하는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인선을 앞두고 논란이 뜨겁다. 영진위에서 배제해야 할 인물과 지지하는 인물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이에 대한 경고가 오가는 등 전례 없는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4월20일 서울 YMCA 강당. 제4차 충무로 포럼은 다소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3차 포럼에 이어 영진위 구성을 놓고 두 번째 토론이 이루어지는 자리였다. 영화 기획자뿐 아니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부산영화제 조직위원회·한국영화인협회 관계자 등이 자리를 메웠다. 논란 대상이 된 영진원은, 5월9일 발효되는 새 영화진흥법에 따라 영화진흥공사의 뒤를 잇는 영화계 대표 기구이다. 2조2천억원에 이르는 문화산업진흥기금 운용과 영상물등급위원회 구성 등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영화인들이 새로 구성되는 영진위 위원 인선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견을 공식 제기한 것은 지난 3월 제2차 충무로 포럼에서였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어디까지 의견을 모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영진위 역할에 대한 원칙을 재확인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는 입장에서, 배제해야 할 인물과 지지하는 인물을 적시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신승수 감독은, 영진위 역할을 토론할 수는 있어도, 구체적으로 이름을 거명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신감독 외에도 ‘편가르기, 혹은 줄서기로 비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거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영화인협회, 분란 주범으로 문성근 지목

하지만 적극적으로 의사를 밝힐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나왔다. 영진위가 어느 때보다 한국 영화산업의 진로에서 큰 몫을 하게 되는 만큼 전문성과 개혁성을 고루 갖춘 인물을 위원으로 뽑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단체장 인사가 현업자의 뜻보다 정치권의 낙점에 따라 이루어지는 예가 많았다는 지적도 공감을 얻었다.

이같은 논의가 영화계 내분으로 번진 계기는 한국영화인협회(영화인협회·이사장 김지미)가 충무로 포럼측에 공개 경고 편지를 보내면서부터다. 영화인협회는 감독협회 등 7개 단체를 거느린 영화 업계의 대표 기구다. 4월16일 영화인협회는 이사회를 열어 만장 일치로 다음과 같은 경고 조처를 의결했다. ‘영진위 구성을 놓고 되어서는 안될 인물에 대해서까지 토론하고, 이것을 언론이 보도하는 것은 영화계의 갈등과 반목을 사는 과격한 언동으로서 충무로 포럼의 성격과 존립 가치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영화인협회는 특히 충무로 포럼을 주도하는 영화배우 문성근씨를 ‘분란 주범’으로 지목했다. ‘소속 단체(배우협회)를 통해 민주적 토론 절차를 지켜 주기 바라며, 이를 위반하여 물의를 일으킬 때에는 영협 정관에 의거 조치키로 한다’는 강경한 경고를 보낸 것이다. 영화인협회가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띄운 데는, 충무로 포럼을 방치할 경우 특정인에 대한 ‘조직적 거부’ 혹은 ‘조직적 지원’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자구대로 해석하면 ‘정해진 틀이 있는데 왜 바깥에 판을 차리느냐’는 것이지만,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영화인협회 김지미 이사장이 충무로 포럼을 견제하려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 이는 경고 편지가 충무로 포럼뿐 아니라 청와대 교육수석실·문화관광부·언론사·영화 관련 단체 등 여러 곳에 발송된 데서 잘 드러난다(영협 제99-37호 공문). 하지만 이것은 김지미 이사장의 자충수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영화인협회의 강경 조처가, 거꾸로 충무로 포럼의 영향력을 인정한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첫 모임을 가진 충무로 포럼은 회원이 정해진 단체가 아니라, 느슨한 대화 모임이다. 이 모임이 영화계 개혁파의 중심으로 부각된 데는 첫 포럼이 스크린 쿼터 논란에 불을 댕긴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개혁파로 통칭되는 문성근·정지영·김혜준·유인택 등 ‘대표 일꾼’ 4인이 모임을 이끌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영화인협회가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제4차 충무로 포럼이 열리는 4월20일 한국독립영화협회가 ‘배제 원칙’을 내세우며 뽑지 말아야 할 인물 명단을 발표한 것이다. 거기에는 김지미 이사장을 비롯해 영화인협회 산하 단체장과 공연예술진흥협의회 관계자 등 현재 실권을 쥔 인물들이 다수 거명되었다. 이 은 감독(명필름 대표)은 영진위 역할과 원칙에 대한 영화인들의 의견을 담은 ‘영화인 선언’을 준비하는 실무자로 나섰고, 충무로 포럼은 한술 더 떠 모의 투표까지 했다(위 상자 기사 참조).

충무로 포럼의 홍보를 맡은 배우 명계남씨는 “영진위를 구성하는 데 영화인들이 구체적인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당연하며, 공개적으로 후보자의 장단점을 토론하는 것이 그릇된 판단을 막을 수 있어 바람직하다”라며 행사를 밀고 나갔다.

현재 문화관광부는 영화인협회 등 14개 관련 단체에 후보자 추천을 의뢰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참고용일 뿐, 위원 위촉은 문화관광부장관 소관 사항이다. 영진위 판짜기는 4월30일까지 의견을 수렴한 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위원회 구성 시한인 6월 초까지 논란이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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