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명세 감독 <인정 사정 볼 것 없다>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1999.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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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사정 볼 것 없다>, 압축된 이미지 가득… 막판 결투 장면 압권
‘이명세는, 이명세다’(영화 평론가 김영진).‘변했지만, 변한 게 없는 감독’(천리안 sohn23). 응용하면 이런 광고도 가능하다.‘이명세는 살아 있다.’ ‘이보다 더 이명세다울 수는 없다.’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에는 충무로를 대표하는 안성기·박중훈 등 인기 상종가인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을 들여다보아야 소용이 없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에 대한 심상치 않은 반색에는, 감독의 일관성에 대한 찬탄이 깔려 있다. 작가 의식이든, 장인 정신이든, 아집에 불과하든 10년 동안 자신만의 세계를 지켜 온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게다가 99년 상반기에는 <쉬리>를 제외하고는 ‘물건’이 별로 없었다. 가뭄 끝 단비인 셈이다.

“비좁은 땅에서 벌어지는 활극 담고 싶었다”

‘이명세다움’을 강조하는 광고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의 전작 목록을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는 사실적인 일화를 모아 판타지를 만드는 각별한 재주를 선보였다.

관객은 갸웃거렸지만, 평론가들이 ‘뉴 웨이브 작가 탄생’을 외쳤던 <개그맨>(88년), 아기자기한 신혼 일기 <나의 사랑 나의 신부>(90년), 첫사랑의 설렘에 관한 소묘인 <첫사랑>(93년), 샐러리맨의 애환을 따뜻하게 그려낸 <남자는 괴로워>(95년), 불륜의 심리학 <지독한 사랑>(96년) 등이 ‘이명세 영화 나라’의 명세다.

하나같이 현실에서 소재를 구했지만, 결코 땅에 발을 딛는 법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명세식 영화 나라’로 불렀다. 그곳은 한결같이 물과 바람이 일렁이고, 수증기와 꽃잎이 어른거리는 인공 낙원이었다.

그림이 예쁘고 이미지도 현란했지만, 그가 들려주는 얘기는 조금 뻔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야기만 보면 뻔한데, 자꾸 보니 다른 게 보였다. 그게 이명세식 이야기가 아닐까”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소설 가운데 문체가 바로 메시지임을 환기시켜 주는 작품이 있듯이, 이명세의 영상 언어도 그런 경지를 꿈꾸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였다. 영화 평론가 강한섭씨는 그를 두고‘영화로 얘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작가’라고 평했다. 영상 언어에 대한 남다른 천착은, 기교 중독증 혹은 한국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라는 딱지를 붙여주었다.

부드럽다 못해 우화적이기까지 한 스타일을 견지했던 그가, <인정 사정 볼 것 없다>로 본격 액션에 손을 댔다. 그런데 액션이라는 장르조차 이명세 식으로 윤색이 되었다.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이 영화를 안방 웨스턴이라고 불렀다. ‘우리나라 공간에서만 가능한 활극을 찍고 싶었다.’미국처럼 광활한 땅이 아니고 비좁은 땅에서 벌어지는 활극의 표정을 담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중훈과 안성기는 구불구불한 달동네의 골목길을 누비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실내 포장마차를 드나든다.

이명세 감독은 줄곧 영화란 줄거리를 실어나르는 도구가 아니라고 강조해 왔다. “이 영화는 이야기도 플롯도 중요하지 않다. 느낌이 전부다.” 실제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에는, 새로운 얘기가 거의 없다. ‘형사란, 폭력의 세계에 몸 담고 있다는 점에서 범죄자와 다를 바 없다.’ 폭력과 질서의 중간쯤에 어정쩡하게 걸쳐 선 형사에 대한 묘사는 신물나게 많았다. 그런데 그것을 묘사하는 폼이 심상치 않다. 작고 짧은 이야기, 크고 많은 볼거리

이런 식이다. 코흘리개 조카도 삼촌이 절렁대는 수갑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다가, 돈을 내놓으니 낼름 집어간다. 구두 코에 수직으로 떨어지는 식은 땀. 병상에 누운 형사의 뺨에 흐르는 눈물 한 줄기. 사연을 구질구질 늘어놓을 이유가 없다는 듯 단 하나의 이미지 컷으로 끝내 버린다. 이감독은 “구구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일선 형사들은 자기들 얘기라고 반색한다”라고 말했다.

주제를 드러내는 대사도 이렇게 간결하다. “판단은 판사가 하고, 변명은 변호사가 하고, 용서는 목사가 하고, 형사는 잡기만 하면 되는 거야.” 주인공 우형사의 말이다.

영화는 알량한 사명감 대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후줄근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베테랑인 우형사(박중훈)와, 신출귀몰하는 살인범 장성민(안성기)의 대결 구도다. 그들은 영화의 끝에 가서야 제대로 맞닥뜨린다. 감독에 따르면, 영화는‘막판 개싸움’을 위해 사건을 배치하고 호흡을 고른다. 당연히 막판 대결은 압권이다.

절정에 다다르기 전 영화는 울리고 웃기는 일화를 잔뜩 깔아 놓았다. 용의자를 ‘통닭구이’해 단서를 얻어내는 형사는 깡패와 다를 것이 없다. 그들이 치고받는 격투는 달밤의 체조로 희화화된다. 그가 그러모은 일화들은 현실을 환기하지만, 좀체로 현실을 헤집는 법이 없다(<지독한 사랑>은 예외이다. 불륜 남녀의 일탈은 때로 비수처럼 날카롭다).

심각한 장면에 딴청 부리듯 유머를 끼워넣는 것은 데뷔 때부터 그가 즐기던 방식. 그래서 그의 코미디는 희비극이다. 사람들은 그걸 ‘따뜻함’이라고 부르곤 한다. 그의 화면에는 몽환적인 온기가 가득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부엌이나 바다가 내다보이는 창(<지독한 사랑>)은, 지저분하지만 정겨운 아파트와 골목 표정으로 이어진다.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에 이르러 이명세는, 화가가 아닌 조각가를 꿈꾼다. 지금까지의 세공술이 예쁘장한 그림을 만드는 데 그쳤다면, 이번에는 기나긴 이야기를 단 하나의 움직임에 응축하겠다고 벼르는 것이다.

막판 결투 장면은, 으드득 주먹 쥐는 소리가 손에 잡힐 듯한데도 격렬하기보다는 아름답다. 가격하는 팔의 움직임, 풀석 엎어질 때의 둔중함, 진창에서 몸을 일으키는 자의 결기 등. 숱하게 등장하는 추격 장면도 구체적인 사연을 잊게 만든다. 쫓고 쫓기는 자의 심리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추적의 리듬 자체에 관심을 기울인다. 공간의 연주다.

어쨌든 이명세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개성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한 줌도 안되는 이야깃거리로 이만한 볼거리를 차려 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본성인 동시에 생존 전략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가 웃으며 하는 말. “이명세는 이명세여야 살아 남는다. 연출료도 비싼데.”

그는 다음에는 플롯으로 승부하는 작품을 찍겠노라고 했다. ‘현란한 영상, 빈약한 내러티브’라는 평가에 대한 섭섭함 때문이다.‘안해서 못하는 것이지, 못해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인정 사정 볼 것 없다>가 양념이 화려할 뿐 성찬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관객이라면, 다음 영화를 기다리면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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