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영화사’들 새 돈줄 찾았다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4.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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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필름·강제규필름, 4월에 거래소 ‘우회 상장’
간접 방식이기는 하지만, 영화 제작사로서는 처음으로 명필름과 강제규필름이 상장 회사가 된다.

영화 <쉬리>를 만든 (주)강제규필름(대표 최진화)과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등을 제작한 (주)명필름(대표 심재명)이 수공구 제조업체인 (주)세신버팔로(대표 김문학)와 상호 주식 교환을 통해 새로운 회사로 탄생하는 것이다. 4월 중 주식 교환이 완료되면 세신버팔로는 각사의 이니셜을 딴 ‘MK버팔로’라는 새 이름을 달고 제조업과 영화사업을 함께 하는 문화 콘텐츠 기업으로 변신하게 된다.

두 영화사는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준비하고 있어 행보가 주목된다. 강제규 감독의 블록버스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2월6일 개봉을 앞두고 있고, 명필름은 <아리랑>을 비롯해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다룬 <노근리 다리>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영화 제작사의 거래소 상장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제작사들이 그동안 안정적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차례 코스닥 진입을 시도해 왔기 때문이다. <살인의 추억>을 제작한 영화사 싸이더스는 최근 코스닥 등록 기업인 보안업체 시큐리콥에 인수되었다.
명필름은 2002년 독자적으로 코스닥 등록을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영화계 안에서는 명가(名家)로 꼽히지만 안정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코스닥은 우리 회사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영화 제작사가 코스닥에 등록한 전례가 없다는 점을 들어 난색을 표했다. 심사가 보수적인 잣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회로를 찾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화제작 <바람난 가족> 때문에 속앓이를 단단히 한 것도 새로운 길에 대한 갈증을 크게 했다. 큰돈이 아니라도 ‘돈도 되고 명예도 얻을 수 있는’ 프로젝트로 여겼는데, 도무지 펀딩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 촬영이 끝나고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자 명필름측은 꾀를 냈다. 완성된 영화를 보여주고 네티즌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것이다.

작품성에 자신이 있었던 명필름은 투자 금액의 70%를 보장하겠다는 조건으로 개인 투자자를 모집했고, 결국 펀드는 원금은 물론 75%에 이르는 짭짤한 수익률을 올렸다.

영화사들이 이렇듯 발품을 팔며 영화 찍을 돈을 모아야 하는 상황은, 굵직한 화제작이라고 해도 예외가 없었다. 지난해 최고의 화제작인 <올드 보이>의 투자처는 무려 50여 곳에 달한다. 푼돈을 그러모아 겨우 영화를 찍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거래소 상장이 영화 자본의 색깔이 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씨네21> 김소희 편집장은 “제작의 독자성과 안정적인 재원 마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마련되었다”라고 평가했다.

강제규 필름은 <은행나무침대>와 <쉬리> 이후 몇 년 동안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해 더욱 어려운 상황을 맞은 터였다. <단적비연수> <베사메무초> <블루> 등 굵직한 기획이 예상보다 실적이 저조했던 것이다. 2월6일 개봉하는 <태극기 휘날리며>는 총제작비(마케팅 비용 포함)가 1백70억원에 달해 강제규필름의 운명을 ‘올인’ 하다시피 한 작품이다. 명필름도 한동안의 침체기를 끝내야 하는 상황이다.

영화 시장은 돈이 되느냐만 놓고 따질 때 아직은 빛 좋은 개살구이다. 영화 <실미도>가 관객 천만 명을 바라보는 실적을 거두고 있지만, 영화산업 전체로 볼 때 수익률은 극히 미미하다. 작품 덩지가 커지면서 그만큼 손익분기점이 되는 관객 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익이 영화 몇 편에 집중되어 나머지 대다수 영화의 그늘은 더욱 깊다. 모 아니면 도인 상황인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투자 자본이 막 들어오기 시작하던 1990년대 중반에는 명암이 더욱 극명해 다섯 편 가운데 한 편만 이익을 냈다. 2002년부터 네 편 가운데 한 편이 이익을 내 그나마 체질이 개선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한국 영화의 수익률이 영화산업의 규모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고 분석한다.

영화산업이 주목된 이후 돈줄은 크게 극장주·대기업과 금융 자본의 순서로 3단계에 거쳐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단맛, 쓴맛이 달랐다. 극장주가 돈을 대던 시기는 돈줄은 안정적이었지만 영화는 구태의연한 상태에 머물렀다. 극장주들이 쉽게 관객을 모을 수 있는 방법으로 정사 신을 요구하는 등 이미 변하기 시작한 관객의 요구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어 멀티 플렉스가 들어서면서 대기업 및 금융 자본이 영화 제작에 관심을 보이는 제2기가 이어졌다. 특히 금융 자본은 단지 회전율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투자에 나섰고, 기준 또한 수익률에만 맞추어져 영화의 색깔을 좁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돈은 몰렸지만, 그만큼 멜로 영화나 코믹 영화가 양산되던 시기로 분류된다.

두 시기를 거치면서 영화 전문 제작사의 역량이 커졌고, 그만큼 갈등도 심해졌다. 제작사가 코스닥이나 거래소 시장을 두드리면서 직접 돈줄을 확보하는 방법을 찾고 있는 현재는 제3기로 분류될 만하다. 이와 같은 현상은 ‘명분과 돈’을 함께 얻으려는 영화 제작자들의 도전으로 풀이된다. 싸이더스의 노종윤 이사는 “투자 회사와 제작사가 영화를 보는 눈이 다르다. 돈도 벌고 이름도 얻고 싶은 게 제작사 마음이라면 투자사는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건 수익이 높았으면 하는 게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명필름과 강제규필름측은 MK버팔로의 자회사가 되지만 작품 제작과 의사 결정은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 속단은 이르다. <실미도>로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시네마서비스는 (주)플레너스의 자회사로 코스닥에 등록한 상태였지만, 최근 분리를 결정해 만만치 않은 속사정이 있음을 짐작케 했다. 분리 이후 시네마서비스측은 “충무로 토착 자본으로 제작과 배급, 투자의 완결성을 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반영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과연 이번 거래소 상장이 회사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으리라는 영화계의 바람을 이루는 길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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