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면 걸리는 ‘매직 쇼’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4.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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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카퍼필드와 이은결의 황금알 낳는 마술 비즈니스
매년 연말 극장가를 점령한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이 마술을 건 것일까? 마술 열풍이 한창이다. 인기 마술사의 홈페이지에는 10만 명 넘는 팬이 운집하고, 각종 마술 사이트에는 수십만 네티즌이 등록하고 있다. 인기 개그 프로그램에 마술이 주요 코너로 자리 잡고, 설 특집 프로그램에 연예인 마술쇼가 등장했다. 각 대학에 마술 동아리가 만들어진 것은 물론 마술학과(동아인재대학)까지 생겼다.

오는 5월, 재개관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5월25~30일)에서 열리는 ‘데이비드 카퍼필드 마술쇼’는 막 불붙기 시작한 마술 열풍을 정점으로 이끌고 갈 것으로 보인다. 50억원(순제작비 30억원) 규모의 이 공연은 라스베이거스 대형 서커스쇼 <퀴담>과 함께 공연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무대다. 공연계는 <오페라의 유령> 이후에 뮤지컬 붐이, <투란도트> 이후에 야외 오페라 붐이 일었듯이, 이 공연 이후 마술쇼가 붐을 일으킬 것으로 본다.

연간 공연 수익만 9백억원 이상을 올리는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마술쇼는 흥행 면에서 대형 뮤지컬을 압도한다. 그에게 에미상 수상 열두 번과 올해의 엔터테이너상을 두 차례 안겨주었던 <더 매직 오브 데이비드 카퍼필드>쇼의 티켓 판매량과 총매출은 <오페라의 유령>이나 <캣츠>를 능가한다. 핑크 플로이드가 독일에서 세운 공연 기록을 깬 이 공연은 지금도 자넷 잭슨·U2·마릴린 맨슨 등 유명 팝 가수의 공연보다 티켓이 4∼10배 많이 팔리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1990년 방한 이후 14년 만에 카퍼필드를 한국에 불러들인 사람이 바로 카퍼필드를 우상으로 삼고 그와 마찬가지로 소심한 성격을 고치기 위해 마술을 배운 이은결(23)이라는 점이다. 팬클럽 회원 15만 명을 보유하고 있는 이은결은 신세대 마술사의 선두 주자로 꼽힌다. 그가 속한 마술전문 기획사 비즈매직은 서울예술기획과 함께 이번 카퍼필드 마술쇼를 주최했다.
전세계 마술 시장 규모는 20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1조원 규모의 마술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제 막 마술 열풍이 불기 시작한 한국의 마술 시장 규모는 100억원 정도이다. 마술 관계자들은 이번 공연을 계기로 국내 마술 시장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마술뿐만 아니라 마술 비즈니스에서도 카퍼필드를 벤치마킹하고 있는 이은결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카퍼필드가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마술 실력도 있었지만 전문적인 스타마케팅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스타마케팅을 통해 그는 단순한 마술사가 아니라 마술 엔터테이너로, 할리우드 섹스 심벌로 떠오를 수 있었다.

카퍼필드를 스타로 키운 것은 8할이 미디어였다. 그가 세계적인 마술사로 떠오른 것은 CBS 특집 프로그램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마술>을 통해서였다. 40개국에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전세계에서 30억명 이상이 시청했다. 다른 마술사와 달리 마술 엔터테이너의 길을 밟았던 그는 뮤지컬과 영화에도 출연하며 스타로 성장했다.

연미복 대신 세련된 캐주얼 의상을 입고 360° 회전하는 무대에서 화려한 무대 매너를 선보인 카퍼필드처럼 특유의 ‘번개 머리’를 하고 나와 재치있는 무대 매너를 보여주는 이은결 역시 스타마케팅을 통해 마술 엔터테이너로 성장하고 있다. 전담 매니저를 두고 체계적인 미디어 전략을 통해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이은결은 텔레비전 개그 프로그램과 케이블TV 음악방송 쇼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이미지를 구축한 카퍼필드는 대규모 투자로 마술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이룩했다. 자유의여신상을 사라지게 만드는 대형 프로젝트를 위해 50만 달러(8억원)를 투자한 그는 이후 만리장성 통과, 그랜드 캐니언에서의 공중 부양, 나이아가라 폭포 통과, 앨카트레즈 감옥 탈출 등 대형 일루전 마술을 차례로 선보였다.

이은결 역시 대형 투자를 통해 자신의 마술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비즈매직 최병락 대표는 대규모 투자 자금을 끌어와 이은결이 ‘규모의 마술’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2002년 이은결은 국내 마술사 중 처음으로 마술 콘서트를 열어 매진시켰다. 지난해 규모를 10배 이상 키운 <이은결의 매직 콘서트>는 26회 공연이 모두 매진되었다. 마술 카페 운영이나 마술용품 판매를 빼놓고는 별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찾지 못했던 국내 마술사들은 이후 공연 무대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카퍼필드는 시간과의 싸움에도 주목했다. 그는 전문가 50여명으로 구성된 ‘카퍼필드 사단’을 통해 공연 순환률을 높여 연간 5백50회 공연을 소화하고 있다. 매번 공연마다 60여t에 이르는 장비를 사용하지만 체계적인 물류 시스템을 구축해 설치와 철거 시간을 단축했다. 이번에도 중국 공연을 마친 다음날 한국 공연을 갖고, 한국 공연 직후에 라스베이거스 공연을 한다.

비즈매직 역시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연인들을 공략하기 위해 콘서트 시간을 자정으로 잡았다가도 고객 조사를 통해 가족 단위 관객이 많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곧바로 가족용 마술을 코너에 넣는 등 순발력 있게 대응하고 있다. 상근 직원을 30여명 두고 있는 비즈매직은 대형 공연기획사로 커가고 있다. 아직 연간 공연 수익이 10억원 정도이지만 그 성장세는 가파르다.

카퍼필드는 자신의 마술과 관련해 발생하는 부가 수입을 알뜰하게 챙기기로도 유명하다. 본사인 DCDI로는 자신의 개런티만 챙기고 다양한 자회사와 관계사를 통해 공연에서 발생하는 물류비용, 홍보비용, 물품 판매 수익을 거두어들인다. 이런 정교한 비즈니스 모형을 통해 그는 자신의 개런티를 낮추면서도 실속을 챙길 수 있게 되었다.

시장 세분화를 위해 카퍼필드는 늘 방송용 마술과 공연용 마술의 레퍼토리를 달리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방송을 보고 공연장을 찾더라도 관객은 늘 새로운 마술을 볼 수 있다. 그는 또 매년 다른 공연을 선보여 이미 본 관객도 공연장을 다시 찾도록 만든다.

비즈매직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부분은 온라인 매직숍 운영이다. IT 강국의 면모를 살려 비즈매직은 매출의 상당 부분을 온라인 매직숍 운영에 의지하고 있다. 정교한 e-CRM(고객과의 관계 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비즈매직은 마술용품 고가 정책을 통해 후발 주자와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마술 공연 이외에도 카퍼필드는 다양한 ‘파생 마술 상품’을 개발했다. 그의 개인사와 마술 세계를 다룬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불가능에 관한 이야기> <데이비드 카퍼필드 상상의 세계를 넘어서>는 모두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카퍼필드가 만든 ‘파생 마술 상품’ 중 대표적인 것은 미국의 캐론델릿 사회복귀센터와 공동 개발한 ‘프로젝트 마술’이다. 프로젝트 마술은 마술을 통한 재활 프로그램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비즈매직 역시 마술 교육용 책과 비디오 제작을 비롯해 마술 아카데미 설립 등 다양한 ‘파생 마술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마술 관련 인프라를 많이 확보하고 있는 비즈매직은 요즘 사이트를 마술 포털 사이트로 업그레이드 중이다.

비즈매직은 앞으로 국제 마술 박람회나 국내 마술 대회 등을 주최해 대표적인 마술 기획사로서 이미지 굳히기에 들어갈 계획이다. 최대표는 “마술 전용 극장을 만들어 ‘데이비드 카퍼필드 쇼’ ‘지그 프리드 앤 로이 쇼’ ‘랜스 버튼 쇼’와 같은 세계적인 마술쇼와 어깨를 겨눌 만한 대형 마술쇼를 제작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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