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맘마미아! > 와 `맞짱` 뜬 < 와이키키 브라더스 >
  • 이영미 (연극 평론가) ()
  • 승인 2004.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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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창대’하나 그 끝은…
도대체 가당찮은 짓이다. 세계를 뒤흔들고 서울에 입성한 <맘마미아!>가(아무리 오리지널이 아닌 OEM 제품이라 할지라도) 감히 창작 뮤지컬 따위가 맞짱 뜰 상대인가. 자본력과 제작 기간과 시스템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중요한 차이는 문화적으로 축적된 창작력이다. 이런 형태의 대중 음악극 문화를 오랫동안 축적한 그네들에 비해, 우리는 포장만 그럴듯할 뿐 막상 들추어보면 늘 극작과 작곡이라는 작품의 핵심 기술이 턱없이 부족하다. 문화적 토양이 없는데도 뮤지컬을 속성 재배하려 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와이키키 브라더스>(김민경 극본·이원종 연출·서울뮤지컬컴퍼니)만 하늘에서 떨어진 듯 뛰어났을 리 없다. 대개의 창작 뮤지컬들이 그러하듯, 전반부는 화려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들로 채워지는 반면, 펼쳐놓은 갈등과 이야깃거리를 진행·발전시켜야 하는 후반부는 역시 느슨하고 위태위태하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원작과 달리 전반부 대부분을 주인공들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로 채우고 있다. 레드 제플린에게 빠져 전자기타를 메고 ‘충고 보이스’라는 밴드를 이끄는 상우는, 여고생 밴드 ‘버진 블레이드’의 보컬 인희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멋진 음악 선생님을 좋아하는 인희는 상우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1980년대 초를 배경으로 검정 교복과 갈래머리 학생들이 보여주는 온갖 에피소드, 특히 밴드 페스티벌과 여고 가을 문화제 공연 모습, 여고생들이 교실에서 양푼에 밥 비벼 먹는 장면 등은 최근 한국 영화에서 유행하는 학생 시절 추억 더듬기의 재미를 만끽하게 한다.

후반부에 이르러 초라한 삼류 밴드로 전국을 전전하는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문제는 이런 내용이 극적이기보다는 삽화적이어서, 영화와 달리 긴밀한 극적 갈등이 필요한 연극과는 잘 맞지 않고 뮤지컬적 볼거리를 채워내기에도 좋은 소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후반부의 느슨함은 단지 디테일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발칙하게 <맘마미아!>와 맞짱을 뜰 수 있는 것은, 추억 속의 옛 가요 덕분이다. <맘마미아!> 역시 아바 노래의 완성도와 익숙함에 크게 기대고 있는 것인데, 그렇게 보자면 우리에게는 <댄싱 퀸>보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가 훨씬 강렬하다. 이 작품에서 쓰고 있는 송골매 <세상만사>, 리퀘스트 <하늘빛 꿈>, 해바라기 <뭉게구름>, 봄여름가을겨울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 등은, 노래 하나하나의 완성도 때문이 아니라 그 노래와 함께 살아온 세월 덕분에 우리 삶의 경험들을 호출하는 내용 충만한 노래들이다. 이 작품은 이 힘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

약간의 개사를 감행한 <하늘빛 꿈>이나 <미안해 널 미워해>(자우림),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는 훌륭한 뮤지컬 넘버로 기능한다. 여기에 희극적 개사곡까지 가세하여, 여고생들이 도시락을 털어 양푼에 비벼 먹는 장면에서 퀸의 를 ‘비벼 비벼 먹자’로, 수안보 때밀이들이 ‘이태리 타월’을 휘두르며 <찬찬찬>을 ‘빡빡빡’으로 바꾸어 부르는 등의 노래는 관객을 자지러지게 한다.
대부분의 창작 뮤지컬이 서양인들이 훨씬 잘할 수 있는 것을 어설프게 흉내내는 것에 비해, 적어도 이 작품은 우리만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확실히 장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마치 이 작품의 지금 모습은 <스텀프>에서 힌트를 얻었으나 풍물·사물 놀이라는 우리만의 장기에 기대어 만들어낸 <난타>의 초연 시절을 연상시킨다.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덕분에 <난타>는 <스텀프>보다 엉성하지만, 나름의 매력을 지니고 롱런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보자면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아쉬움은 이제 좀더 분명해진다. 후반부에서 한국 성인들이 겪은 체험의 공감대를 더 진하게 건드려줄 수는 없었을까. 원작 영화의 칙칙함을 없애고 다시 찾은 사랑, 희망을 가지고 무대로 돌아오는 해피 엔딩으로 이야기를 몰고간 것이, 오히려 후반부의 힘을 떨어뜨린 가장 큰 요인이었을 수도 있다.

후반부에서 최소한 조용필의 <꿈>이나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 <행진>, 하다못해 나훈아의 <잡초> 같은 노래가 풍기는 징글징글한 인생살이의 질감은 만들어 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 말이다. 뮤지컬 고정층인 20대뿐 아니라 밤 10시가 넘도록 무대 앞을 떠날 줄 모르고 환호하는 아줌마 관객들까지 껴안고 무모한 맞짱을 승산 있는 게임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고개를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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