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짝짓기 잘해야 대박 난다?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4.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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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 뮤지컬 시장, 무대 뒤에서 치열한 이합집산
대작 뮤지컬 <맘마미아>가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스웨덴 출신인 그룹 아바의 노래로 만들어진 번안 뮤지컬 <맘마미아>는 개막 전까지 예매 사정이 좋지 않았지만 공연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입소문이 퍼져 티켓 판매율이 급상승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맘마미아> 제작에 토종 뮤지컬의 자존심인 <명성황후>를 만든 에이콤인터내셔널 윤호진 교수까지 참여했다는 점이다. 윤교수를 <맘마미아> 수입에 참여하게 만든 것은 대형 뮤지컬의 높은 수익성이다. 대형 뮤지컬의 수익성은 블록버스터 영화와 맞먹는다. 블록버스터 영화와 다른 점은 자금 회전이 빠르고 실패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관객들이 대형 공연을 선호하므로 ‘규모의 경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맘마미아>의 성공은 공연계에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 대형 뮤지컬은 제미로(대표 문영주)와 설앤컴퍼니(대표 설도윤)의 독주 체제였다. <오페라의 유령>부터 호흡을 맞추어온 이들은 대형 수입 뮤지컬을 독식하며 국내 뮤지컬계를 평정해 왔다. 그러나 신시뮤지컬컴퍼니와 CJ엔터테인먼트가 등장하면서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특히 <캣츠> 텐트 극장 공연에 투자한 데 이어 <맘마미아>에까지 투자한 CJ엔터테인먼트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과실이 익었을 때 자본의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열매를 따낸다’는 CJ식의 엔터테인먼트 업계 진출 전략은 영화에 이어 공연에서도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맘마미아>의 성공으로 CJ엔터테인먼트는 공연계에서 입지를 굳혔다.

<맘마미아> 공동제작사 신시뮤지컬컴퍼니(대표 박명성)는 CJ엔터테인먼트를 활용해 공연계의 지존인 제미로를 견제하고 있다. 제미로의 모기업은 동양오리온그룹으로 CJ엔터테인먼트의 모기업인 CJ와는 ‘앙숙’ 사이다. 지난해 <시카고>와 <유린타운>을 제미로와 공동 제작했던 박대표는 올해 CJ와 연합해 제미로 견제에 나섰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된 셈이다.

<맘마미아> 이전까지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제미로는 CJ엔터테인먼트와 막강한 현금력을 지닌 웅진미디어가 공연계에 진출하자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 제미로에 손을 벌렸던 제작사들이 이제 다른 투자자를 찾고 있다. 올해만 해도 <지킬 앤드 하이드>(오디뮤지컬컴퍼니)와 <42번가>(뮤지컬컴퍼니 대중) <카바레>(신시뮤지컬컴퍼니)가 제미로의 투자 없이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제미로는 PMC(대표 송승환)와 제휴해 세불리기에 나섰다. PMC는 <난타> 제작사로 같은 넌버벌 퍼포먼스 형식의 <도깨비 스톰>을 제작했던 제미로와는 경쟁 관계였다. 그러나 <도깨비 스톰>의 리모델링이 필요했던 제미로와 코스닥 등록을 위해 덩지 키우기가 필요했던 PMC의 ‘동상이몽’은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도록 만들었다.

제미로는 설앤컴퍼니와는 전략적 제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최고의 제작-투자사, 최고의 프로듀서로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상대방 때문에 절대 강자가 되지 못하는 딜레마 또한 겪고 있다. 일종의 ‘오월동주’ 관계인 셈이다. 제미로는 설앤컴퍼니와 월트디즈니의 대작 뮤지컬 <미녀와 야수>를 올 여름에 들여오는 것을 비롯해 <라이온 킹> <아이다> <프로듀서스> <미스 사이공>을 함께 들여올 계획이다.

대형 수입 뮤지컬이 시장 판도를 좌우하는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외국 뮤지컬 제작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는 설앤컴퍼니 설도윤 대표의 입지는 절대적이다. ‘꽃놀이패’를 쥔 설대표는 영화계에서 강우석 감독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비슷하다. 지금까지 자금력이 없다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 공연계에 자본이 몰리면서 무게 중심이 설대표에게 쏠리고 있다.
새롭게 공연 시장에 진출한 CJ엔터테인먼트와 대형 뮤지컬 수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신시뮤지컬컴퍼니는 설앤컴퍼니와 제미로의 ‘합종’을 깨기 위한 ‘연횡’을 구성할 것으로 보인다. <맘마미아>를 신호탄으로 이들 역시 대형 뮤지컬 수입 전선의 전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설앤컴퍼니와 제미로 연합이 힘을 갖는 것은 RUG·월트디즈니 등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의 제작사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는 CJ엔터테인먼트와 신시뮤지컬컴퍼니 연합의 카드로 떠오르는 것은 일본의 대표적인 뮤지컬 제작사인 시케(四季)를 이용한 ‘이이제이’ 전략이다.

그동안 한국 뮤지컬 시장을 곁눈질해온 시케는 ‘시케 코리아’를 설립하려 하는 등 한국 진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뮤지컬 대동아 공영권’을 꿈꾸고 있는 시케의 구상은 RUG나 월트디즈니로부터 아시아 총판권을 따내 아시아 시장을 독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케는 한국 뮤지컬 배우를 연수시키는 등 체계적인 이미지 전략을 쓰고 있다.

그러나 시케의 이런 구상은 공염불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웨스트엔드나 브로드웨이를 쥐락펴락하는 유태인 이너서클이 아시아 시장에 대한 직배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창작 뮤지컬 하나 없이 번안 뮤지컬에 의지하고 있는 시케는 이들이 직접 나설 경우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군웅할거의 뮤지컬 시장에서 요즘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미스 사이공>을 누가 수입하느냐이다. 누가 수입하느냐에 따라서 뮤지컬계의 판도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대형 헬리콥터까지 등장하는 <미스 사이공>은 제작비도 엄청나지만 4대 뮤지컬 중에서 유일하게 국내에서 공연되지 않은 작품이어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현재 국내 거의 모든 뮤지컬 제작사들이 <미스 사이공>을 수입하기 위해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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