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상]양지로 나온 동성애,인권은 아직 '음지'
  • 魯順同 기자 ()
  • 승인 1998.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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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 편견·무시 여전… 30여 단체 ‘차별’과 싸움
동성애 인권 운동의 원년으로 일컬어지는 지난 95년. 각 대학에 동성애자 모임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유난히 떠들썩했다.

서울대 동성애자 모임 001이 전화 번호를 공개하고 하루 수십 통씩 상담 전화를 받을 때의 일이다. 당시 상담을 담당했던 학생이 한 기혼 동성애자의 사연을 들려 주었다. 한 중년 남자가 ‘세상에 이런 사람이 나뿐인 줄 알았다. 죽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하면서 펑펑 울더라는 것이다. 결혼해서 아들 딸을 낳고 살고는 있지만,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동성에게 이끌리는 마음을 어쩔 수 없어서 자괴감에 시달렸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담자는 울컥 목이 메었다.

에이즈 주범이라는 의심 여전

그로부터 3년. 공개리에 활동하는 동성애자 인권 단체가 서른 곳을 넘어섰다. ‘또 하나의 사랑’·퀴어넷·거아사 등 컴퓨터 통신 동호회를 비롯해, 지역마다 속속 모임이 만들어지면서 전국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에는 동성애자 단체 스물세 곳이 모여 연대 모임인 한국동성애자인권운동협의회(한동협)가 출범했다. 동성애자의 인권 지수를 모임의 이름으로 내걸었던 ‘마음 001’은, 올해에는 ‘마음 006’으로 문패를 바꿔 달았다. 지난해 무산되었던 퀴어 영화제는 별 무리 없이 개막을 앞두고 있다.

바야흐로 서울의 신당동과 종로 밤거리를 떠돌던 은밀한 소문들이 대낮의 외침으로 터져 나오는 형국이다. 퀴어 영화제에 참가하는 영화 평론가 크리스 베이는 동성애 잡지 <버디>와의 인터뷰에서‘한국처럼 역동적인 곳은 없다. 세계의 게이 커뮤니티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대로 요즘 동성애자 진영의 움직임이 부쩍 활발하다. 인권을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는 드높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일반인들 사이에서 얼마나 반향을 얻고 있는가는 별개 문제인 듯하다. 왜일까. 몇년 동안 꾸준히 동성애자 모임에 참석해 온 한 회원은 ‘일반 사람들의 시각이 양극화해 있다’고 말한다. ‘동성끼리는 어떤 방식으로 섹스를 할까?’ ‘침대에서는 어떻게 역할을 구분하는 거지? ’라는 성적인 호기심과, 막연히 ‘그들도 사람이니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박애주의만 있을 뿐 동성애에 관한 제대로 된 지식과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동성애자 사회는 에이즈의 온상이라는 혐의를 벗지 못한 채 허우적대고 있다. 언론에 비친 동성애자의 행동 반경은 어두컴컴한 게이 바나 사우나, 찜질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처럼 동성애 혐오증이 기승을 부리지는 않지만, 이것이 관용 때문이라기보다 무관심 탓이라는 지적도 있다. 구미에서 근대 동성애 인권 운동의 역사가 극심한 탄압과 그에 맞서온 저항의 역사였다면, 한국에서는 존재 자체를 철저하게 무시해 왔다. 동성애 인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법은 없었고, 지금도 없다. 없는 것이 다행일까, 불운일까?’라고 되묻는다.

기독교 영향권에 있던 국가들은 유난히 성에 대한 규범이 엄격했다. 영국은 1861년까지 남색을 사형으로 다스렸고, 당시 독일도 동성간 성행위를 범죄로 규정했다. 동성애는 죄가 아니면 병이었다. 동성애를 치유하는 데 찬물 목욕, 거세술, 불임 시술이 동원되었고 대뇌 피질의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도 행해졌다. 전기 충격도 마다하지 않았다. 50년대에는 미국에서도 동성애가 정신 질환으로 분류되었다. 미국정신의학회의 질병 기준에서 동성애가 삭제된 것은 73년에 이르러서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조처가 60년대 말 세를 더해 가던 동성애 인권 운동가들의 요구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협회가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에 삭제 여부는 이례적으로 회원들의 투표를 통해 결정되었다. 동성애자의 ‘문란한 생활’도 문제

구미 학계가 성 과학의 성과를 축적하면서 어렵사리 도달한 결론, 즉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라 하나의 성적 지향일 뿐이라는 입장은 한국의 현실에서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윤가현 교수(전남대·심리학)는 이러한 현상을 근거 없는 편견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동성애에 대해서 알고 실제로 접해 본 사람들은 쉽게 편견에서 벗어나더라는 것이다. 지난해 그는 제도권 학자로서는 처음으로 동성애에 관한 전문서 <동성애의 심리학>을 펴냈다. 학문적인 논의를 제기하고자 시작한 일인데, 정작 책을 출간한 뒤 그에게 연락해 온 독자는 따로 있었다. 성 문제 상담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상담자나, 동성애자들이 고맙다고 전화한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에 동성애에 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정보가 얼마나 부족한가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동성애 모임이 늘어나는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 즉 괜한 자극을 주어 청소년들이 쉽게 동성애에 빠져들지 않을까 염려스럽다는 시각에 대해서도 성적 지향은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반론을 펼친다.
동성애의 원인에 대한 논쟁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원인이 무엇이든 성적 지향성이 생의 초기에 결정되며, 한번 결정된 성향은 바뀌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한다. 윤교수는‘동성애자의 성적 정체성을 변화시키려는 것보다, 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생활 환경에 적응하도록 돕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세간의 의혹에 대해 동성애자 인권 운동 진영이 대답해야 할 문제도 있다. 동성애자의 생활 양식에 대한 것이다. 동성애자들이 파트너를 쉽게 바꾸지 않느냐, 하룻밤 짝짓기는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도덕 관념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의혹은 에이즈 공포 시대를 통과하는 사회가 쉽사리 떨치기 어려운 것이다. HIV 바이러스의 존재가 알려지기 전 에이즈의 이름이‘게이 돌림병(gay pleague)’이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에이즈를 기화로 세계는 질병을 악행에 대한 신의 징벌로 여기던 시절로 돌아갔다. 60∼70년대 동성애자 인권 운동이 활발했던 미국에서조차도 에이즈 시대에 이르러서는 동성애에 대한 관용이 유지되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요즘도 컴퓨터 통신에는 ‘동성애 퍼뜨리는 호모는 씨를 말려야 한다’는 글이 심심치 않게 출몰하곤 한다. 동성애는‘성을 바로 알자’는 성교육론에서도 비켜나 있다. 누구나 청소년기에 동성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조언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불온 혐의에 시달리는 동성애 옹호론

남성 동성애자 인권 모임 ‘친구 사이’의 회원인 이정우씨는 에이즈 공포증을 부추기는 것이 교육 현장이라고 말한다. 현행 중·고등학교 교과서는 아무런 단서도 달지 않은 채, 동성 간의 사랑이나 성행위는 에이즈 등 갖가지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단정하고 있다. 실제로 한 사회단체는 에이즈에 걸린 동성애자로 하여금 사례를 보고하게 하고, 학생들로부터 ‘순결 서약’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비과학적인 ‘순결 서약식’보다는 ‘안전한 섹스운동’을 벌이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라고 말한다.구미의 성 과학이 성에 대한 정보를 축적함으로써 동성애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면, 구미의 성 정치학은 이들의 실천을 독려했다. 예를 들어 성 정치학자 제프리 윅스는, 성적 다원성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리 객관적인 척해도 결국은 권력에 관한 담론이라고 말하면서 급진적인 동성애자 인권 운동에 불을 지폈다. ‘성에 관한 말과 글은 부지기수지만 성에 관한 역사적 지식은 보잘것없다’고 말하는 제프리 윅스는 푸코의 사상에 젖줄을 댄다. ‘참된 성’의 실체를 상정하기보다는 사회가 성을 규정해 온 방식을 들여다보자는 푸코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따져보기 전에 어떤 것이었는지, 또 지금은 어떤지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처음 공적으로 커밍 아웃(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것)한 게이 액티비스트 서동진씨는 이러한 문제 의식을 이어받고 있다. 하지만 서씨의 급진 발언은 줄곧 불온하다는 혐의에 시달렸다. 그는 “내가 말한 지식은 진위를 따지는 합리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현실적 파장에 대해 화자를 심문하는 구도의 한가운데 나는 서 있었다”라고 말한다.

동성간 결혼과 입양은 꿈도 못 꿀 일

한국 사회에서 시민권을 보장받는 것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 간혹 동성 언약식이 화제를 모으지만 말 그대로 당사자 간의 약속일 뿐이다. 사실 인권 운동 역사가 오래된 곳에서도 특히 동성간 결합이 공인되는 예는 지극히 드물다. 가족 간의 유대와 핏줄을 중시하는 한국 문화에서는 말할 나위가 없다.

현재 법적으로 동성간 결혼을 허용하는 국가는 덴마크와 노르웨이뿐이다. 동성애자 인권 운동이 활발한 미국에서도 최근 하와이 주가 ‘동성간 결혼을 금지하는 것은 주의 평등 보호 법령에 위배될지 모른다’고 언급했지만, 81년까지 미국 전역에서 동성 관계는 공법과 사법의 인정을 전혀 받지 못했다(93년 현재 25개 주에서 동성간 가정을 이루는 파트너 관계를 인정하는 반면, 23개 주에서는 사적인 애정 관계조차도 불법이다).

입양은 더욱 민감한 사안이다. 최근 덴마크에서 게이 부부에게 입양을 허용한 사례가 크게 보도된 데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동성애자가 아이를 입양하거나 양부모가 되는 것을 금하고 있다. 미국은 편부나 편모가 입양한다고 서류에 기록하는 조건으로 동성애자에게 입양을 허용하기도 한다.

동성간 결합은 결혼이 아닌 언약 혹은 동거 형태를 띤다. 최근 독일 사민당 차기 정부가 결혼하지 않은 동거 부부에게도 각종 보장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선언했고, 프랑스는 이와 비슷한 혜택을 주는 법안이 상정되었으나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동성애자의 결혼’에 관해 특집 기사를 다룬 동성애 잡지 <버디>의 한채윤씨도 이런 문제를 꺼내는 것은 이르다고 말한다. 아직은 한국 사회가 동성애자가 멀쩡한 정상인임을 인정받기가 어려운 사회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현단계 동성애자 인권 운동의 구호는 ‘포괄적인 차별 금지’다. 법적인 차별이 없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이는 곧 사회의 편견과 싸우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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