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MBC ‘알아서 기기’ 너무했다
  • 蘇成玟 기자 ()
  • 승인 1996.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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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개편’ 보도 뒤 청와대 요청으로 사과성 발언… MBC “반론권 차원서 방송”
지난 11월12일 밤 9시 MBC <뉴스 데스크>를 지켜 본 전국의 시청자들은 이인용 앵커의 사과성 발언에 의아해 했다. 전날 같은 뉴스 시간에 머리 기사로 내보낸 신한국당과 정부의 당·정 개편 구상 보도와 관련해 앵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제 보도 내용과 관련해서 관련자들에게 일시나마 오해를 불러일으킨 데 대해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발언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우선 ‘오해’의 주체는 관련자이지 일반 시청자가 아니다. 즉 시청자에게 정당한 보도를 했다면 진행자가 특정 관련자들에게 방송을 통해 사과성 발언을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둘째,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하면서도 MBC는 오해를 부른 것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다.

11월11일 MBC <뉴스 데스크> 보도의 골자는 신한국당과 정부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본격적인 당·정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신한국당 대표를 이홍구 의원에서 최형우 또는 김윤환 의원으로 교체하고, 청와대 비서실장에 이원종 정무수석이, 안기부장에 김기춘 의원이나 김우석 내무부장관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시민단체·야당이 정정 요구해도 그랬을까

MBC의 당·정 개편 보도가 나가자 다음날인 11월12일 윤여준 청와대 대변인은 이 보도가 ‘정부의 분위기를 흐트러뜨려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며 즉시 정정 보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청와대측은 보도 자체가 부당하다고 항변했을 뿐,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한 것은 아니다. 즉 반론권자는 오보라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사과성 발언을 내보낸 것이다.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MBC의 발언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MBC노동조합과 전국방송단일노조준비위원회 등 방송계는 물론 국민회의·자민련 등 야당,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민주언론운동협의회 등 민간 단체도 현 정권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일제히 비난을 퍼부었다. 11월13일 MBC노조는 ‘방송 독립에 중대한 침해였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MBC노조는 청와대가 초법적이며 비민주적인 압력을 행사했다면서, 이번 보도가 오보인지 여부는 현 시점에서 증명될 수 없는 것인데 그처럼 신속하게 잘못을 시인한 것은 권력에 무력한 방송의 위상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11월12일 아침 김영삼 대통령이 김광일 비서실장으로부터 당·정 개편 보도 사실을 보고 받은 뒤 격노했고, 김대통령이 직접 MBC 이득렬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가를 혼란스럽게 하는 보도’였다고 호통을 치며 사과 방송을 요구했다고 알려지자 방송계 안팎의 지탄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이득렬 사장은 “청와대로부터 전화를 받은 일이 없다”라고 부인했다. 추성춘 보도국장은 “청와대 비서실과 안기부로부터 전화가 오기는 했지만 반론권 차원에서 보도한 것이지 외압에 굴복한 것은 아니다”라고 노조측에 해명했다.

문제는 오보라는 근거도 뚜렷이 제시하지 못하면서 ‘초법적이며 비민주적인 압력’을 행사한 청와대측이나, 오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단 하루 만에 ‘백기’를 든 MBC측의 태도이다. 보도 내용에 문제가 있다면 피해자는 언론중재위원회, 또는 법원에서 정정 보도 및 피해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청와대와 방송사는 이 합법적인 경로를 무시했다.

만일 일반 시청자나 시민단체, 혹은 야당이 보도와 관련해 정정 보도를 요구했다면 MBC가 하루 만에 반응을 보였을까. MBC의 신속한 사과성 발언에 담긴 문제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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