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한만영의 아홉 번째 개인전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9.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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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영씨, 구분·구별·구획의 무의미함 천착한 개인전 열어
‘과거/현재/미래’ ‘동양/서양’ ‘현실/비현실’…. 세상의 모든 것은 이렇게 구분·구별·구획되어 있다. 그러나 구분되는 것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과거 현재 미래에서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들어 있고, 동서양에서는 ‘양’이라는 말이 둘을 묶는다. 구획되는 것들은 얼핏 상반되는 듯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몸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아홉 번째 개인전(10월19~28일·노화랑·02-732-3558)을 여는 화가 한만영씨의 작품은, 그 다름과 차이를 강조하는 일이 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증명한다. 입을 벌리고 노래하는 신라 시대 토우 밑에는 스피커가 놓여 있다. 첨단 패션을 소개하는 잡지 광고의 이미지와 진시황의 끝없는 욕망을 반영하는 병마도용(兵馬陶俑)이 한 화면에서 어울린다. 수천년 전과 지금, 동양과 서양을 구획하는 것은 시간과 관념일 뿐, 노래로써 즐거움을 얻으려는 태도나 인간의 욕구·욕망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이미지의 결합이다.

3백호 크기 대작들로 이번 전시를 꾸민 작가는 “시간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참 궁금했다. 우리의 관념을 지배하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고, 거기에 천착하다 보니 결국 인생 또는 삶에 대한 의문점과 연결되었다”라고 말했다.

작가는 이같은 작업을 15년 넘게 해 왔다. 그가 붙인 제목은 ‘시간의 복제’. 평면 혹은 입체로 이같은 개념을 드러내는 경향은 지금은 흔히 눈에 띄지만, 그의 작품이 등장할 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퍽 낯설고 새로웠다. 미술사가 송미숙 교수(성신여대)는 작가를 평하는 글에서 그의 선구적 작업 경향을 ‘(한국 화단에서의) 고독한 투쟁’이라고 부른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에서는 작가가 투쟁하듯 벌여온 세련됨이 돋보인다. 평면 위에서 전개되는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고급과 저급의 결합은 한 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정교하게 결합해 오히려 자연스럽게 보인다. 토우나 그리스 시대 조각 같은 이미지로 보이는 ‘과거’는 과거일 뿐만 아니라 현재이자 미래일 수도 있음을 금방 읽어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미술을 어려워하는 이들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다. ‘마릴린 먼로’ ‘책’ ‘잡지’ 같은 잘 알려졌거나 일상적인 이미지들이 복합적이고 추상적인 의미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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