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장] 추억이 울리는 미사리 '통기타 촌'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9.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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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음악’ 메카로 떠올라… 30~50대 위한 공연 줄이어
밤11시. 30평 카페 공간에 빈 테이블이 보이지 않는다. 70여 명이 빼곡하게 앉은 실내에 손님이 계속 밀려들어 문 밖까지 넘친다. ‘한국 통기타 음악의 비조’ 가운데 한 사람인 송창식씨가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오른다. 송씨가 <피리 부는 사나이> <고래 사냥>을 부르자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박수 치고 환호하는 이들은 놀랍게도 40~50대 중년층이다. 그들의 자녀인 10대에 비해 점잖기 그지없지만, 어디에서도 쉽사리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그러나 경기도 하남시 한강변 ‘미사리’에서는 일상적인 모습이다.

미사리에 통기타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공교롭게도 포크 음악 30주년을 맞은 올해 초부터이다. 텔레비전은 물론 어느 공연장에서도 볼 수 없는 70~80년대 통기타 가수들이 매일 무대에 서면서 하루 수천명씩 성인 팬들을 불러들인다.
오후 1시부터 아침 6시까지 공연

송창식 양희은 홍 민 채은옥 유익종 임지훈 남궁옥분 신형원 같은 예전의 유명 통기타 가수뿐만 아니다. 윤시내 이 용 이광조 이치현 길은정처럼 통기타 출신이 아닌 중견 가수도 무대에 오른다. 더러 박정운 같은 90년대 가수도 보인다.

올림픽대로를 지나 하남시로 접어드는 국도에서 팔당대교 직전까지 4㎞ 남짓한 거리 오른편에 줄지어 선 라이브 카페는 40개가 넘는다. 도로를 건너 미사동 카페까지 합하면 80여 개에 이른다. 강변을 따라가다 보면 식당 메뉴 같은 것이 호객을 하는데, 거기에는 라이브 카페가 자랑하는 가수들 이름이 적혀 있다.

속칭 ‘아다마’라 불리는 각 카페의 대표급 가수는 40여 명. 가수 1명이 30~40분 동안 하는 공연은 보통 오후 1시부터 시작되어,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매시간 쉬지 않고 계속된다. 무명 가수 1백50여 명이 유명 가수들의 틈을 메운다. 이들이 주로 부르는 노래는 70~80년대 곡이거나 흘러간 팝송이다.

카페들 ‘옛 가수 모셔오기’ 전쟁

미사리의 통기타 음악 문화가 만들어진 지는 채 2년도 되지 않는다. 매운탕집·횟집 들로 가득했던 이곳에 통기타 음악이 스며든 것은 96년 7월 ‘록시’라는 카페가 문을 열면서부터이다. 그 뒤 라이브 카페가 한두 개 생겨났지만, 무명 가수가 통기타를 들고 분위기를 돋우는 정도였다.

‘분위기용 소품’쯤으로 대접받던 라이브 음악이 ‘공연’으로 자리잡은 것은 지난해 6월부터이다. ‘이종환의 쉘부르’가 문을 열면서 미사리 카페 거리는 명실상부한 라이브 촌으로 탈바꿈했다. 이른바 이종환 사단의 미사리 진입은 ‘옛 가수 모셔오기’ 경쟁에 불을 질렀다. 라이브 카페 주인들은 치열하게 전개되는 그 경쟁을 전쟁이라 부른다.

사활을 건 전쟁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지금 미사리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페 앞의 ‘메뉴’를 보고 카페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90년대 들어 설 자리를 얻지 못했던 ‘늙은 통기타 가수’의 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올랐다. 대중이 외면해 생계까지 걱정해야 했던 그 가수들이 10여년 만에, 최소한 미사리에서는 최고 대접을 받고 있다. 가수 개런티는 30회 공연을 기준으로 천만원부터 수십만원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서울보다 두 배나 비싸다.

‘늙은 가수’들의 전성 시대를 열어준 미사리 카페촌에는 불문율이 몇 가지 있다. 유명 가수는 다른 카페에 겹치기로 출연할 수 없다. 커피 한 잔에 6천원~9천원, 맥주 1병이 8천원~만원, 음식값이 1만6천원~4만원 하지만 커피 한 잔만으로도 몇 시간을 즐길 수 있다. 공연이 하나 끝나면 주인이 ‘도끼눈’을 번뜩이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아홉 시간을 버티어도 노골적으로 나가라고 하지 않는다.

미사리는 1년 남짓한 기간에 잊힌 가수들에게 공연장을 제공하고, 신곡 발표와 새 음반 제작을 가능케 하는 성인 음악·통기타 음악의 메카로 떠올랐다.
‘크고 화려한 것’이 안 통하는 공간

왜 미사리인가? 미사리 카페촌 사람들은 ‘삐삐 사정권’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울에서 급한 연락이 오면 1시간 안에 갈 수 있다는 지리적인 이점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가용 운전자들이 기름값 걱정 없이 20~30분 동안 강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길 수도 있다. 도심의 웬만한 카페에는 40~50대가 발을 들여놓기 멋쩍지만, 이곳에는 차 없는 젊은층이 접근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미사리를 단순한 유흥 공간이 아니라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이 지역이 그린벨트로 묶여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돈 많은 사람이라도 미사리 카페촌에서는 60평 이상 건물을 세울 수 없다. 카페들은 대부분 30평짜리 2층으로 되어 있으며, 주로 2층에서 공연을 연다. 미사리는 크고 화려한 하드웨어로 벌이는 경쟁이 원천 봉쇄된 보기 드문 지역이다.

미사리에는 일반 음식점 외에는, 술집 같은 유흥업소와 숙박업소도 발을 붙일 수 없다. 그 흔한 노래방도 보이지 않는다. ‘유흥’보다 ‘공연’에 어울리는 통기타 가수들이 미사리를 이끌어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 카페 주인은 “작년까지만 해도 남의 눈치를 보는 남녀들이 많이 드나들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바뀌었다. 낮에는 주로 주부들이 찾아오고, 밤에는 직장인이나 가족 들이 주류를 이룬다”라고 말했다.

환경 요인도 중요하지만 미사리를 건전한 성인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대중 문화에 대한 30대 이상 성인들의 갈증이다. 90년대 들어 성인들은 일상에서 가까이 즐길 만한 문화를 갖지 못했다. 안방 극장이라는 텔레비전의 채널은 자녀들에게 내주어야 했으며, 자기 세대 대중 음악을 들을 만한 공간은 집 바깥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대학 다닐 때 좋아하던 송창식씨의 노래를 직접 듣고 너무 좋아서 눈물이 다 났다. 미사리가 특히 좋은 이유는 술을 마시지 않고도 라이브로 노래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래방은 이제 너무 단조롭고 식상하다.” 여고 동창생들과 이곳을 찾은 한 40대 주부는 앞으로는 남편·아이 들과도 자주 들를 생각이라고 말했다.
트로트·록밴드 가수 진출하면서 흔들

미사리와 수도권에서 들불처럼 번져 가는 라이브 카페 붐은 가수들에게 ‘안정된 직장’을 마련해 주었다. 팬과 주류 대중 음악으로부터 소외되었던 중견 가수들은 노래할 무대가 생긴 데 대해 무엇보다 감격해 한다.

80년대까지 그룹 활동을 했던 가수 이치현씨는 “3년 전부터 순전히 생계 문제 때문에 양평의 라이브 카페에서 공연했다. 나이트클럽에서 발 맞추는 노래를 하기도 싫었고, 그나마도 이제는 없다. 몇 곡을 불러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기쁘고, 후배 가수들이 마음 놓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이 생겨 정말 다행이다. 이래야 음악이 발전한다”라고 말했다. 이 용씨도 “다른 데서는 두세 곡만 불러도 지겹지만, 이곳에서는 여덟 아홉 곡을 불러도 신이 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사리 사람들은 통기타 문화가 미사리의 문화로 뿌리를 내렸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들은 이것도 지나가는 유행이자 일시적인 붐이라고 여긴다. “통기타 가수로서 노래할 곳이 많이 생겨 좋기는 하지만, 이 분위기가 그리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빨리 변하기 때문이다. 아마 행정적으로도 한번쯤 된통 얻어맞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전통을 고수하고자 하는 소양이 없어서 문화로 뿌리를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송창식씨의 말이다.

‘통기타 음악의 메카’로 자리를 잡기도 전에 미사리에는 벌써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카페들이 벌이는 경쟁 때문에 카페 분위기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트로트·록밴드 같은 장르의 가수들이 속속 들어와, 통기타 촌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사리에서 라이브 카페를 처음 시작한 록시의 주인 우제식씨는 “손님들이 너무 유명한 가수만 찾다보면 서너 군데밖에 살아 남지 못한다. 손님들이 ‘유명한 가수’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듣겠다는 태도를 가져야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30대를 넘긴 성인들이 실로 오랜만에 건전한 공연 문화 공간을 만들어냈지만, 그것이 뿌리를 내리는 것도 그들 손에 달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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