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로버트 그리피스 <마녀사냥>
  • 추광영(서울대 교수·신문학) ()
  • 승인 1997.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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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카시 열풍을 잠재운 데는 동료 공화당원이 ‘눈먼 당파성’을 끊고, 매카시 축출안을 결의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개인적 친분을 떠난 이들의 행동은 한국 정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로버트 그리피스가 쓴 <마녀 사냥>(백산서당)은 매카시즘을 주제로 다룬 몇 권의 책 가운데 매카시즘 형성 과정과 실체를 가장 정확히 짚었다고 평가받아 70년 출간 당시부터 화제가 되었던 책이다.

50년에 절정에 달했던 ‘공산주의 이슈’(후일‘매카시즘’이라고 명명되었다)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 그 정치·역사적 배경과 원인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책은 조셉 매카시가 성장한 과정과 정치적 욕망을 불태우던 시절, 상원 의원에 당선된 46년부터 상원에서 불신임 결의안이 통과된 54년까지 미국 의회에서의 활동을 다루면서, 매카시가 자기의 정치적 야심을 위해 당시 미국 사회에 퍼진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어떻게 교묘하게 이용했는지 밝혀낸다.

저자는 한 신출내기 상원 의원이 단숨에 미국 정가의 기린아로 떠오를 수 있었던 이유를 미국 정치 구조와 권력의 역학 관계에서 찾는다. 매카시가 공산주의 이슈를 들고 나온 50년대의 미국 정치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전후 소련의 급속한 팽창과 중국 정책 실패, 거기에 한국전쟁이 발발해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던 시기였다. 휠링에서 매카시가 언급한 ‘정부내 공산주의자 2백5명’이라는 발언은 특종에 목말라하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여기에 <허스트> 등 우익 언론들이 가세했다.

50년과 52년 선거에서 매카시즘과 맞선 거물급 정치인들이 줄줄이 낙선하고 매카시는 공화당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연설가로 명성을 날렸다. 52년 선거를 통해 매카시는 공화당이 10여 년간 루스벨트와 트루먼 행정부를 공격하는 무기로 썼던 공산주의 이슈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반공은 초당적 합의’라는 데 발목이 잡힌 미국 의회의 양식 있는 의원들이 매카시와 대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필자의 관심을 끄는 대목은 매카시즘을 차단하는 데 나선 일단의 그룹이다. 53년 초부터 매카시에 대한 전반적인 리뷰에 착수하는 ‘효과적인 의회를 위한 전국위원회 (National Committee for an Effective Congress:NCEC)’와 ‘정보센터(Clearing House)’가 바로 그들이다. 워싱턴의 유명한 로비스트인 로젠블랫이 48년에 자유주의 정치인들을 후원하기 위해 창설한 NCEC는 새로운 각도에서 매카시즘을 해석했다. 이들은 50년대 초 미국의 정치·사회 상황이 독일의 20, 30년대와 흡사하다고 파악했다. 유럽의 정치 변천사를 지켜보았던 지도자들은 미국 사회가 전체주의로 향하고 있지 않는가 우려했다. 그들의 목표는 이같은 변화를 사회에 널리 알리고, 반공주의에 기운 정치 상황에서 많은 시민들로 하여금 매카시즘과 대결하도록 유도하는 데 있었다.

매카시 몰아낸 동료 ‘침묵의 홀대’ 받기도

매카시를 파멸로 몰아넣은 정치적 요인은 여론의 반전, 공화당 수뇌부에서 더 이상 매카시를 용납하지 않은 것, 그리고 민주당의 적극 공세였다. 그 중에서도 같은 공화당원이던 플랜더스와 왓킨스가 ‘맹목적 당파성’을 끊고 온몸으로 항거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매카시를 나락으로 밀어넣은 ‘플랜더스 결의안 261’은 매카시를 상원 행정위원장 직과 상임조사소위원장 직에서 축출하자는 것이었다. 54년 12월 2일 이 결의안은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 전체회의 투표에서 67 대 22로 통과되었다.

초창기에 이들은 의원 보호 관행을 어겼다는 이유로 동료 의원들로부터 ‘침묵의 홀대’를 받았다. 그러나 개인적인 친분과 파벌을 떠나 미국 사회를 혼돈에서 구하려고 했던 이들의 이성 회복에 대한 강한 의지는 지금도 미국 정치사에서 귀감이 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우리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해 관계만을 따져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다. 이들에게 플랜더스의 양식를 바라는 일은 연목구어일까. 선거 막판에 이른바 ‘북풍’이 다시 터져 나올 것이라고 내기를 거는 학생들을 지켜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이런 점에서 <마녀 사냥>은 한국 정치 문화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마녀 사냥

로버트 그리피스 지음
하재룡 옮김
백산서당 펴냄
3백34쪽 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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