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한국 가톨릭, 병인양요 첨병 노릇 참회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7.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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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1백31년 만에 ‘프랑스 침략 첨병 역할’ 참회
1866년 9월18일 중국 천진을 떠나 강화도로 향하던 프랑스 함대에는 프랑스 신부 1명과 조선인 천주교 신자 3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조선 침략 함대를 인도하고 협력을 아끼지 않았던 이들의 머리 속에는 군사적 침략이 야기할 참상보다 대원군의 종교 박해에 보복하겠다는 생각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 해 2월부터 시작된 병인 박해에서 프랑스 주교 2명과 신부 7명을 비롯한 수많은 조선인 신자가 처형되었기 때문이다.

7척의 프랑스 극동함대에 탑승한 리델 신부와 최선일·최인서·심순녀 등 조선인 신자들은 물길 안내인과 통역관으로서 함대를 이끌었다. 종교 박해를 이유로 유럽 제국주의 세력을 앞장서서 이 땅에 끌어들인 셈이다.

프랑스가 강화도 침략을 감행한 지 1백31년 만에, 침략의 첨병 노릇을 했던 한국 가톨릭이 사건이 벌어졌던 바로 그 현장에서 뼈아픈 자기 반성과 사과를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난 11월19일 강화도에 있는 유일한 대학으로서 지난해 개교한 인천가톨릭대학교(총장 최기복 신부)가 교수단 이름으로 발표한 성명서는, 한국 가톨릭이 병인양요에 대해 대외적으로 처음 밝힌 공식 입장이다.

“당시 국제 정세 몰라 민족에 큰 상처”

인천가톨릭대 교수단을 대표해 성명서를 발표한 최기복 총장은 “새로운 세기인 2000년대를 앞두고 교황청을 비롯한 전세계 가톨릭이 과거 역사를 성찰·반성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성명서 발표는 이와 같은 운동에 동참하면서, 강화도민들에게 사죄·속죄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발표 배경을 설명했다.

성명서는‘우리의 주장’이라는 형식을 통해 모두 네 가지 사항을 천명했다. △당시 조선 정부가 천주교 신자들과 프랑스 선교사들을 살해한 데 대해 매우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 △당시 프랑스 정부의 의도와 국제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프랑스 함대를 요청하고 협력한 조선 천주교 신자들과 프랑스 선교사들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우리 민족에게 큰 고통과 상처를 안겨주는 불행을 초래했다. 강화 도민과 민족에게 병인양요로 인한 아픔과 상처를 안겨준 데 대해 천주교인으로서 깊은 사과를 표한다 △병인양요 과정에서 프랑스인들이 탈취해 간 외규장각 도서 전체를 조속히 반환할 것을 프랑스 정부와 국민에게 엄중히 촉구한다 △외규장각 도서가 완전히 반환될 때까지 우리 교수단은 국내외 선의의 하느님 백성과 연대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엄숙히 천명하며, 이 도서가 반환되어야만 병인양요의 상흔이 양국의 우호 증진과 인류 화합을 위해 전화위복으로 승화되리라 믿는다.

인천가톨릭대가 지난 11월8일 <병인양요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라는 학술대회를 개최한 데 이어,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까닭은 1백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병인양요의 상흔이 말끔히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화도에 상륙한 1천5백여 프랑스 군인들은 두 달 남짓한 기간에 방화·약탈뿐 아니라, 부녀자를 겁탈하고 문화재를 탈취해 가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 위해 노력”

양헌수가 지휘하는 조선군에 격퇴될 때까지 이들의 노략질은 계속되었고, 퇴각할 때에는 강화읍 전체를 불지르고 외규장각 도서 3백45권을 비롯한 문화재와 귀금속을 탈취해 달아났다. 그때 훔쳐간 귀중한 문화재들이 지금껏 반환되지 않고 있다.

인천가톨릭대의 성명서 발표는, 이같은 역사적 비극을 빚게 한 가톨릭이 민족 앞에 자기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한 고해성사인 셈이다.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외규장각 도서는 프랑스의 TGV 수입이 결정될 때 그 반환이 한때 논의되었으나, 촌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19세기에 전세계에서 약탈한 유물들로 박물관과 도서관을 채운 프랑스가 유독 한국에만 선뜻 문화재를 반환할 리가 만무한 것이다.

최기복 총장은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운동을 시민운동으로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전개할 것이다. 강화도에서부터 서명 운동을 시작해 제3세계에 이같은 운동이 전파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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