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음악과 만나는 클래식 선율
  • 노승림 (월간 <객석> 기자) ()
  • 승인 2004.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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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츠 브라더스·쿠바 퍼커션의 새 앨범과 내한 공연
창작의 관점에서 들여다볼 때, 클래식의 진화는 지난 20세기에 이미 한계를 맞이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무조(無調)와 우연성의 법칙에 이르기까지 온갖 기법을 총동원했던 클래식은 대중성 부족이라는 ‘고질’에 시달리던 끝에 스스로 다른 종과 교배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태어난 장르가 이른바 ‘크로스오버’ 혹은 ‘퓨전’이다. 팝송과 오페라 가수가 만나 탄생한 팝페라도, 일렉트릭 사운드와 현악 4중주가 만난 본드도 모두 이종교배의 결과물들이다. 그러나 다른 장르와의 만남은 몇몇을 빼면 대부분 실패했다.

실패는 예견되었다. 음악 자체의 완성도보다 팔아먹기 위한 포장에 더 공을 들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모두가 우습게 보게 된 크로스오버야 말로, 이론적으로는 가장 완성시키기 힘든 장르일는지 모른다. 각각의 본질을 침범하지 않고 동반 상승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각각의 장르들이 동등하고 개별적인 우성을 지니고 있지 않는 한 이종교배는 기형을 생산할 뿐이다.

하지만 이번에 클라츠 브라더스와 쿠바 퍼커션 주자들이 시도한 ‘Classic meets Cuba’는 지금까지의 크로스오버와는 다른 평가를 내릴 만 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클래식과 쿠바 음악이 손을 잡았다. 최근 발매된 음반을 들어보면 알 수 있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클래식 멜로디와 쿠바 리듬의 결합이다.

클래식이 그동안 워낙 오만가지 잡종과 교배를 시도했던 만큼, 이번 시도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공연에 앞서 국내에 상륙한 그들의 앨범 는 이런 우려와 선입견을 뒤집어엎기에 충분했고 공연은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지난 4월2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이들의 콘서트는 성공적인 크로스오버 음악의 전범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앨범의 첫 곡 에서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은 신나는 아프로 쿠반 리듬과 융합해 본래 곡이 가지고 있는 활력이 두 배 이상 상승했다. 베이스와 콩가 듀오로 연주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의 첫 곡 <프렐류드>는 피치카토 주법(현을 활 대신 손가락으로 튀기는 주법)으로 선율을 타악기처럼 표현하고 콩가가 그 모든 음들에 대위법으로 대응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밖에 베토벤·브람스·쇼팽 등 내로라 하는 클래식 거장들의 음악이 쿠바의 타악기들과 만나 예전에 가지지 못했던 에너지와 새로움을 분출해내고 있다.

클래식의 본고장인 독일에서 이미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이들의 시도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그들의 앨범 타이틀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Face to Face’라는 제목은 어느 한쪽을 나머지 장르를 예속시키려는 대신 서로를 동등한 처지에서 만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장르간 융화로 예술성·대중성 확보

연주에 참여한 다섯 아티스트들이 각각의 장르에 독자적인 커리어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주요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킬란과 토비아스 형제는 각각 베이스와 피아노를 연주하는 클래식 아티스트이며, 알렉시스 에레라 에스테베스와 엘리오 로드리게스 루이스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명장 콤파이 세군도와 함께 무대에 섰던 쿠바 토박이 연주가들이다. 여기에 드럼을 담당한 팀 한은 클래식과 대중 음악 세션을 동시에 섭렵한 인물로 양쪽 장르의 자연스런 융화에 누구보다 공을 세웠다.

음악은 생물학과는 또 달라서, 몇 대 몇 성분의 수학적 공식으로 제3종을 완성시킬 수는 없다. 성패를 가르는 가장 큰 관건은 이타적인 두 스타일이 나누는 정서적 공감대에 달려 있다. 서로가 서로의 다른 면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동시에 함께 공감해주는 수순으로 들어갈 때 크로스오버와 퓨전은 그 이름에 걸맞는 새로운 종으로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음악의 제왕 자리에서 모든 음악을 내려다보았던 클래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눈높이 교육’이다. 눈을 낮추지 않고서는 이종교배가 불가능하다. 이번 음반과 내한 공연에서 클래식의 ‘잡종강세’를 점쳐 보았다면 성급한 낙관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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