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에 파문 던진 이문열 소설<선택>
  • 金恩男 기자 ()
  • 승인 1997.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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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씨 소설 <선택> 공방 일단락 …여성 ‘자기 정체성 찾기’ 활발
전쟁은 끝났다. 지난 3월 이문열씨의 장편 소설 <선택>이 나왔을 때 한 언론은 ‘보수 논객과 페미니스트 간에 한 차례 전쟁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같은 전망은 맞았다. 그로부터 두 달 가까이 신문·텔레비전의 인문 교양 분야에서 <선택>은 최대 화젯거리였다. 소설가 이순원씨의 말마따나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조차 내용의 전부를 파악한 양 화제를 확대 재생산하는 데 참여할 정도’로 그 열기는 거셌다.

이문열씨에 따르자면, 이 소설이 ‘반(反)페미니즘 소설’로 낙인 찍히면서 화제에 오른 것은 ‘시비 붙이기를 좋아하는 대중 매체’ 그리고 ‘요란스런 일에 편승하기 좋아하는 얼치기 논객’이 낳은 합작품이다. 본래 <선택>을 집필한 동기는 ‘우리의 삶에 한 본보기가 될 만한 여인상을 역사 속에서 발굴하는 데’ 있었다는 것이 작가의 변이다. 그러나 그 동기를 부여한 계기가 ‘무턱대고 가정을 뛰쳐나오는 것을 여성 해방으로 여기는 일부 그릇된 여성주의자들에게 한마디 하기 위한 것’인 이상 논쟁을 피해 가기란 애당초 어려웠다.

우선은 화법 자체가 도전적이었다. 이 소설은 조선 중기를 살다 간 사대부 집안 여성(장씨 부인)의 혼령이 오늘날 여성들의 ‘성난 외침과 괴로운 부르짖음’때문에 영겁의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장씨 부인은 처녀 적에 ‘여자 선비(女士)’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학문적 성취가 높았던 만큼 시종 고아(高雅)하고도 품격 있는 의고체 문장으로 자신의 일생을 회고한다.
그러나 현대 여성들에게 메시지를 던질 때면 장씨 부인의 말투는 표변한다. 그것은 철저하게 오늘날의 화법이며, 내용은 직설적이다. ‘빗나간 일부 페미니스트’를 훈계하는 대목을 예로 들자면 ‘그들은 이혼의 경력을 무슨 훈장처럼 가슴에 걸고 남성들의 위선과 이기와 폭력성과 권위주의를 폭로하고 그들과 싸운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이혼은 절반의 성공쯤으로 정의되고 간음은 황홀한 반란으로 미화된다. 그리고 자못 비장하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외친다’는 식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가사 노동 분담·성적(性的) 자기 결정권·모성성의 문제 따위 이 시대 여성 문제의 가장 민감한 항목들에 대한 장씨 부인의 입장 표명 역시 비슷한 방식을 취했다. 그는 말한다. ‘(너희 논객들의 권유가 내게는) 마치 자기 성취를 원하는 여성에게는 가정은 감옥이고 남편은 폭군이며 아이들은 족쇄라고 외치는 것처럼 들린다. 현모양처란 무능과 불행의 다른 이름이고 내조와 양육은 허송세월의 동의어인 듯하다.’

“작가와 여성계 싸움 붙이려는 언론 탓 커”

이에 대해 여성계 또한 가만 있지 않았다. 소설 들머리에서 장씨 부인은 ‘요즘 들어 부쩍 높아진 목소리로 너희를 충동하고 유혹하는 수상스런 외침들’이야말로 ‘진실로 걱정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지만, 여성계는 현 시기에 이같은 작품을 쓴 이씨의 저의야말로 ‘진실로 수상스러운 일’이라고 대응했다. 페미니즘 전문 계간지 의 편집주간 류숙렬씨는 “오늘날의 여성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3백년 전에 죽은 혼을 무덤에서 끄집어내 부활시켰다는 점에서 <선택>은 고리타분하다”라고 지적했다. 자신의 속내를 조선조 여인의 점잖은 어법에 감춘 채 문학이라는 외피로 포장했다는 점에서 교활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이영자 교수(가톨릭대·사회학)는 나아가 “페미니즘이냐 반페미니즘이냐를 논할 가치도 없는,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 자체가 결여돼 있는 작품”이라고 일축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러나 여성계뿐 아니라 <선택>에 대한 사회 전반의 반응이다. 조혜정 교수(연세대·문화인류학)는 “복고주의 경향이 강한 데다가 80년대 변혁 운동권에 대한 태도에서 보였듯 보수주의자인 이씨가 이같은 소설을 쓴 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선택>은 발간 두 달 만인 5월16일 현재 13만 부 가량 팔려 나가며 각 서점마다 소설 부문 베스트 셀러 수위에 올라 있다.

이같은 현상이 ‘이씨와 여성운동가들을 싸움 붙이려 안달하는 언론 체제’ 곧 언론의 상업적 속성에 기인했다는 조혜정 교수의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선택>을 펴낸 민음사 이갑수 편집국장은 “서울에서 먼저 책이 ‘뜬’ 다음 3∼4개월 지나면 지방에서 반응이 오는 것이 통례인데, <선택>의 경우는 전국 서점에서 동시다발로 고르게 주문이 들어왔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언론 매체의 위력이 작용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언론 매체의 싸움 붙이기가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불과 2년 전 중견 작가 유순하씨가 <한 몽상가의 여자론>을 펴냈을 때도 언론은 ‘남성 작가가 한국 여성운동의 행태를 정면으로 비판한 최초의 책’이라며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여성학계의 ‘진지하고도 논리적인 비판’은 한 차례도 없었다는 것이 유씨의 회고이다. ‘싸움’이 의도대로 성사되지 않아서일까. 이듬해 유씨가 후속 격으로 펴낸 <참된 페미니즘을 위한 성찰>은 언론으로부터 거의 외면받다시피 했다.

유순하씨와 이문열씨의 출발 지점은 비슷하다. ‘페미니즘은 학문과 운동, 양편 모두에서 여자들 자신을 오도하면서 마침내는 위기적 징후가 차츰 더 뚜렷해져 가고 있는 사회적 부패나 타락 현상을 더 촉진하고 있다’(<참된 페미니즘을 위한 성찰>)는 데서 출발한 유순하씨의 지적은 ‘진지하고 성실하게 추구되고 있는 페미니즘에 저항할 논리는 이 세상에 없다. (중략) 페미니즘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것이 지나쳤을 때뿐이다’(<선택>)라는 이문열씨의 문제 의식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이씨의 작품이 훨씬 큰 반향을 일으킨 데는 우선 이씨 개인의 역량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성계는 이를 최근의 아버지 증후군·남편 기 살리기 운동의 연장선이라고 보고 있다. 전통적 가족주의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의 정점에 <선택>이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연구회 심진경씨(서강대 박사과정 수료·국문학)는 ‘아버지는 없고 아빠만 있는 부권 상실 시대’에 대한 남성들의 위기 의식이 <선택>의 인기를 부채질했다고 분석한다. ‘30∼50대 남자층이 <선택>을 주로 찾는다’는 교보문고 판매 담당자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1∼2년에 일고 있는 ‘신(新) 현모양처론’은 부권 회복 움직임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남성 아닌 여성의 입으로 현모양처를 얘기하기도 한다. 고부 갈등·남편 외도·자녀 가출 등으로 숱한 질곡을 겪었으나 참고 이겨냄으로써 결국 가정의 평화를 지켰다는 전직 영화 배우 엄앵란씨는 방송에서 부부 문제 상담 코너를 맡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조양희씨의 <부엌데기 사랑> 등 전업 주부의 정체성에 대해 당당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에세이가 인기를 누리는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이같은 현상은 급진적인 주장이 대체로 주류를 이루어 온 대학 캠퍼스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연세대 총여학생회 선거에 단독 입후보한 출마자가 내건 공약은 ‘화합과 섬김을 담은 여성운동’이었다.

흥미있는 것은 경제 위기가 있을 때마다 이처럼 보수주의적 여성관이 고개를 든다는 여성학의 여러 연구 결과들이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따르면 이는 ‘자본의 음모’에 따른 것이다.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구호는 고임금 여성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저임금으로 끌어내리고, 주부들의 값싼 노동력을 파트타임 등의 형태로 묶어 두는 데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경제 위기 여성에 전가하는 부권 회복 운동

심진경씨는 최근 한국에서 일고 있는 부권 회복 운동 또한 경제 위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명예 퇴직·조기 퇴직의 위협 앞에 가장이 휘청거릴 때 ‘자기 성취를 내세워 집 밖으로 나돌고(집안 살림을 알뜰하게 못하고)’‘집안에서 남편의 기를 살려 주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경제 위기의 책임을 전가하려는 논리가 그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여성들이) 연고 판매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조악한 상품의 외판원이 되어 친지들을 괴롭히고 다니거나 나이 든 비숙련공으로 헐값에 노동력을 팔고 있는 사이에 가정은 뿌리째 흔들린다. 점심을 라면으로 때운 아이들은 갑작스레 늘어난 자유 시간을 만화 가게나 비디오 방에서 폭력과 음란부터 익힐 것’이라는 <선택>의 묘사는 그런 의미에서 악질적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럼에도 현모양처 이데올로기가 힘을 발휘하는 것은 일반 여성의 정체성 찾기가 아직 낮은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반증한다(오른쪽 기사 참조). 현모양처를 주장하는 쪽에서 보면, 이들 일반 여성은 앞서 묘사한 어설픈 취업 여성 아니면 ‘이런저런 단체가 좌판처럼 펼쳐놓은 싸구려 문화 강좌나 벌써 오래 전부터 정원 미달인 하류 대학의 대학원에서 혼자 황홀한 몽상에 젖어 있는’(<선택>) 존재들이다. 반대로 ‘나쁜 여자’ 곧 자기 욕망에 충실한 여자가 오히려 건강한 가정을 일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쪽에서 보면 이들은 여전히 ‘모나리자 증후군’(애매모호한 미소 뒤에 자기 욕망을 감추도록 길든 여성 심리. 독일의 심리학자 우테 에하르트가 제창한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선택>을 둘러싼 논쟁은 끝나 가지만 가부장제와 맞서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한 여성들의 ‘선택’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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