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시문학상 탄 '섬진강 시인' 김용택
  • 전북 임실/글·사진 李文宰 기자 ()
  • 승인 1997.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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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회 소월문학상 탄 김용택 시인, 50년 만에 섬진강 떠나 새 학교 부임
나이 쉰에 시작하는 객지 생활은 어떤 것일까. 최근 제12회 소월시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시인 김용택씨(50)는 이번 봄에 고향 섬진강가를 떠났다. 그의 수상 소감도 50년을 살아온 섬진강변 진메 마을과 덕치초등학교에 대한 감회로 출발하고 있어서, 여간한 객지 생활이 아니구나 싶었지만, 도시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그가 새로 부임한 전북 임실군 운암면 마암리 마암 분교는 고향과 다를 바 없었다.

그가 나고 자라고 30년 가까이 열두어 살 안팎 어린이들을 가르쳤던 덕치초등학교에서 마암 분교는 자동차로 30분이 채 안 걸린다. 산이 다르고 물이 다르고 또 학교와 마을도 달라서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매우 어려웠다는 그의 고백은 그래서 ‘엄살’로 들렸다.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50대 치고 고향을 떠나지 않은 이가 몇이나 될까. 섬진강을 떠난 섬진강 시인 김용택씨에게 마암리는 분명 타향이겠지만, 도시 사람들에게 그는 평생 고향 임실군을 떠나지 않고 있는 선택받은 삶으로 여겨진다.

김용택 시인의 소월시문학상 수상작은 <사람들은 왜 모를까> <강천산에 갈라네> 등 여덟 편으로,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문예지에 발표한 시편들이다. 구 상 김남조 이어령 오세영 권영민 씨 등 소월시문학상 선정위원회는 ‘김용택 시인의 최근작들은 모두 절제된 언어를 통해 시적 정서의 긴장과 전형을 살려내고 있다. 특히 시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경험적 현실로 인식하고 그것을 상상력의 세계 속으로 끌어올리는 형상성이 뛰어나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수상작품집은 4월 중순에 발간된다).

‘이별은 손끝에 있고/서러움은 먼데서 온다/강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아침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로 시작하는 시 <사람들은 왜 모를까>는, 꽃을 피워내기 위해 몸살을 앓는 생명의 치열함과, 그 꽃들 앞에서 멀미를 일으키는 삶의 뒤안을 읽어낸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누구도 닿지 않는 고독이 있다는 것을’발견하면서, 시인은 그 고독과 서러움을 다음과 같이 봄의 꽃으로 의인화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마암 분교 앞으로 잘 다린 옥양목처럼 펼쳐져 있는 옥정호 일대는 ‘닿지 않는 고독’들이 지천으로 널려서 저마다 꽃과 새순을 밀어올리고 있었다. 봄볕에게 막 생겨난 얼굴을 부벼대는 뭇 생명들은 환하고 환해서 꽃들이 재잘거린다는 환청이 들릴 지경이었는데, 그래서 봄날 오전은 자욱했는데, 분교 교실 안에도 어린 꽃들이 개화하고 있었다. 전교생 15명. 2학년 둘과 5학년 셋의 담임인 김용택 시인에게, 교실 밖에 가득한 봄날의 따뜻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쓰라림이 모두 시이듯이 그가 품안에서 키워내는 어린이들 또한 애틋한 시였다.

복식 수업. 두 학년을 동시에 가르치는 수업이다. 지난 4월11일 오전 1교시. 2학년은 <수학>을, 5학년은 <읽기>를 공부했다. 2학년 현자는 교과서를 갖고 오지 않아서 선생님 책으로 대신했고, 5학년은 세계의 인종과 통신을 수업했다. 바퀴 달린 의자에 앉은 선생님은 2학년을 가르치다가 의자를 굴려 옆 탁자로 가 5학년과 입씨름을 한다.
山을 화자로 한 동화 집필 중

작달막한 체구에다 동안이어서 김용택 선생님은 멀리서 보면, 교사가 아니라‘천하의 개구장이’로 보인다. 어떤 때는 선생님을 ‘아저씨’라고 부르는가 하면, ‘공부 그만하고 나가 놀자’며 떼를 쓰기도 하는 마암리 아이들. 시인 선생님, 같은 고향 선생님을 새로 만난 마암리 아이들은 새 봄에 큰 선물을 받았다. 김용택 선생님이 알음알이로 서울에 있는 출판사에 부탁해 동화책을 수백 권 넘게 구해놓은 것이다.

김용택 시인에게 시와 삶은 동의어이다. 그리하여 글쓰기와 아이들 가르치기에 경계가 있을 수 없다. 그의 문학도 시골 아이들에게 맞는 글쓰기 교육에서 촉발한 것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시인에 뜻을 둔 때와 교육자의 길에 들어선 시기도 같았다. 그때가 스물두 살. 그러나 그는 서른다섯에야 문단에 나온 늦깎이였다. 그 십수 년에 걸친 그의 문학 수업은 철저한 독학이었다. 섬진강과 어머니, 누이, 마을 사람들, 농촌의 열악한 현실이 그의 문학 교사들이었다.

그는 시론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단단한 시론을 갖추고 있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나는 시를 늘 내 삶만큼만 쓴다는 생각을 하며 산다. 글이고 무엇이고 간에 모든 것이 내 삶에서 나온다고 믿으며 살았다’라고 못박고 있다. 그는 시를 어렵게 정의하지 않는다. 시는 다름아닌 간절함,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에서 길어올려진다는 것이다. 그의 최근의 간절함 가운데 한자락은 사랑에 대한 새삼스런 자각이다. ‘우수수수 내 발등에 떨어지는 꽃잎들이/사랑에서 돌아선/그대 눈물인 줄만 알았지/내 눈물인 줄은 내 어찌 몰랐을까’(<나비는 청산가네> 중에서)라면서 삶의 미세한 기미들을 포착하는 것이다.

<녹색평론>에 매호 실리면서 종종 인용되는 ‘모든 진정한 시인은 본질적으로 가장 심오한 생태론자이다’라는 잠언이 있다. 50년 동안 고향에서 살면서, 시인으로, 두메의 초등학교 평교사로 자신의 삶을 채우고 있는 김용택 시인처럼 저 명제와 잘 어울리는 사람도 드물다. 꽃이며 풀, 짐승이며 물고기, 날씨와 절기, 농삿일과 물일 등 자연과 관련한 이름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비록 시를 쓰지 않아도 이미 시인이며, 심오한 생태론자이다.

시는 ‘바깥의 사유’이다. 우리 시대에 ‘안’은 다름 아닌 도시이다. 그 도시는 지금 뒤돌아보지 않고, 밖을 살피지 않고 무서운 속력으로 21세기에 진입하고 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씨는 ‘밖’에 있다. 그 밖은 흙이고 농업이고 동식물이며, 무엇보다도 생명에 대한 지극한 사랑, 즉 시이다. 모든 진정한 시인은 본질적으로 가장 심오한 아웃사이더가 아닐 수 없다. 안에서는 안이 결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동화 한 편을 쓰고 있다. 인간의 욕망에 의해 끊임없이 파괴당하는 산을 화자로 등장시킬 참이다. 산이 본 인간, 산이 본 도시를 그리고자 한다고 그는 말했다.

시집 <섬진강>으로 섬진강 줄기의 한 두메 덕치를 문학 기행의 ‘주요 순례지’로 만들어놓은 김용택 시인은, 바로 그 때문에 주말을 비워두지 못한다. 특히 요즘 같은 봄철이나 가을철에는 전국 각지에서 독자들을 가득 실은 관광 버스가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문학기행팀에게 시인과 섬진강은 매번 처음이지만, 매번 혼자서 그들을 맞아야 하는 시인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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