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선]<안네 소피 무터 바이올린 독주회>
  • 홍승찬 (음악 평론가) ()
  • 승인 1995.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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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신동’ 손끝에 울릴 영감과 기교의 하모니
작년 이맘때는 기돈 크레머와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다녀갔다. 두 사람은 마치 신선이 노니는 듯 고고하고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특히 이 시대 최고의 테크닉을 자랑하는 기돈 크레머는 기교의 달인답게 범접할 수 없는 경지를 보여주었고, 청중은 숨을 죽이고 그 순간을 만끽했다. 안네 소피 무터가 내한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불현듯 작년의 감흥이 떠오르면서, 이번에도 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감동이 있을 듯한 예감이 스친다. 지명도에서나 실력에서 기돈 크레머의 아성에 도전할 만한 여류 바이올리니스트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안네 소피 무터이다.

여류라면 우리에게도 정경화가 있고 장영주도 있지만 30대 여류 가운데는 단연 무터가 앞서 나가고 있다.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누구보다 먼저 신동의 굴레를 박차고 나와 정체성을 찾으려 노력했고, 지금은 현대 음악에 진력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한동안 갈등을 겪은 후 안정을 찾고 있는 최근의 모습이라 기대되는 바가 더욱 크다.

무터라면 조수미가 떠오르고 카라얀이 생각난다. 바이올린과 성악이라서 분야는 서로 다르지만 나이가 비슷하고 무엇보다 유난히 남다른 재능을 타고났다는 점에서 같다. 두 사람은 모두 카라얀에게 발탁됨으로써 도약할 기회를 잡았고, 현재는 자기 분야에서 세계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더 눈에 띄는 공통점이라면, 늘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진취적인 기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이 점이 두 연주자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연주자로서 무터는 누구보다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 그가 처음으로 사사한 스승은 칼 플래시의 제자인 예르나 호니히베르거인데, 그를 만난 지 얼마되지 않아 일곱 살에 전독일 청소년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하였다. 그가 죽은 후 두 번째로 맞은 스승 아이다 스보워키 역시 칼 플래시의 전통을 이어받은 교육자여서, 자상하면서도 일관성 있게 무터를 이끌어 주었다. 이런 훌륭한 스승들 밑에서 공부한 것도 흔치 않은 행운이었지만 열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카라얀에게 발탁된 것은 무터의 일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다. 그 이후 그는 지금까지 정상의 위치를 지키며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무터는 12월17일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있을 이번 연주회에서 브람스·드뷔시·모차르트·사라사테의 작품을 들려줄 예정이다. 모차르트라면 일찍이 카라얀을 감동시켰을 정도로 통달해 있고, 브람스 역시 무터가 장기로 삼는 영역이다. 최근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현대 음악이 빠진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드뷔시의 작품이 들어간 것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번 연주회의 연주 곡목이 지난 9월11일에 있었던 베를린 연주회의 레퍼토리와 비슷하다는 점도 기대를 갖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2년 전 그토록 당당하고 거침없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섰던 안네 소피 무터가 이번 무대에서는 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기대만큼이나 호기심이 더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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