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존 키건 저 <세계 전쟁사>
  • 지만원 (군사 평론가) ()
  • 승인 1996.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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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키건 저 <세계 전쟁사>/역사 속의 ‘싸움’ 문화사적 관점에서 해석
 
우리는 평시에 전쟁을 멀리해 왔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나라들보다 비교적 더 많은 전쟁을 치렀고 또 번번이 패해 왔다. 전쟁을 예방하고 전쟁에 패하지 않으려면 평시에 전쟁에 가까워지고 전쟁을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존 키건의 〈세계전쟁사〉(유병진 옮김·까치 펴냄)는 전쟁을 거대한 괴물로 다루지 않고 쉽게 이해하고 친숙해질 수 있도록 인류 문명과 문화 발전의 역사 속에서 다루었다.

전쟁의 동기는 무엇인가. 독일군 장교로 나폴레옹 전투에 참전했던 클라우제비츠는 1800년대 초에 쓴 <전쟁론>에서 전쟁을 정치의 수단이라고 말했으며, 이 정의는 이제까지 엄청난 설득력을 가져 왔다. 그러나 이 책은 전쟁이 꼭 정치의 연장만은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치가 전쟁의 연장일 수 있다는 사례도 담고 있다.

고대 전쟁과 문화 자상하게 다뤄

전쟁 자체에서 자기 만족을 느끼는 영웅들이 있었다. 패튼 장군은 전투를 매우 즐겼다. 그는 과감하고 단순하며 핵심적인 전투 계획을 만들 줄 알았으며, 그 계획대로 병사를 움직일 줄 알았다. 그는 그의 의지대로 전투에서 승리할 때마다 엄청난 만족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전쟁을 예술이라고 믿었다. 만일 이라크의 후세인에게 패튼과 같은 전쟁 수행 능력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영웅은 시대의 산물이지만, 한 사람의 영웅이 시대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전쟁을 정치의 연장이라고만 믿는다면 전쟁은 충분히 예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단순한 감정이 전쟁을 유발할 수도 있으며, 예측할 수 없는 전쟁광에 의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 때 만일 이웃 나라가 무능한 정치가에 의해 갈팡질팡한다면 전쟁은 충분히 유발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전쟁에 대처하고 있는가. 그런 것 같지 않다는 징후가 적지 않다.

 
첫째, 전쟁이 무엇인가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둘째, 한국 군인들은 전쟁을 연구하지 않는다. 한국군은 그 많은 인력과 예산을 쓰면서도 전쟁을 연구하는 부서를 단 한 개도 가지고 있지 않다.

셋째, 북한이 서울을 단숨에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큰소리를 칠 때 우리 국민과 군은 이에 대해 한마디도 못했다. 그에 대응할 만한 아무런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들 마음 속에는 날이 갈수록 더욱 강하게 민족적 자존심이 자라고 있다. 이러한 자존심에 비추어볼 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 수호는 자존심만 가지고 안된다. 정의감과 그 정의를 지킬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우리 국민은 자존심만 강했지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정의감과 힘을 준비하지 못했다. 복잡한 것을 생각하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군을 이대로 방치하고 있다.

우리는 전쟁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공부하고 전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군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군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배워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노력을 유발할 수 있는 좋은 매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고대의 문화와 전쟁을 자상하게 다룬 데 있다. 현대전은 복잡하고 두렵다는 선입견이 앞서지만, 고대 전쟁은 우리에게 매우 흥미롭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 책의 두 번째 장점은 방대한 분량의 참고 목록이다. 이 자료들은 전쟁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귀중한 ‘저수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약점도 있다. 첫째, 많은 양의 자료를 가지고 객관성을 유지하려다 보니 다소 복잡해지고 난삽해진 감이 든다. 둘째, 번역이 너무 직역에 치우쳐 문맥이 부드럽지 못한 데가 눈에 띈다. 그러나 <세계전쟁사>를 읽으면 전쟁이 바로 시대의 산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전쟁을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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