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서점 새 명물 ‘서평 블로그’ 가 뜬다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4.06.0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넷 서점 서평 블로그들 ‘문전성시’
‘기득권 세력의 공격을 막느라 집권 1년은 아무것도 안했다지만, 이제 집권 여당이 과반수를 확보한 마당이니 그(노무현 대통령)가 어떤 군주로 기억되느냐는 순전히 자신에게 달렸다. 4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현직 의과대학 교수 서 민씨(37)는 지난 6월3일 점심 식사를 한 후 책상에 앉아 위와 같은 글을 썼다. 일종의 시사 칼럼 같지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까치글방)에 대한 독후감이다. 그는 전문가 서평과 달리 독자의 주관적인 감수성이 물씬 담긴 이 서평을 자신의 ‘서재’에 올렸다.

서씨가 지난 1년 동안 읽고 서평한 책은 모두 1백20여 권. <설국> <랍스터를 먹는 시간> 같은 소설에서 <노무현 살리기> <사다리 걷어차기> 등 사회과학 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의 서재에는 지금껏 1만4천여 명이 방문해 그의 글을 읽었다. 물론 그의 서재는 현실 공간이 아니라 온라인에 존재한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www.aladdin.co.kr)의 블로그 ‘알라딘 마을’에 있는 가상 공간이다. 그는 여기서 ‘마태우스’라는 필명으로 유명하다.
“공부를 하고 나면 시험을 봐야 정리가 되듯, 서평을 써야 읽은 책이 내 것이 된다”라고 말하는 그는, 알라딘 마을에 입주하기 전까지만 해도 블로그가 뭔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그는 거의 매일 접속하고 있다. 주말에는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거나 남이 쓴 글을 읽는다.

‘진/우맘’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심승희씨(29·특수학교 교사)도 알라딘 마을의 유명한 ‘서평 폐인’이다. 두 살과 다섯 살짜리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주로 어린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올린다. 다양한 어린이 책 관련 사이트가 링크되어 있는 그녀의 서재는 알라딘 마을에서 ‘아이 엄마들의 허브’로 통한다. 심씨는 “엄마 아빠들이 아이들의 그림책을 고를 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글을 올린다”라고 말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지난해 7월 이용자들이 인터넷 공간에 자기만의 방을 개설하고 서평을 올릴 수 있는 블로그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후 1년, 현재 대부분의 인터넷 서점들이 이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국내 최대의 인터넷 서점 예스24(www.yes24.com)가 지난해 11월 자체 블로그를 개설했고, 인터넷 교보문고(www.kyobobook.co.kr)는 올해 1월 말 ‘북로그’라는 이름으로 블로그 서비스를 시작했다. 책(북)과 블로그(인터넷 1인 미디어)를 합친 이 단어는 인터넷 서점 블로그의 특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인터넷 서점에 따라 각각의 블로그 성격도 조금씩 다르다. 예스24는 최대 규모의 서점답게 가장 다양하고 많은 블로그를 거느리고 있다. 알라딘 마을은 ‘마이리뷰’ ‘마이리스트’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고 있으며 회원들의 수준도 상당해 일종의 마니아 공간 같은 느낌을 준다. 교보문고는 다른 블로그와 달리 철저히 서평만을 올리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블로그 시스템이 활성화하면서 서평의 대중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알라딘 마을에 블로그를 개설한 회원 중에서 한 번 이상 서평을 올린 사람은 3만여 명에 달한다. 1만7천여 블로그가 모여 있는 교보문고 북로그에는 4만 여건의 서평이 올라 있다. 쇼핑몰의 책 소개 밑에 독자 서평을 쓰도록 유도하던 때와 비교하면, 블로그 시스템을 도입한 뒤 서평 쓰는 독자 수는 평균 3~4배 이상 급증했다. 인터넷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월 평균 6백~7백 건씩 올라오던 독자 서평이 올해부터는 월 평균 3천 건을 넘어섰고, 대규모 이벤트를 한 5월에는 8천 건이나 되었다.

독자 서평이 활성화하면서 출판 시장에도 일정한 변화가 생기고 있다. 서평이 많이 붙는 책은 스테디 셀러로 남는 반면, 서평이 달리지 않는 책은 유통 수명이 짧아지는 현상이다. 교보문고 베스트 셀러 1~50위에 오른 책들에는 다른 책들에 비해 훨씬 많은 평균 43개의 독자 서평이 붙어 있었다. 이에 따라 인터넷 서점들은 매주 우수 서평을 선정해 적립금과 경품을 주는 등 블로그 이용자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나를 변화시키는 좋은 습관>이라는 책은 언론의 눈길을 전혀 끌지 못하다가 네티즌들의 눈에 띄어 베스트 셀러에 올랐다. 반면 언론에서 호평을 받으며 출간 직후 베스트 셀러 대열에 진입했던 <사서삼경을 읽다>(김경일 지음)는 독자 서평에서 외면당한 뒤 곧 밀려났다. 교보문고 인터넷사업본부 박웅영씨는 “독자 서평이 많지 않거나 독자들에게 잘못 보인 책은 금방 밀려난다. 물론 잘 팔리는 책에 서평이 몰리는 경향도 있다”라고 말했다.

과거에 도서 카테고리를 만드는 것은 전문가나 사서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전혀 다른 질서가 형성된다. 추천과 검색이 많을수록 믿을 수 있는 카테고리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올해 초에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실린 어린이 책 독자 서평을 묶은 <하하 아빠, 호호 엄마의 즐거운 책 고르기>(휴머니스트)라는 책이 출판되어 관심을 끌기도 했다.

“글쓴이 주관 뚜렷한 게 오히려 장점”

언론에 실리는 전문가 서평보다 동료 아마추어 독자들의 서평을 더 신뢰하는 이들도 생기고 있다. 최근 교보문고 북로그의 우수 서평자로 뽑혀 MP3 플레이어를 받은 정명성씨(41·회사원)는 “전문가 서평과 달리 독자 서평은 글쓴이의 주관적인 취향이 많이 묻어 있어 독자들이 비슷한 취향의 책을 고르는 데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알라딘 마을과 교보문고 북로그에 자기 방을 갖고 있는 이상미씨(33·프리랜서)는 “처음에는 적립금을 받으려고 대강 글을 써서 올렸는데, 다른 사람들이 내 글을 본다고 생각하면서 요즘은 정성껏 쓰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평 블로그는 일반 인터넷 쇼핑몰에 비해 방문자 수가 많고 방문 시간도 긴 인터넷 서점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마케팅 차원에서 개발된 것이다. 하지만 책이라는 소재의 특성 덕분에 서평 블로그는 일종의 지식 커뮤니티로 거듭나고 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조유식 대표는 “블로그가 활성화하면서 인터넷 서점의 고객들은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고 상품 정보를 교환하는 상품 소개자이자 판매자로 거듭나고 있다. 우리는 상거래 과정의 정보가 최대한 공개·공유·투명해지는 것을 돕는 역할만 한다. 그것이 쇼핑의 재미도 주면서 기업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선발 주자인 알라딘은 독자 서평 시스템이 1차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하고, 올 여름에는 블로그와 쇼핑몰을 아예 통합하는 새로운 업그레이드 버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