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신간] <사르트르와 아롱, 우리 시대의 두 지식인>
  • 파리·박철화 (문학 평론가) ()
  • 승인 1995.11.0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르트르와 아롱, 우리 시대의 두 지식인>…사후평가, 아롱의 판정승
지난 80년대에야 비로소 가능해진 이념의 개방에 이르기까지, 사르트르라는 이름은 우리의 지식인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서구 지식인의 대명사로 남아 있다. 더구나 그 현상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두번의 세계대전이 끝난 뒤의 전 지구에 보편적인 하나의 신화였다. 그런데 이제 그 신화가 평가의 저울 위에 올려지고 있다.

특히 좌파 논객들의 예상을 쉽게 뛰어넘으며 동유럽의 붉은 장막이 허망하게 사라지고 난 뒤, 좌파 지식인들의 공언이 도마 위에 올려져 웃음거리가 되는 미묘한 시기에 사르트르를 겨냥한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의 상대는 고등사범학교 동창생인 레이몽 아롱이다. <사르트르와 아롱, 우리 시대의 두 지식인 (Deux intellectuels dans le siecle, Sartre et Aron)> (화이아르 출판사)이라는 책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두 사람에다가 같은 동창생으로서 지난달에 세상을 뜬 조르주 캉기렘을 더하면 20세기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사상적 흐름의 기원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부분은, 정치를 중심으로 하여 팽팽하게 대립했던 앞의 두 사람의 대차대조표이다. 놀라운 사실은, 일찍부터 사회주의와 평화주의 운동에 열성적이었던 아롱과 달리, 사르트르의 경우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까지는 정치에 거의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던 점, 그 바로 뒤에 아롱이 좌파 이데올로기에 감추어진 전체주의의 기도를 드러내는 일에 투신하며 신철학파로 이어진 우파 지식인의 대표적인 얼굴로 남은 것에 반해, 사르트르는 45년 <현대(Les Temps modernes)>를 창간하면서 과감히 좌파의 붉은 유토피아로 자신을 휘감는다는 점들이다.

그 와중에서 처음에는 사르트르의 <현대>에 참여하기도 했던 아롱은 결정적으로 자신의 옛 동급생과 거리를 두게 되고, 휴머니즘의 기치를 높이 들고 거리로 뛰어 나간 친구와는 달리 <지식인의 아편>이라는 가장 영향력 있는 좌파 이데올로기의 비판적 해부도를 남기게 된다. 서로의 삶을 마감할 때까지, 한 사람은 68혁명의 주역으로, 다른 한 사람은 그 혁명이 타파하고자 했던 자유주의와 부르주아적 대학 질서의 상징으로 끝까지 대립한다.

좌파가 몰락하게 되고, 무한 경쟁의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자유주의가 득세하게 된 지금으로서는, 결국 아롱의 사유가 더욱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하고 있고, 사르트르는 곳곳에서 실패로 끝난 그의 확언의 대가를 치루고 있노라며, 이 책의 저자는 아롱의 승리를 말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자유의 가치를 옹호하면서 인간을 경쟁의 수레바퀴에 끼인 수동적 존재로 둘 수는 없음을 역설한 사르트르의 휴머니즘은 시간의 마모 아래에서도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