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역사 다룬 대작 <명성황후>
  • 이영미 (연극 평론가) ()
  • 승인 1996.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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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초기부터 국내 최고 연기자들만 출연한다고 떠들썩했던 에이콤의 <명성황후>(이문열 원작, 윤호진 연출, 김희갑 작곡)는 다른 소문난 잔치들과 달리 관객을 크게 실망시키지는 않았다. 보기 드문 대작이었다.

대례부터 시해에 이르기까지 명성황후의 생애 몇십 년을 위인전 형태로 보여준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연출이다. 어쩔 수 없이 서술적·장면 나열적일 수밖에 없는 역사적 사건의 형상화를, 박동우의 예쁘고 깨끗한 무대 미술의 도움을 받아 공간 구성을 통한 갈등 표현과 빠르고 깔끔한 공연 운용에 성공하였다.

개화파·수구파의 갈등이나 열강의 대립 등 인물 중심의 극 구성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시대 상황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설비를 충분히 이용해 과감하고 합리적으로 무대 공간을 운용해 보여주었다. 특히 후반부 일본인들이 시해를 음모하는 장면의 긴장을 상하 무대로 만들고, 시해 장면의 역동성을 이중 회전 무대로 표현한 것은 자칫 처질 뻔했던 후반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하였다. 또한 뮤지컬 전문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도 민간 뮤지컬 단체로서는 손꼽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기술적 역량이 튼실함에 비해 알맹이의 충실함은 크게 미치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명성황후의 성격화에 실패했다. 명성황후의 형상화는 ‘나라 망쳐 먹은 중전’이라는 세간의 인식을 부정하는 데 겨우 이르렀을 뿐, 슬기롭고 착하고 아름다운 여자라는 위인전식 선인의 성격을 탈피하지 못했다. 특히 명성황후 성격화에서 매우 중요한 정치 감각이나, 대범하면서도 차가운 성격을 개성적이고 매력적으로 부각하지 못했다. 명성황후의 감정의 파고는 밋밋했으며, 오로지 사랑과 그리움에서만 약간의 고양을 보였을 뿐이었다. 또한 청일전쟁 부분을 생략함으로써 명성황후와 일본 간의 대립을 부각하고 조여나갈 계기를 만들지 못했다.

명성황후 성격화가 실패한 것은 음악이 큰 원인이었다. 음악은 대중 가요 스타일의 사랑 노래에서만 돋보일 뿐, 사회적 갈등을 표현하는 대목에서는 지나치게 단조롭고 산문적이며 스케일이 작았다. 이런 결함을 편곡이 제대로 보완하지 못함으로써 명성황후 이미지를 ‘사랑과 비련의 주인공’으로 고착시켰다. 또한 우리의 전통 음악, 중국·일본 음악 등 종족 음악적 특징이나 다양한 양식의 음악을 활용하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연기·안무·무대 운용 같은 기술 수준은 빠르게 향상하는데도, 극작과 작곡 등 작품의 핵심 바탕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우리 창작 뮤지컬의 근본적 문제는 이번에도 시원스레 해결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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