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출판] 레비나스 지음 <탈무드 새로 읽기>
  • 파리·고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6.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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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레비나스 지음 <탈무드 새로 읽기>/비대칭의 윤리 설파
우리나라 언론의 무관심 속에서 지난해 크리스마스 새벽에 아흔 살로 삶을 마친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흔히 ‘타자(他者)의 현상학’ 또는 ‘이타성(異他性)의 철학’이라고 불리는 형이상학의 사원을 세우며 20세기 철학사에 또렷한 자취를 남긴 학자다.

1906년 리투아니아 코브노에서 유태인 서점 주인의 아들로 태어난 레비나스는 열여덟 살에 프랑스로 건너가 스트라스부르에 정착했다. 그는 프랑스군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그가 입은 프랑스 군복 덕분에 아우슈비츠나 다하우 집단수용소의 가스실을 면했다. 길고 조용한 ‘여분의 삶’을 통해 레비나스는 후설과 하이데거의 비판적 독서를 한 축으로 삼고, 유태교 율법(토라) 해석서인 <탈무드>의 재해석을 또 한 축으로 삼아 서구적인 것과 유태적인 것을 결합하는 윤리학을 구축했다.

우리가 그의 철학에서 ‘타자’ ‘윤리’ 같은 개념들을 끌어낼 때, 그것들의 대척에 있는 것은 헤겔의 총체성이다. 그의 헤겔 비판이 가장 명징하게 드러난 것은 61년의 저서 <총체성과 무한자(無限者)>에서다. 그는 플라톤에서 헤겔로 이어지는 총체성에 대한 욕망, 즉 타자를 동일자로 환원하려는 유혹을 하나의 병으로 진단했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타자와의 만남은 거리와 차이를 인정하는 것, 무한자(신)를 인정하는 것, 절대적 타자로서 무한자의 초월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헤겔의 총체성이 이론적이라면 레비나스의 무한자는 윤리적이다. 헤겔의 총체성이 주체를 배제한다면 레비나스의 무한자는 주체를 보듬는다. 새로운 휴머니즘이라고 부를 만한 레비나스의 타자의 철학은 그의 삶 내내 지속된 <탈무드> 읽기에서도 일관된다.

‘그 자신이란 누구인가’ 등 세 차례 강연 묶어

레비나스의 유언이라고도 함 직한 <탈무드 새로 읽기>가 최근 파리의 미뉘 출판사에서 나왔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탈무드>는 지적 삶의 본질적 암시들로 가득찬, 모든 시대의 인간을 괴롭힌 ‘근대인’의 문제에 대한 성찰들로 가득찬 텍스트이다. 레비나스는 68년의 <탈무드 강독 네 편>부터 88년의 <민족들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탈무드> 재해석에 바친 저서를 네 권 남긴 바 있다. 그의 다섯 번째 <탈무드> 강독이자 그의 육체적 죽음으로 마지막 강독이 되어 버린 얄팍한 책 <탈무드 새로 읽기>는 ‘하늘의 의지와 인간의 권력’(1974), ‘국가 안에서 국가를 넘어서’(1988), ‘그 자신이란 누구인가’(1989) 등 생전에 레비나스가 공개석상에서 한 세 차례 강연을 묶어놓았 다.

제29차 유태인 지식인대회에서 강연한 ‘국가 안에서 국가를 넘어서’를 잠깐 훔쳐보자. 레비나스는 이 강연에서 <탈무드>에 나타난, 알렉산더 대왕과 유태인 장로들 사이의 대화를 해석했다. 대왕이 장로들에게 묻는다. “인기를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권력과 권위를 증오하십시오.” 대왕이 장로들에게 대꾸한다. “내게는 더 좋은 대답이 있다. 권력과 권위를 추구하고 그것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레비나스는 이 대화를 인용한 뒤, 대신의 직위를 노리는 ‘박애주의자들’의 도움으로 인민의 인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왕의 생각은, 그 박애주의자들에 의한 ‘사회적으로 진보하는 정치’를 가져 오지만, 그것은 흔히 관용과 사랑이 결여된 ‘선한 국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모든 세속적 정치 권력에 잠재한 압제의 가능성을 두려워하는 장로들을 은근히 편든다.

유태교 율법 토라를 해석한 <탈무드>를 해석함으로써, 즉 해석의 해석을 통해서 이 죽은 철학자는, 다시 한번 그가 ‘얼굴’이라고 표현했던 타자의 현현, 신의 현현에 대해 말한다. 사랑과 초월에 대해서, 보답(상호성)을 상정하지 않은 타인에 대한 책임, 즉 비대칭의 윤리에 대해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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