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선 선] 작곡가 안톤 베베론의 세계
  • 홍승찬 (음악 평론가) ()
  • 승인 1995.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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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현대로 … 사흘 간의 클래식 여행
전국이 온통 ‘세계를 빛낸 한국 음악인 대향연’으로 떠들썩한 가운데 그 끝에 조그맣게 놓인 이색 연주회 시리즈가 눈길을 끈다. 8월29~31일 문화일보홀에서 열리는 <‘95 현대 음악 주간>이 바로 그것인데, 올해는 안톤 베베른(1883~1945) 서거 50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 세계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첫날에는 아울로스 트리오가 게오르크 카처의 ‘디베르티멘토’와 데니소프의 ‘3중주’, 아르만도 겐틸루치의 <삶의 물 밑에서>, 안톤 베베른의 <3개의 작은 소품 작품 11>, 윤이상의 ‘소나타’를 연주한다. 이튿날에는 독일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필름 <안톤 베베른>을 상영한 다음 소프라노 박문숙 등이 쇤베르크·베르크·베베른의 가곡과 소품들을 연주한다. 마지막 날에는 임헌정이 지휘하는 부천 시립교향악단이 바흐의 <음악에의 헌정>, 베베른의 <5개의 소품 작품 5>,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을 들려준다.

이번 주간의 첫 무대를 장식할 아울로스 트리오는 68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창단한 현대 음악 전문 연주 단체이다. 한스 아이슬러 신음악 그룹의 일원으로 세계 각지를 돌면서 현대 음악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81년부터는 비텐 음악제에 정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날 연주회에서 이들이 소개할 작곡가 가운데 앞서 소개하지 않은 아르만도 겐틸루치는 루이지 노노 이후 이탈리아 창작 음악계를 대표하는 작곡가이므로 이번 기회를 통해 현재 이탈리아 작곡계의 경향을 짚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베베른의 일대기를 담은 기록 영화가 상영되는 등 다채롭고 알찬 순서들이 마련된 30일의 무대도 흥미롭지만 좀더 관심이 가는 것은 역시 부천 필에 주어진 마지막 날 무대이다. 창단하자마자 곧 국내 정상의 자리를 차지한 부천 시향의 신화는 이미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며, 그런 기적을 만들어낸 지휘자 임헌정의 역량에 대해서도 사족을 달 필요가 없을 것이다.

베베른과 함께 바흐와 쇤베르크를 연주하려는 의도부터가 범상하지 않다. 얼핏 보기에 바흐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쉬 들여다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살펴보면 베베른이 바흐로부터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항상 “모든 것은 바흐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사용한 대부분의 형식적인 규범은 바흐에게서 비롯한 것이었다. 가장 멀리 있는 바흐를 어떻게, 얼마나 받아들였는지를 발견함과 동시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쇤베르크는 또 얼마나,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헤아리는 기쁨이 이 날 연주회에 숨어 있다.

끊임없이 현대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지휘자의 당연한 의무라고 말하는 임헌정. 그리고 그와 한 궤도를 달리고 있는 부천 시향이 함께 선택한 숨가쁜 여정에는 종착역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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