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상] ‘이집트 열풍’ 진단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7.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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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열풍’ 진단/한국 문화와의 친연성이 한 몫
‘나는 어제를 보았다. 그리하여 내일을 안다’.(투탕카멘 왕의 관에 새겨진 글)

22년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는 6년여 발굴한 끝에 무덤의 입구를 발견했다. 지금으로부터 3천3백년 전 고대 이집트를 통치했던 파라오 투탕카멘. 장엄하고 화려한 유물 사이에 누워 있던 투탕카멘 왕은 관에 새겨놓은 위와 같은 어구를 앞세우며 20세기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어제를 보았기 때문에 내일을 안다는 그의 예지는, 기원 후 2천 년이 다 된 오늘에까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인류가 선택한 삶의 태도와 방식이 그때 이미 결정된 것이다.

고대 이집트 문명의 거대한 영향력은 이집트를 넘고 서양을 거쳐, 지금은 전인류를 뒤덮었다. 특히,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고대 이집트에 관한 대중의 관심은 소박한 호기심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출판사나 전시 기획자가 광고와 홍보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해도, 그것이 대중의 욕구와 만나지 못한다면 거품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소설 <람세스> 인기 이어 전시회에도 관객 몰려

그러나 지난해부터 서서히 일기 시작한 고대 이집트 관련 출판물과 기획 전시에 보이는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은 심상치 않아 보인다.

대표적인 출판물은 프랑스 작가 크리스티앙 자크의 장편 소설 <람세스>(문학동네)이다. 지난 3월 말 <빛의 아들> 편을 선보인 <람세스>는 최근 제5권 <제왕의 길>로 완간되었다.
지난 6월4일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막을 올린 <고대 이집트 문명展>은 평일에는 4천명, 주말과 휴일에는 만명이 훨씬 넘는 관람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전시회 입장료가 결코 싸다고 할 수 없는 8천원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새로운 문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고대 이집트 문명전>은 광고 전단에‘람세스 서울에 오다’라는 카피를 내세워 소설 <람세스>와 동반 상승을 꾀하고 있다.

그리스·로마 문화는 서양 문화의 고향이다. 그리스·로마 문화의 뿌리는 고대 이집트이다. 이렇게 본다면, 고대 이집트는 극동에서 독자 문화를 창출해온 한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여기에서‘이집트 바람’이 부는가.

자기 문화의 기원이라 여기는 고대 이집트에 대한 서양인들의 관심은 맹목적인 집착에 가깝다. 그것은 서양의 대표적인 박물관(미술관) 몇 군데만 둘러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영국 대영박물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독일 역사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컬렉션은 몇몇 선사 유물을 제외하고는 예외 없이 고대 이집트로부터 시작된다. 더구나 루브르 박물관은 81년에 시작한‘그랑 트라보’라는 거대한 역사(役事) 가운데 하나로, 건축가 I.M. 페이가 설계한 유리 피라미드를 박물관 입구에 세웠다. 인류의 시각 문화가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유리 피라미드를 통해 상징한 것이다.

1798년 나폴레옹은 이집트에 발을 디디면서 2백여 학자를 앞세워 고대 이집트를 샅샅이 조사했다. 영국과의 해전에서 패해‘약탈한 유물’들을 대영박물관에 모두 넘겨주고 말았으나, 프랑스 학자들은 발굴과 연구 결과물을 1809~1828년 <이집트誌> 스물네 권으로 펴냄으로써‘이집트학’의 문을 열었다. 1822년에는 프랑스의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이 로제타 스톤의 이집트 상형 문자 히에로글리프를 해독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고대 이집트가 수천 년 만에 장엄한 모습을 비로소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집트 문명은 전세계 문명의 뿌리”
서양인들의‘뿌리에 대한 향수’는 최근까지도 계속 이어져 소설 <람세스>가 프랑스에서 베스트 셀러 행진을 계속하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시사 주간지 <렉스프레스>가 ‘이집트 열풍은 왜 아직도 계속되는가’라는 주제에 한 호 전체를 할애하기도 했다. 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은 타계하기 직전까지, 연말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서양 문화의 원천이 흐르는 나일강변에서 며칠씩 휴가를 보냈던 것으로 유명하다.

자기 문화의 뿌리를 찾으려는 서양인들의 욕구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고대 이집트에 대한 관심은, 그 원인을 먼저‘인류 문명의 기원을 찾아서’라는 <고대 이집트 문명전>의 부제목에서 찾을 수 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이 저들만의 문명이 아니라 우리가 포함된 인류의 문명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서울대 종교학과 학부와 대학원에서‘이집트 고고학과 종교’를 강의한 김 성씨(성서고고학)는“고대 이집트 문명이 이집트 혹은 서양만의 것이라고 강조한다면,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고대 이집트는 전세계 문명의 뿌리이자 인류의 공동 자산이다”라고 말했다.

<고대 이집트 문명전> 책임 큐레이터 김정화씨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 문화가 우리에게 낯설지 않고, 또 우리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유는 친연성 때문이다.“고대 이집트인들이 1년 열두 달·365일·하루 24시간을 만들었다든가, 우리 것과 똑같은 음력을 만들었다는 점말고도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그 옛날에 이미 일어났다고 상상해 보라. 고대 이집트 자료에서 우리의 일상과 똑같은 모습들을 발견하면 신비스럽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라고 김씨는 말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이 인류의 보편적인 유산이며 우리와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벽화나 금속 공예품에 그려진 그림들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장례를 치르면서 곡하는 사람을 고용한 모습이라든가, 아침 저녁으로 제사상을 올리는 장면 등 한국의 장례 풍습과 유사한 면모가 파피루스에 많이 기록되어 있다. 더구나 기독교의 세례를 받은 지 2백 년이 넘은 한국으로서는 구약의 출애굽기는 물론, <성경>에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는 고대 이집트의 여러 흔적에 이미 친숙해 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는 고대 이집트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94년 한 베스트 셀러 작가가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1년간 신문에 연재물을 실어도 큰 반향이 일지 않았다.

“이집트에 대한 관심은 촌티 벗기”

<람세스>라는 계기를 통해 본격화한 고대 이집트에 대한 관심은, 출판계 한켠에서는 몇년 전에 이미 예견되었던 터였다. 한국 독자들의 성향 때문이다. <람세스>의 작가 크리스티앙 자크의 <이집트의 판관>을 펴낼 계획을 세웠던 도서출판 열린책들의 홍지웅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집트는 고대는 물론 현대마저도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땅이다. 특히 찬란했다는 고대 이집트는 우리에게 막연하고 가장 신비스러운 곳으로 남아 있다. 한국 독자들은 소설만의 재미보다는 소설 속에서 문화·문명·역사 같은 인문적인 지식을 함께 얻으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좋은 예이다. <람세스>의 성공은 고대 이집트의 이미지와 독자의 성향이 잘 맞아떨어진 데 연유한다.” <람세스>의 작가는 프랑스 <라루스 백과사전>에 고대 이집트편을 집필할 정도로 저명한 이집트학 학자이다.

고대 이집트에 대한 관심은 인류의 보편적인 문화 유산인 각종 신화에 대한 한국 사회 전반의 관심과 맥을 함께한다. 소설가이자 신화·종교 전문 번역가인 이윤기씨는 이같은 현상을‘촌티 벗기’라고 해석한다. “인문학을 비롯한 우리의 제반 학문 분야는 이제 서양 문명의 두 기둥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도저히 비켜갈 수가 없다. 두 기둥의 뿌리에 고대 이집트가 있다. 지금까지는 그것이 남의 역사요 문화였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그 문화에 막 합류했다. 그 문화에 대한 통시적 교양 없이는 촌놈 소리 듣기에 딱 알맞은 때가 되었다.”

<람세스>를 번역한 김정란 교수(상지대·불문학)는 신화와 고대 문명에 대한 한국의 관심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 신화와 고대 문명을 탐사하려는 태도는, 정신적 공황을 겪는 사람들이 자기를 발견할 강력한 계기를 찾으려는 데서 말미암는다는 것이다. 경박하고 말초적인 데에 무게 중심이 있는 신세대 문화에 대한 반발로 근원적인 문화에 대한 욕구가 생겨났을 수도 있다고 김교수는 분석한다.

‘세계화’는 김영삼 정부가 내건 주요 슬로건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강요된 그 이데올로기는 선진국민과 무한 경쟁을 하라는 강박 관념만 심은 채 스러지고 말았다.

반면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그들이 동시에 인류의 한 구성원임을 스스로 깨닫기 시작했다.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에 눈을 뜬 것이다. 우리와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고대 이집트 문명을 자기 문화로 받아들이고 소화하려는 최근의 경향이 그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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