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나폴레옹>다룬 소설·여행기 봇물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8.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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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다룬 소설·여행기 잇달아 번역·출간…전쟁 영웅의 알려지지 않은 면모 생생히 복원
너무나 뻔한 인물, 너무도 잘 알려져 우스갯소리에까지 등장하는 인물. 그러나 ‘너무나 뻔하다’는 사실은, 때로 그 인물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장애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 인물이 나폴레옹이다.

최근 출판계에 나타난 특이한 현상 가운데 하나는 느닷없는 ‘나폴레옹 붐’이다. 프랑스 혁명의 기운을 등에 업고 정복 전쟁에 나섰던 ‘시대의 영웅’이자 ‘침략자·독재자’, 이혼의 권리와 유태인 복권 등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더 선진적인 제도를 정착시키고 한때 유럽 전역에 자유주의 사상을 퍼뜨리기도 했던 나폴레옹이 새삼스럽게 한국 독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문학동네가 <나폴레옹>(전5권)을 내놓고(9월초 3권까지 출간되었다), 그 뒤를 이어 세계사가 <나폴레옹-세인트헬레나로의 항해>를 번역·출판했다. 이와 함께 프랑스 혁명기의 정치가로서 한때 나폴레옹과 맞서기도 했던 조제프 퓨셰의 전기 소설(아래 상자 기사 참조)이 출판되어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을 간접으로 비추고 있다. 나폴레옹이 이 땅에 소개된 이래 가장 다양한 앵글로 집중 조명되고 있는 셈이다.

문학동네의 <나폴레옹>(막스 갈로 지음·임 헌 옮김)은 지난해 프랑스에서 출판되어 초대형 베스트 셀러로 떠오른 소설이다. 나폴레옹이 사망한 후 이 인물에 관한 책이 전세계에서 8만여 종 출판되었으나, 나폴레옹의 내면을 가장 섬세하게 그렸다는 평을 들은 작품이다.

대하 소설 <나폴레옹>은, 코르시카에서 태어난 아홉 살 난 어린이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프랑스 왕립 군사학교에 입학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너절한 촌놈’ 취급을 받던 이 아이가 마치 전투를 벌이듯 프랑스 사회에 적응한 뒤 프랑스와 유럽을 차례로 정복해 가는 줄거리로 이어진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한국 독자에게 생소한 역사적 사실들이 기록을 중심으로 소상하게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폴레옹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서도 편지 등의 형식을 통해 숱한 기록을 남겼다. <나폴레옹>은 나폴레옹과 그 주변 인물들이 남긴 기록과 기록 사이를 픽션으로 메워 간 소설이다. 그만큼 사실성에 충실하다.

“우리는 그를 다 알지만, 아무도 그를 모른다”

역사적 사실들로 소설의 기둥을 세웠으나, <나폴레옹>은 지루하게 읽히지 않는다. “이 소설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마치 내가 나폴레옹의 어깨 너머에 있는 듯’ 혹은 ‘카메라 눈을 다루듯’ 자리를 잡았다”라고 작가가 밝혔듯이, 소설의 주어는 90% 이상이 나폴레옹이다. 모든 문장의 시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나폴레옹을 둘러싼 프랑스의 격동기가 그만큼 속도감 있게 전개되고 있다.

문학동네의 <나폴레옹>이 전쟁 영웅의 넘쳐나는 에너지와 생명력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세계사의 <나폴레옹-세인트 헬레나로의 여행>(장 폴 카우프만 지음·김 철 옮김)은 유폐된 영웅의 쓸쓸한 말년을 여행기 형식으로 펼쳐놓은 책이다. 작가는, 자신이 세인트헬레나 섬에 체류한 9일 동안 거기서 보고 느낀 점들을 중심으로 유배자 나폴레옹뿐 아니라 그의 삶 자체를 복원했다. 나폴레옹에 관한 이야기는 유배지에 남긴 흔적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전개된다.

나폴레옹이 살았던 ‘롱우드의 컴컴한 집’에서 작가가 발견하는 것은 ‘냄새’이다. 이 책은 냄새에 유난히 민감했던 나폴레옹의 내면 심리를 현재의 냄새를 매개로 탐색해 들어간다. 나폴레옹을 인간적으로 접근한 빼어난 르포 문학인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한 김 철씨는 번역 후기에서 ‘우리는 그를 다 알지만,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그를 모른다’라고 적었다. 영웅 소설이 붐을 이루는 것을 두고 영웅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나, 두 책은 ‘우리가 너무 많이 아는 듯하면서도 정작 아무것도 몰랐던’ 한 시대의 지배자를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 경계해야 할 것은 영웅주의가 아니라 붐에 편승한 출판 상업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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