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다룬 소설·여행기 잇달아 번역·출간…전쟁 영웅의 알려지지 않은 면모 생생히 복원
너무나 뻔한 인물, 너무도 잘 알려져 우스갯소리에까지 등장하는 인물. 그러나 ‘너무나 뻔하다’는 사실은, 때로 그 인물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장애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 인물이 나폴레옹이다.최근 출판계에 나타난 특이한 현상 가운데 하나는 느닷없는 ‘나폴레옹 붐’이다. 프랑스 혁명의 기운을 등에 업고 정복 전쟁에 나섰던 ‘시대의 영웅’이자 ‘침략자·독재자’, 이혼의 권리와 유태인 복권 등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더 선진적인 제도를 정착시키고 한때 유럽 전역에 자유주의 사상을 퍼뜨리기도 했던 나폴레옹이 새삼스럽게 한국 독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문학동네가 <나폴레옹>(전5권)을 내놓고(9월초 3권까지 출간되었다), 그 뒤를 이어 세계사가 <나폴레옹-세인트헬레나로의 항해>를 번역·출판했다. 이와 함께 프랑스 혁명기의 정치가로서 한때 나폴레옹과 맞서기도 했던 조제프 퓨셰의 전기 소설(아래 상자 기사 참조)이 출판되어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을 간접으로 비추고 있다. 나폴레옹이 이 땅에 소개된 이래 가장 다양한 앵글로 집중 조명되고 있는 셈이다.
문학동네의 <나폴레옹>(막스 갈로 지음·임 헌 옮김)은 지난해 프랑스에서 출판되어 초대형 베스트 셀러로 떠오른 소설이다. 나폴레옹이 사망한 후 이 인물에 관한 책이 전세계에서 8만여 종 출판되었으나, 나폴레옹의 내면을 가장 섬세하게 그렸다는 평을 들은 작품이다.
대하 소설 <나폴레옹>은, 코르시카에서 태어난 아홉 살 난 어린이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프랑스 왕립 군사학교에 입학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너절한 촌놈’ 취급을 받던 이 아이가 마치 전투를 벌이듯 프랑스 사회에 적응한 뒤 프랑스와 유럽을 차례로 정복해 가는 줄거리로 이어진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한국 독자에게 생소한 역사적 사실들이 기록을 중심으로 소상하게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폴레옹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서도 편지 등의 형식을 통해 숱한 기록을 남겼다. <나폴레옹>은 나폴레옹과 그 주변 인물들이 남긴 기록과 기록 사이를 픽션으로 메워 간 소설이다. 그만큼 사실성에 충실하다.
“우리는 그를 다 알지만, 아무도 그를 모른다”
역사적 사실들로 소설의 기둥을 세웠으나, <나폴레옹>은 지루하게 읽히지 않는다. “이 소설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마치 내가 나폴레옹의 어깨 너머에 있는 듯’ 혹은 ‘카메라 눈을 다루듯’ 자리를 잡았다”라고 작가가 밝혔듯이, 소설의 주어는 90% 이상이 나폴레옹이다. 모든 문장의 시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나폴레옹을 둘러싼 프랑스의 격동기가 그만큼 속도감 있게 전개되고 있다.
문학동네의 <나폴레옹>이 전쟁 영웅의 넘쳐나는 에너지와 생명력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세계사의 <나폴레옹-세인트 헬레나로의 여행>(장 폴 카우프만 지음·김 철 옮김)은 유폐된 영웅의 쓸쓸한 말년을 여행기 형식으로 펼쳐놓은 책이다. 작가는, 자신이 세인트헬레나 섬에 체류한 9일 동안 거기서 보고 느낀 점들을 중심으로 유배자 나폴레옹뿐 아니라 그의 삶 자체를 복원했다. 나폴레옹에 관한 이야기는 유배지에 남긴 흔적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전개된다.
나폴레옹이 살았던 ‘롱우드의 컴컴한 집’에서 작가가 발견하는 것은 ‘냄새’이다. 이 책은 냄새에 유난히 민감했던 나폴레옹의 내면 심리를 현재의 냄새를 매개로 탐색해 들어간다. 나폴레옹을 인간적으로 접근한 빼어난 르포 문학인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한 김 철씨는 번역 후기에서 ‘우리는 그를 다 알지만,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그를 모른다’라고 적었다. 영웅 소설이 붐을 이루는 것을 두고 영웅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나, 두 책은 ‘우리가 너무 많이 아는 듯하면서도 정작 아무것도 몰랐던’ 한 시대의 지배자를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 경계해야 할 것은 영웅주의가 아니라 붐에 편승한 출판 상업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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