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 <나폴레옹> 저자 막스 갈로 현지 인터뷰
  • 파리·李文宰(시인·문학 저널리스트) ()
  • 승인 1998.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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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나폴레옹>의 저자 막스 갈로 현지 인터뷰
파리 시청에서 시테 섬을 건너면 오르막길이다. 소르본 대학을 지나 그 오르막 정상에 팡테옹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번역된 소설 <나폴레옹>(전 5권, 문학동네)의 작가 막스 갈로는 바로 팡테옹 옆에 산다. 파리시 제 5구. 그의 아파트에서는 팡테옹이 한눈에 들어온다. 프랑스 국가 유공자들이 잠들어 있는 곳. 그는 팡테옹, 저 프랑스의 ‘위대한 역사’와 매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월8일 오후, 막스 갈로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아파트 현관에는 실물보다 약간 작은 나폴레옹과 드골 사진이 세워져 있었다. 나폴레옹과 드골은 막스 갈로에게 각별한 ‘혈연’이다. 지난해 <나폴레옹>을 펴낸 막스 갈로는 곧 <드골>(전 4권)을 완간한다. 그의 체구는 프랑스인답지 않게, 나폴레옹답지 않게 매우 컸다. 그는 “내 키가 드골과 똑같다”라며 웃었다.

막스 갈로는 작가이자 진보적 역사학자

막스 갈로는 국내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프랑스에서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자, 진보적인 역사학자다. 75년까지 니스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쳤고, 한때 고향 니스에서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80년대 초반, 미테랑 대통령 시절에는 정무 차관과 정부 대변인을 지냈다. 대학 교수 시절 <렉스프레스> 논설위원과 <파리 마탱>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학문과 현실 정치, 창작과 비평 등 전방위적 활동을 펼쳐 온 그는 지금까지 소설 30여 권과 또 그만큼의 전기와 에세이를 발표했다.

유명한 사회주의자인 로자 룩셈부르크와 장 조레스에 관한 전기를 쓴 그가 <나폴레옹>을 펴내자 프랑스 지식인 사회는 놀라워했다. 그는 나폴레옹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최초의 좌파 역사가였다. 그는 “좌파 인물과 우파 인물이 있다는 식으로 나눈다면, 놀라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나폴레옹에 관한 한, 인물을 그런 식으로 정의하는 것을 완전히 거부한다”라고 말했다.

나폴레옹에 대한 그의 시각은 그의 글쓰기 전략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가 보기에, 전기 작가들이 저지르는 가장 진부한 실수가 역사적 인물을 현재의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그는 오늘이 아니라 나폴레옹 당대의 시간 속으로 거슬러올라갔다. 나폴레옹의 삶의 내부, 나폴레옹을 움직이게 했던 에너지, 그리고 당시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고자 했던 것이다.

1821년 5월5일, 나폴레옹이 죽은 이후,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나온 나폴레옹 관련 저작은 무려 8만여 종에 이른다. 나폴레옹 사후, 매일 1종이 넘는 책이 그에게 바쳐진 것이다. 물론 그 가운데에는 그를 비판하는 책도 적지 않았다. 막스 갈로는 지난 20여 년 동안 나폴레옹과 함께 살았다. 프랑스에서 나온 나폴레옹 관련 서적을 독파하면서 그 책들 대부분이 나폴레옹을 밖에서, 혹은 위나 아래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막스 갈로는 나폴레옹의 내부로 들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나폴레옹의 내부에 작가의 주관적 카메라를 설치한 것이다. “내가 쓴 <나폴레옹>과 같은 책은 아마 없을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나폴레옹은 민주주의 공고하게 만들었다”

막스 갈로는 <나폴레옹>을 자신의 아들에게 바친다고 썼다. 그에게는 열네 살 난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이 나폴레옹 같은 영웅이 되기를 바랐던 것일까. 그는 말했다. “나폴레옹은 에너지 그 자체이고, 에너지에 대한 교훈이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출발해 정상까지 도달했던 나폴레옹은 나 자신에게도 에너지와 의지의 본보기다. 개인적 창조의 역사인 동시에 의지의 역사인 것이다. 나는 의지와 에너지가 오늘날 꼭 필요한 교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을 독재자라고 보는 시각 또한 여전하다. 영웅의 역사보다는 민중의 역사가 더 가치가 있으며, 권력의 역사보다는 풍속과 일상의 역사가 더 역사적이라는 입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막스 갈로의 입장은 단호하다. 그는 나폴레옹 시대의 유럽을 염두에 두면서 ‘오늘날의 비판’을 거부한다. “나는 감히, 나폴레옹은 민주주의를 공고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라고 그는 말했다. 당시 나폴레옹은 이혼할 권리와 유태인 복권, 국가에 의한 교육 등 다른 나라들보다 더 선진적인 법과 제도를 정착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웅보다는 자율적인 개인들, 다원화한 사회가 절실하다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그는 우호적이지 않다. “역사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비전이 무너졌다. 이제 역사는 ‘인간’으로 회귀하고 있다. 나는 나폴레옹 같은 한 인간의 역할에 중점을 두면서 한 개인이 역사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20여 년 동안 나폴레옹을 연구하면서 막스 갈로가 내린 결론은 ‘나폴레옹은 다름 아닌 그 자신이 되려고 했던 사람이며, 무엇인가를 변화시키기 위하여 끝까지 나아간 삶’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정의하는 영웅이다. 바로 여기에서 나폴레옹의 에너지와 의지가 나온다는 것이다.

“나는 글만 쓴다. 그게 나의 전부다”

한 프랑스 언론이 ‘종이에 굶주린 호랑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그의 삶은 글쓰기로 채워져 있다. “나는 글쓰기만 한다. 그게 나의 전부다.” 그는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6시 반까지 글을 쓴다. 그리고 7시까지 30분 가량 잠들었다가 다시 책상에 앉는다.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 없냐고 묻자, 여행은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고 했다. 글 쓸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날 인터뷰도 한 시간 반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역사학자로서 이 세기 말을 어떻게 보는지, 이 국면에서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지 따위를 묻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지난해 국내에서 번역된 <진보는 죽은 사상인가>(당대)를 다시 들추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르 몽드>에 기고한 글 모음인 이 책에서 막스 갈로는 ‘이 장송의 세기의 종막’에서 승리한 것은 정의가 아니라 음모와 위선, 냉소주의와 민족주의라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는데, 나폴레옹의 연설문처럼 읽혔다.

‘기계가 계속 인간을 괴롭히는 상황에서 우리들에게 던져지는 의문은 진보가 존재하는가 아닌가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이 참을 수 없는 세상에 대해 저항할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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