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강준만 교수의 이인화 교수 비판
  •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 ()
  • 승인 1997.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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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부 박학 다식한 문인들이 현실 문제에 깊숙이 개입한 뒤 자기 편의에 따라 ‘소설’과 ‘학문’의 가면 속으로 숨는 것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
다음 글은 지난호(제403호)에 실렸던 소설가 이인화씨의 반론에 대한 강준만 교수의 재반론이다. 강교수와 이씨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박정희 논쟁’은, 강교수가 <인물과 사상> 제2호에서 소설 <인간의 길>은 파시스트 논리에 바탕했다고 비판하면서 촉발되었다. <편집자>

차분한 반론을 주신 이인화씨에게 감사드린다. 거친 데다 감정까지 마구 발산했던 나의 비판(<인물과 사상> 제2호)에 대해 과분한 반론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 ‘과분함’에 있는 것 같다.

이씨는 소설에 관한 문학적 논쟁을 하자는 건가? 나는 그럴 자격도 없거니와 그럴 흥미도 없다. 아니면 이씨는 사회과학 논쟁을 하자는 건가? 내게 그럴 자격은 있는지 몰라도 난 흥미가 없다. 그런데 이씨의 반론은 나의 비판을 부끄럽게 만들 만큼 수준 높은 말씀들로 가득하다.

이씨는 맑은 정신으로 나의 비판을 다시 읽어주시기 바란다. 나는 이씨가 언론 매체에 기고했던 글들과 인터뷰 내용에 자신의 진의를 왜곡할 만한 문제가 있었다며 그 점을 해명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이씨는 그런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자신의 박학 다식만을 자랑했을 뿐이다.

내가 이씨에게 던져 주고자 했던 메시지는 간단하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과소 평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포장마차 한구석에 앉아 술에 취한 상태에서 파시즘을 큰소리로 찬양하더라도 나는 시비를 걸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지식인이 언론 매체를 통해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는다면 그건 사정이 다르다. 나는 그 점을 지적하고자 했던 것이다.

‘박정희가 한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옳았다’라거나 ‘박정희는 영웅이요, 지식인은 인간 쓰레기’라고 말하는 사람을 파시스트라 부르지 않으면 무어라 불러야 하는가? 게다가 민주주의의 위선을 지적하면서 왕조 시대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사람을 파시스트라 부르지 않으면 무어라 불러야 하는가? 박정희가 환생한다 한들 설마 그가 자신이 한 일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옳았으며 민주주의를 대체할 그 어떤 철권 통치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할까?

이씨가 매우 솔직한 성품의 소유자라는 건 높이 평가하지만, 솔직하다는 게 모든 발언에 대한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솔직함을 빙자한 언어 폭력이 함부로 저질러질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씨가 아무 말이나 마구 내뱉어도 괜찮다고 판단하게 만든 우리 사회를 개탄하는 것이다.

나는 일부 박학 다식한 문인들이 현실 문제에 깊숙이 개입한 뒤 자기 편의에 따라 ‘소설’과 ‘학문’의 가면 속으로 숨는 것에 대해서도 개탄을 금치 못한다. 그렇게 숨으려면 현실적인 발언은 삼가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이씨에게서도 그런 ‘양다리 걸치기’식 수법을 발견하게 돼 씁쓸하기 짝이 없다.

이씨는 내가 박정희 시대의 경제 발전을 평가하려는 모든 이성적인 논의를 봉쇄하려 한다고 주장했는데, 나는 웃음이 나온다. 나는 그런 논의를 봉쇄하려는 사람들을 비판해 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승만을 부분적으로 옹호하는 글을 썼다는 걸 이씨는 상상이나 해 봤을까?

나는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사람이다. 역사에 대한 이해에 감상주의가 개입되어서는 안되며, 개인주의적인 윤리로 역사와 사회를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나의 소신이다. 이씨는 내 소신을 근거로 나를 비판하고 있으니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나는 역사와 사회를 보는 시각이 이씨만큼 보수적인 사람이지만 파시즘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 이씨를 파시스트라고 규정하지는 않겠다. 그가 실언한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이씨는 자신의 발언을 재점검하기 바란다.

이씨는 내가 글 곳곳에서 ‘대구 출신’에 대한 경멸을 드러냈다고 했는데, 나는 이씨가 대구 사람들을 모욕하는 그런 발언만큼은 제발 삼가해주기 바란다. 나는 대구 출신이든 광주 출신이든, 이씨처럼 박정희에 대한 숭배심이 지나쳐 오히려 박정희를 욕되게 하는 사람을 경멸할 뿐이다.

내가 대구를 거론했던 건 이씨가 어린 시절 박정희는 대구에서 영웅이자 ‘종교’였다고 하길래, 그렇다면 그것은 장정일의 구속에 분노하는 이씨가 어떻게 박정희를 숭배하는 모순을 저지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열쇠라는 걸 말하고자 했던 것뿐이다.

속으로 숭배하는 것과 그걸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나는 그 어떤 대구 사람도 이씨처럼 그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표현할 만큼 생각이 없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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